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 Healing/내 영혼의 갤러리

인간은 왜 도박에 끌리나-우리가 주사위를 던지는 이유

패션 큐레이터 2010. 10. 1. 15:07

 

 

김현_Dice Cast Dice Cast_주사위, 철사, 석고_가변설치_2010

최근 방송인 신정환씨의 해외 원정 도박문제가 도마에 올랐습니다. 수 억원에 달하는 경제적 손실은 물론이고 방송인으로서의 자신의 이미지까지 실추되었고, 외환관리법 위반으로 법적 처벌까지 받게 되었는데요. 오늘은 미술작품 속에 드러난 '우리들의 도박성향'이랄까? 이런 관점을 생각해볼 수 있는 작품 하나를 소개할까 합니다.

 

 

김현_Dice Cast Dice Cast_주사위, 철사, 석고_가변설치_2010

김현(1974년생) 작가의 설치작품 「Dice Cast Dice Cast」를 본 날은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던 주말오후였습니다. 주사위를 매개로 나와 인간, 우리를 둘러싼 세계에 작용하는 일종의 힘을 설명하려 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 합니다. 유리 벽면으로 구성된 내부가 훤히 보이는 유리상자 공간 속, 바닥에는 수백 개의 주사위와 인간이 벗어던진 듯한 석고로 만든 피부가 널려져 있습니다. 석고 틀 사이에는 3-4천개의 주사위를 이어붙여 만든 인간상이 서 있습니다. 정교함이 놀랍습니다.

 

자세히 보니 우측팔은 현재 만들어지고 있는 과정인듯 보입니다. 왜 작가는 신체를 조형할 때, 이 주사위를 사용했을까요. 그만큼 우리의 정체성이, 개인의 삶이 우연과 필연이란 두 개의 항목 중, 우연이란 요소에 크게 좌우되고 끌리는 것이라고 본 것은 아닐까 싶습니다. 물론 주사위를 던지는 일은 매우 우연에 근거한 것이지만 사실 주사위를 던지는 것을 수백번 시행하면 여기에도 일련의 규칙성이 발견되지요.

 

 

김현_Dice Cast Dice Cast_주사위, 철사, 석고_가변설치_2010

석고 조형을 깨고 나온 인간의 모습입니다. 주사위로 만들어진 인간의 신체가 놀랍지만, 결국 그 속에서 발견하게 되는 것은 삶의 우연성, '우연에의 끌림'입니다. 우리의 내면속에 우연함을 즐기려는 본능이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봤습니다. 도박이 중독이 되는데 기여하는 이 카지노장의 분위기는 과연 무엇일까에 대해서도 생각해 봤죠. 흔히 도박을 위해선 칩이란 불리는 플래스틱 화폐를 사용합니다. 물론 이것은 도박행위의 원할한 진행을 위해 개발된 것이기도 합니다만, 심리적으로는 이 칩은 사용하는 순간, 실제화폐의 가치를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게임에서 '점수'로 환원되어 이해되기 때문에 얼마나 돈을 잃는지 정신적으로 추적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김현_Dice Cast Dice Cast_주사위, 철사, 석고_가변설치_2010

인간이 도박에 끌리는 이유는 위험부담을 감수할 만큼의 도박으로 얻게 될 큰 상금입니다. 물론 슬롯머신을 해보신 분은 이해할 겁니다. 불규칙적으로 발생하는 작은 상금들은 더 큰 베팅을 하라고 우리를 부추기죠. 도박장을 자세히보면 백화점이 고객을 흡입하는 방식과 그리 다르지 않습니다. 조도를 낮추고 시계를 없애 '시간감각'을 애써 지우지요. 잭팟이 터졌음을 끊임없이 주지시키는 다양한 벨소리와 음악들은 돈을 잃고 있는 이들에게, 이 우연한 도박을 지속하면 나도 잭팟이 터지게 될 것이란 희망을 각인시킵니다. 도박장 안에서 알콜음료를 무료로 제공하는것도  결국 의사결정의 날카로움을 무디게 하는데 영향을 미칩니다.

