Art & Healing/내 영혼의 갤러리

정신의 풍경을 그린 수묵판화-김준권의 작품 앞에서

패션 큐레이터 2010. 10. 25. 21:26

 

김준권_아침-2_수묵목판_49.5×120.5cm_2010

 

예전 친하게 지내던 컬렉터 한 분이 소개해 주신 작가가 있습니다.

바로 한국의 수묵목판화의 대가인 김준권 선생님이죠. 처음 이분의 한정판 카탈로그를

받아 작품을 살펴볼 때는, 그 진가를 몰랐습니다. 세월이 흘러 도록을 꺼내 다시 바라보는데, 마음 한구석이

수묵빛 어둠과 빛의 혼색으로 가득 메워지는 것 같습니다.

 

 

김준권_島-0901_Ed.5+AP, 수묵목판_110×186cm_2009

 

김준권 선생님의 작품은 이 땅의 풍경을 자신만의 평온함과

정서적인 따스함을 담아 그려냅니다. 모든 산수화에 등장하는 산과 물, 새와 구름

섬은 '저만치'의 세계에서 새롭게 기호가 되어 피어납니다. 그의 작품 속 소나무는 우레와 구름과 비

번개를 먹고 자라납니다. 소나무는 몸에 흉터가 생겼지만 이를 꾹물고 그 흉을 안아냅니다.

검객의 얼굴에 자연스레 생긴 상처처럼요. 자연이 우리에게 주는 가르침이겠지요.

 

 

 

김준권_綠山韻-0902_Ed.5+AP, 채색목판_160×80cm_2009

 

중국 명나라 시절의 화가이자 미술 이론가 중에 동기창이란 분이 있습니다.

흔히 중국에선 그림의 역사를 남종화와 북종화 두 종류로 나뉘었지요. 그는 자신의 책

<화선실수필>에서 남종화가 북종화보다 더 정신적인 우위에 있다고 주장을 합니다. 이게 무슨 말인가

하면 그림을 신분에 따라 나눈 것이기에 사실상 엄격한 구분은 하기 어렵지만, 남종화는 여백이 많고 담백한 느낌을

주는 그림이 많고 북종화는 세밀한 묘사를 주로하며 여기에 채색을 곁들인 것들이 많습니다.

 

흔히 동양화에선 사물을 그릴 때 준법이란 걸 사용하는데요. 남종화는 피마준과 미점을

사용합니다. 피마준이란 일정한 방향으로 부드럽게 나아가는 긴 산을 말하는 것으로 삼베를 길게 찢어

놓은 것처럼 부드럽고 길다고 붙여진 이름입니다. 테크닉이라고 보시면 되요. 여기에 붓을 옆으로 뉘어 둥글고 납작하게

점을 찍어 풍광을 화면속에 담는 미점이 있습니다. 자 그럼 다시 동기창의 이론으로 들어가보죠. 왜 그는

남종화를 북종화의 섬세한 터치보다 더욱 우위에 있다고 주장을 했을까요? 자연과 사람의 정서가

합일할 때, 여기서 비로서 서정성이 나온다고 믿었습니다. 풍경과 인간이 따로 떨어져 있는

존재가 아니라, 내 안의 정서가 일종의 거울이 되어 여기에 반영되는 자연을

그릴 때, 인간과 자연은 '서정'이란 이름으로 만나게 되는 것이죠.

 

 

 

김준권_山韻-0901_Ed.6+AP, 수묵목판_160×400cm_2009

 

김준권 선생님의 모노톤 풍경 연작은

실사를 그린 풍경이 아닙니다. 이것은 현대에 부활된

문인화의 전통을 잇는 다는 점에서 주목해야지요. 구체적으로

어떤 특수한 풍광의 지점을 그리기 보다, 어디에서 본 듯한 익숙하지만

우리의 살과 피를 이룬 이 땅의 산하를 그리고, 그것을 바라보는 작가의 평온함을

담아내기에, 보는 이들에게 더욱 편안함과 쉼의 정서를 주는 것입니다.

 

 

김준권_산에서....0805_Ed.7+AP, 수묵목판_65×120cm_2009

 

마음 한구석이 불편하거나,

구불구불 휘어오르는 듯한 기분에 사로잡힐 때면

그의 작품을 바라봅니다. 작가의 직관적인 시선은 바로 이 땅의 산하에

내재되어 있는 생명의 힘을 일깨웁니다. 풍경은 자연이란 말 답게, 스스로 그 자리에

있음으로서, 먼 저만치의 세계에 있는 인간에게 '그리움'의 정서를 알려줍니다.

바람과 빛이 빚어내는 풍경을 가만히 내 안의 거울을 통해 투과시키는

시간, 사물의 깊은 의미가 스스로 옷을 벗고 제게 속살을

드러냅니다. 문인화의 정수는 바로 여기에 있겠지요.

 

 

 

김준권_산에서....0806_Ed.6+AP, 수묵목판_65×120cm_2008

 

비정성시의 도시, 서울이란 한정된 공간 속에

마치 우리에 갖힌 듯 살아가는 시간. 그 속에서 하늘 한번 제대로

보지 못하고 살아왔다는 후회감이 들때가 많습니다. 인공적으로 조형된 서울은

자연보단, 이제 더 이상의 채색이 불가능한 포화상태의 물감 덩어리 같다는 느낌을 받기도 하죠.

우리의 욕심이, 욕망이, 자본에 대한 열정이, 이 도시를 그렇게 메우고 채워갑니다.

남이야 어떻게 되든 말이에요. 이 폭력의 광기로 가득한 세상을 치유하는건

결국 아름다움의 힘입니다. 꼭 예술을 가까이 하자고 말하는 건

아닙니다. 이미 신은 우리에게 아름다움이 내재된

자연을 주셨으니까요.

 

 

김준권_숲에서 1007_수묵목판_49.5×120.5cm_2010

 

먹물빛깔의 변화가 풍성하고 미세한 목판화 속

자연의 실루엣이 곱습니다. 흔히 이런 화법을 고아수윤, 즉

곱고 단아하고 빼어나게 자연의 속살을 드러내는 그림의 기술이라 불렀지요.

김준권의 목판화의 세계는 바로 이 고아수윤(古雅秀潤)의 세상입니다. 종이에 스민 물맛이

담담아고 아취스럽게 우리내 살터를, 스미며 상처의 균열을 메웁니다.

 

삶을 살아가다 문득 미열에 시달리고 왠지 모를

정신의 허기에 지칠 때, 따스한 목판화의 세계에 젖어보는 것도 괜찮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