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 Healing/내 영혼의 갤러리

스누피 로드킬 당하다

패션 큐레이터 2010. 12. 17. 18:23
 
김범준_The Sheepsaekkideul 중 한 마리만 사자_가변설치_2010

난 작가 김범준의 작품을 좋아한다.

우연히 미술데이터베이스를 뒤지다가 찾아낸

꽤나 즐거운 작업이라는 생각, 더하기 세상에 대한 절묘한

풍자가 작품 제목 자체에서 풍겨나서 맘에 들었다. 작년 호텔 아트

페어에 그의 작품이 나왔을 때, 제목을 이야기하다가 하마터면 봉변을 치룰 뻔

했다. 제목을 그대로 읽으면 '십색히들'이 된다. 하나씩 제목을 풀어보면 양을 가르치는

Sheep이라는 단어와 우리말의 어린동물을 가리키는 새끼란 단어를 소리 나는 데로 적은 것이다.

 문제는 두 단어의 조합과 발음상태가 실제로는 세상을 향한 '욕'으로 들리기에

미술관에서 그의 작품을 설명하면서도 진땀을 흘렸다.

김범준_간절한 LUY_ 합성수지에 자동차 도료_45×30×42cm_2010

 

작품 제목을 다시 풀어야 본 작품이 잘 보인다.

<The Sheepsaekkideul 중 한 마리만 사자>란 제목 답게

10마리의 양과 그 중에 사자 한 마리가 섞여 있다. 여기에서 사자 또한

영어의 Lion이 아니다. 한국어 동사 '구매하다, 사다'의 뜻을 가진 Buy의 의미로

중첩시켜 놓은 것이다. 자본주의 시대의 예술은 철저하게 물품의 구매를 통해 작가의 명성이

이어진다. 10명은 이름없는 이 땅의 작가들이고, 나머지 한마리 사자는 바로 스타급

작가이거나, 자본이 풍부한 화랑과 결탁한 언론의 플레이로 성장하는 예술가의

모습이다. 어디 예술계만 그럴까? 패션을 비롯한 '사유'를 파는 상품들의

시장은 김범준의 작품 속 모습을 그대로 닮는다.   

김범준_밀렵#3(밤비의 눈물)_합성수지에 자동차 도료_35×29×45cm_2008

 

겨울이 되면 공무원들은 엉뚱한 일을 하느라

진땀을 뺀다. 바로 야산에서 불법 밀렵을 막기 위한

캠페인을 벌이기 때문이다. 가뜩이나 인간이 점유하는 땅이

자연의 몫으로 남겨졌던 것들을 침탈하며, 그 속에 살아가는 동물들의

생태에 영향을 미치고, 그들의 서식지를 파헤치는 통에, 겨울이 되면 동물들은

배고픔을 견디지 못하고 인근 도로로 내려오다 로드킬을 다하고

혹은 사람들이 쳐놓은 덫에 걸려 목숨을 잃는다.

 

오늘 신문기사엔 참 충격적인, 적어도 내게는

하나의 메시지를 주는 기사가 떴다. 인간과 초파리의

자유의지는 같다란 제목의 기사였다. 거의 무생물처럼 느끼는

작은 곤충들의 섭생에도, 그들의 생에도 실제로는 삶에 대한 의지가

만물의 명장이라 스스로 자칭하며 주변의 모든 것을 지배해도 된다고 스스로

세뇌시켜온 인간의 '자유의지'와 그 내용과 깊이가 별반 다르지

않다는 내용은, 다시 한번 내 마음을 소롯하게 했다.

김범준_로드킬(스누피의 또다른일상)_합성수지에 자동차 도료,에폭시_ 70×70×20cm_2009

 

스누피의 로드킬 조각에서는

대중문화의 아이콘인 스누피를 통해

문화의 은막에 가린, 실제 동물들의 가련한 현실을

꼬집는다. 너무나 사실적으로 표현된 조각작품들은 그저 만화 속

이미지를 차용해 '관람객들의 눈이나 즐겁게 해줄 요량'으로 만든게 아니다.