 

카지노는 계층별 고객을 나누어서 오랜동안, 혹은 큰 판돈을 걸고 도박에 임하는 이들에겐 더욱 큰 부가적인혜택을 부여합니다. 티어시스템이라 불리는 것들인데요. 이것이 도박에 임하는 보통 사람들에게 마치 우리가 유사명품을 걸쳐서라도, 신분의 안정과 정신적인 편안함을 취하고자 하는 심리를 무의식적으로 불러일으킨다는 것입니다.

 

 

김현_Dice Cast Dice Cast_주사위, 철사, 석고_가변설치_2010

10월 중순쯤 신정환씨가 귀국하게 되면 조사가 급물살을 타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중요한 것은 이번 사건을 통해서 우리 앞에 펼쳐지고 있는 '도박중독'이라는 사회적 현상을 살펴보는 것입니다. 어디 중독이 도박에만 이르겠습니까? 흡연도 일종의 중독이고, 마약을 상용하거나 쇼핑에 무분별하게 빠지는 것도 중독입니다. 결국 중독이란 심리적 현상의 배후에는 우리 자신에 대한 '자신없음'이란 면모와 만나게 된다는 것이죠. 자존감이 없다보니, 그걸 채우고 망각하려고 다른 매개에 미치도록 빠지는 것입니다.

 

김현_Dice Cast Dice Cast_주사위, 철사, 석고_가변설치_2010

작가 김현의 작품을 보면서 그가 쓴  작가 노트를 읽어봤습니다. "나의 의지(will)는 아마도 다른 많은 의지들과 함께 구성되어 있다"라는 것인데요 이 말은 우리가 이 세상에 태어난 것도 우연과 필연이란 두 개의 얼굴을 가진 사건이듯, 우리의 의사소통과 판단과 결정 모두 우연과 필연 사이의 균형사이에서 발생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에 마구잡이로 던져지는게 아니라, 타인들의 꿈과 희망과 함께 던져지는 존재라는 것. 그래서 더욱 힘을 내어 오늘의 삶을 지속해 가야 한다는 점을 배웠으면 합니다.

 

 

김현_Dice Cast Dice Cast_주사위, 철사, 석고_가변설치_2010

아야야― 함부로 굴리지 마세요 / 다루는 법이 여간 미숙하지 않네요
당신의 짜디짠 슬픔 속으로 / 그렇게 동댕이치지는 마세요 / 육면의 단단한 살갗이지만
눅눅한 담뱃재며 눈물이 배어든다고요 / 당신의 절망 따위에 절여지긴 싫어요
(빌어먹을, 슬픔의 삼투압이라니!) / 이봐요, 이러지 마세요 / 내 속에도 어쩔 수 없는 / 방류된 슬픔 하나 굴러 다녀요
점점이 맺힌 몸뚱어리인데요 / 이리 굴러도 / 저리 굴려져도 / 슬픔만이 또르르 튀어오르는 시간들인데,

아무리 그대― 나를 갖고 놀고 싶어도.  김수미의 <주사위 놀이> 전편

 

경제가 힘들수록 사람들은 배당의 꿈을 품는 도박성향이 나타난다지요. 주사위로 만들어진 우리들은 언제든 우연을 위해 몸을 던질 수 있지만, 우리가 행동하는 작은 하나하나 실천과 삶의 모습들이 세상을 향해, 우연이 아닌 필연이 되도록 노력해보면 어떨까요? 주말이 다가오네요. 이번 주 최선을 다해 살았는지 물어봐야 겠어요. 최근 많은 분들이 찾는 노래 한곡을 올려놓습니다. 사라 브라이트만이 부르는 넬라 판타지아입니다. 모 방송에서 사용된 이후로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영화 <미션>에 나왔던 가브리엘의 오보에란 곡에 가사를 붙인 곡이죠. 이 노래의 첫 가사를 전 좋아합니다. "나는 환상속에서 바른 세상을 바라봅니다" 라는 뜻이거든요. 견고하게 이 지상의 삶을 버티며 살아가는 여러분들에게 '바른세상'이 임하기를 소망합니다. 그들이 꿈꾸는 건강한 환상이 이 세상에 편만하게 퍼지기를 꿈꾸며......힘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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