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 Healing/내 영혼의 갤러리

인간의 손길은 전승된다-대한민국 공예대전 리뷰

패션 큐레이터 2010. 9. 22. 00:49

 

 

국립민속박물관에 다녀왔습니다.

매년 이맘때면 대한민국전승공예대전이 열립니다.

전통공예를 보존, 전승하기 위한 공모전 형식으로 열리는 대전인데요

공예기술의 원형을 탐색하는데 그 취지를 두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미처 몰랐던

공예작품들의 정교한 손맛을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거문고의 현이 팽팽하게 당겨져 하늘을

향해 그 속살을 보이며 부끄럽게 소리의 향을 피우는 듯 합니다.

 

 

 

부인들이 큰머리나 어여머리의

앞 중심과 양옆에 꽂았던 머리 장식품을 떨잠이라고 합니다
떨잠은 왕비를 비롯하여 귀족에 한해서 의식 때 사용되던 머리형태인 어여머리나

큰 머리에 꽂던 화려한 수식품(修飾品)으로 떨철반자라고도 하는데요. 떨잠은 여러 가지 모양으로

큰머리 중심과 양편에 하나씩 꽂는데 중심에 꽂는 것은 특히 선봉잠이라고 부르고 양편의 것은 떨잠이라 부릅니다

 

원형 · 각형 · 나비 등 다양한 모양의 옥판(玉板)에 칠보나 진주 · 보석 등으로 꾸민 다음

은사(銀絲)로 가늘게 떨(용수철)을 만들고 그 위에 은으로 꽃이나 새 모양의 떨새를 만들어 붙인 후

이것이 흔들리는 대로 떨게 되어 있어서 머리에 율동감을 주고 한층 화려함을 더해 주지요. 서양에서도 앙 트랑블랭

이라 해서 동양의 떨잠과 같이 용수철을 달아, 보석이 공기중에서 떨리는 효과를 내어, 에로틱한 느낌을

발산하도록 만들었습니다. 보석을 통한 마음의 전달이라고 할까요? 떨리는 소리가 들리시나요?

 

 

직물과 침선, 자수 공예 부분의 수상작들입니다.

붉은 색 철릭이 눈에 들어오네요. 철릭은 상의와 하의를 따로 구성하여

허리에 연결시킨 포(袍)를 말하는데요, 임진왜란을 전후하여 융복(戎服)으로 정착하여

상하의 구별없이 두루 쓰였고, 점점 무관의 평상복이나 교외 거동 때의 복장인 융복으로 주로 사용되었다고 하죠. 

 

 

 

매듭이며 손 가방이 정교하고 촘촘하게 엮여있는 품새에서

공예장인들의 손길을 느끼게 합니다. 손길을 따라, 전승의 방식에도

차이가 생기겠지만 결국 사물을 만드는 인간의 손과 그 온기가 빚어내는

공예정신은 그대로 우리에게 전달되겠지요

 

 

5가지 색상의 소반입니다. 최근엔

북유럽의 단순하면서도 고아한 디자인 정신과

맞물려 많은 디자이너들이 나주 소반의 형식미에 눈을 돌리고 있죠.

우리 조상이 보여준 전통적인 우아함을 가장 잘 담아낸 가구가 아닐까 싶습니다.

 

 

국무총리상을 받은 흑립입니다.

촘촘하게 배열된 갓살을 보니 마음까지 소롯해 지네요.

 

 

불의 자궁 속에서 빚어낸 정신의 형상들입니다.

그릇은 열을 통해 세상에 나와 온갖 상처와 아픔, 욕망을 담아내는

사물로 우리와 함께 하지요. 하나하나 빚어내는 그 손길에 느껴지는 전통성의

매력이 우리를 하나로 묶어냅니다.

 

 

개인적으로 제 눈길을 가장 끌었던 지승향장합입니다.

지승공예기법은 종이를 좁다랗고 길게 잘라 엄지와 검지로 비벼 꼬아

노끈을 만들고 이를 엮어 여러 가지 기물을 만드는 것인데요. 종이를 하나하나 정성스레

꼬아, 여인의 향기를 위한 합반을 만들었습니다. 색채만큼이나 다양한 향이 담겼을 것 같더군요.

 

공예는 인간의 가장 오래된 본능입니다.

공작하는 인간이 성취할 수 있는 예술의 수준을 가장

정확하게 재현해 보여줄 수 있다는 점에서, 과거의 장인들이 손으로

빚어낸 다양한 오브제에는 그 시대의 정신과 함께 장인들의 정교한 의식들이

배어납니다. 우리가 반드시 배워야 하고 전승해야 하는 것들이지요.

명품이 대중생산되는 시대일 수록 더욱 그렇습니다.

 

 

박물관을 나와 광화문으로 걸어가는 길

손을 잡고 걸어가는 연인들이 예뻐서 한 컷 찍습니다.

 

 

 

이날 교보문고에 들러 30여만원 어치

책을 샀습니다. 구두와 복식사, 패브릭에 관한 이론책들

그리고 패션 디자이너 티에리 뮈글러의 도록을 함께 구매했습니다.

나와서 잠깐 산책하는 길, 가을 기운 속에 떨리는 수크령이 삭막한 도시의

한 가운데서도 버텨주는 형상이 눈에 들어와 사진에 담습니다. 도감을 찾아보니

벼과의 식물이라네요. 해설을 읽는 데 멋진 말이 등장합니다. '각혈을 치료하는 길 거리의

땅 지키미'란 말이 나오는군요. 인간과 인간사이, 삭막한 도시의 정경 아래, 소통불능으로 상처난

인간의 마을을, 그 속에서 토해내는 내면의 핏물들을 빨아 막힘을 뚫어내는 힘이 되어주길

바랍니다. 우리의 공예정신도 저 수크령처럼 죽지않고 이어지고 연결되어 우리의

혼을 조형하는 아름다운 기술로 남고 나아가 과거와 오늘의 관계맺기를

가로막는 상처의 각혈을 치유해주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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