너무나 현실 같아서, 우리는 때때로 '자발적으로 눈을 감으며 은폐하는' 현실에 대해

생각해 보자고 작가는 말을 거는 것이다. 그것이 예술의 또 다른 기능이기

때문이기도 하려니와, 그들의 마지막 저항이기 때문이다.

 
김범준_인어공주 스시 와 삶은마녀_스컬피에 에나멜 도료_30×30×10cm_2009

김범준의 작업들에는 만화영화에 나오는 캐릭터가 출연한다.

작가는 바니나 슈퍼맨, 스파이더맨, 푸우와 같은 친숙한 대중문화의

아이콘들을 그들이 원래 놓여있는 상황과 맥락에서 배제시켜, 관객들에게

지금껏 그들에 대해 알고 있던 친숙함을 빼았으려 노력한다. 오히려 이런 상황을

통해 '부조리한' 우리 사회의 한 단면을 읽고 소통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인어공주, 스시와 삶은 미녀란 작품을 보면서 왠지 작가가 한국사회에 은밀하게 자행되는

질펀한 룸살롱 문화를 꼬집었다는 생각을 했다. 실제로 작품 속 이미지같이 옷을

 입고 호객과 접대를 하는 술집들이 있지 않은가 말이다.

 

 

김범준_비만 아톰_스컬피에 에나멜 도료, 건전지_35×27×17cm_2009

내가 하고자하는 이야기는 일상고정관념의 탈피이다. 어릴 때 나를 지배하던

TV 만화 속 캐릭터들...하지만 현실에서 그것들은 그렇지 못하다. 어른들이 만든 동물캐릭터들을

통해서 웃고 울며 동심을 교육받고 예절이나 도덕 등을 배운다. 하지만 그것들은 어쩌면 mass media 의 허구 속에 빠져서

그렇게 길들여진 것일지도 모르겠다. 작업을 하면서 문득 생각났다. 동심이란 '아이들의 마음'이 아니라 '어른들이 생각하는 아이들의 마음'

이란 것을... 급격하게 변화하는 현대사회와 Mass madia 의 홍수 속에서 넘쳐나듯 이미지들이 생겨난다. 그리고 그것들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아 인기를 끌거나 혹은 그렇지 못하여 바로 소멸되고 유행의 흐름에 따라 재창조 된다.
나는 이런 현대사회의 흐름 속에 작업을 하는 사람이다. 나 역시 새로운 것을 창조해내서

관심을 끌지 못한다면 그 강물 속으로 쓸려가 버릴 것이다.

 

작가 김범준의 변 중에서......

김범준_어덜트 피노키오_합성수지에 자동차 도료_125×67×150cm_2010

 

나는 한국의 매체 상황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표해왔다.

이틀 전 모 단체에 특강을 나갔다가 강의를 듣는 70여분의 주부들에게

사과했다. 아침드라마와 저녁 드라마, 월화 드라마와 수목 드라마, 금요 드라마

주말 드라마와 유재석과 강호동. 드라마에 중독된 소비자인 주부들에게 비난의 화살도

날려본다. 그러나 이는 상황에 대한 제대로 된 인식이 아니다. 소비자들이 섭취할 수 있는 문화적

영역이 텔레비전 속 드라마 밖에 없는 사회는 불온하다. 문화기획에 관한 꿈을 키우는

나로서는 이런 상황이 되도록, 매스 미디어의 횡포에 맞서지 못하고

 

문화/예술의 수용범위를 스스로 한정시키는 포퓰리즘에

빠져 있었던 것은 아닐까? 소녀시대를 좋아하지만, 문제는 텔레비전에

소녀시대 밖에 없는 이 땅의 대중문화는 위험수위다. 모든 문화가 텔레비전

드라마에 수렴된다면, 더 이상 사회를 향한 발언이나 대안 문화는 만들어질 가능성을

점점 잃게 될 테니 말이다. 문화/연예란 다음 뉴스를 볼 때마다 느끼는

소회이고, 나아가 이 땅의 모든 문화적 역량의 수준이 드러나는 것

같아서 마음이 아프다. 우리는 언제쯤 다양함 그 자체를

향유할 수 있을까? 기다려 보는 수밖에......

 

 

421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