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 Fashion/패션 필로소피아

조선일보 인터뷰를 마치고-패션 큐레이터란 무엇인가

패션 큐레이터 2010. 8. 25. 00:30

 

 

모바나 첸 <Wear Me Out> 2007년작 HUT Gallery 서울

 

도시 속으로-우중산책의 시간

 

경기도 미술관의<착하게 입자> 전에서 만난 모바나 첸의 작품을 물끄러미 살펴보고 있습니다. 이 전시의 도록에 <패션 전시의 역사와 의미>에 대한 한 꼭지의 글을 쓰면서 제 나름대로 많은 생각에 빠지곤 했습니다. 모바나 첸은 패션 매거진을 분쇄기에 넣고 돌려 나온 잔여물을 가지고 옷을 만듭니다. 입을 수 있는 옷이라기 보다 기록물을 옷으로 만들어냄으로써, 생각의 단서를 던지는 것이죠.

 

오늘 조선일보와 인터뷰를 했습니다. 화요일 교육 섹션에서 다루는 청소년의 미래의 직업란에 들어갈 모양입니다. 블로그를 쓰다가 종종 패션과 미술을 동시에 좋아하는데,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는 질문을 받곤 했는데요. 그래서인지 인터뷰도 관련 내용이 대부분이더군요. 사실 이런 질문을 받을 때 곤혹스럽습니다. what is 시리즈로 시작하는 질문이요. 자기가 업으로 삼고 싶은 일에 대해, 다시 한번 성찰해야 하기 때문이죠. 큐레이터란 기존의 직업군이 있음에도 왜 이 직업을 레이블로 달고 다니려 하는지 그 심리와 이유에 대해서도 말해줘야 하니까요.

 

패션 큐레이터란 직업이 좀 있어(?) 보이게 들리긴 합니다. 실제 직업이 되려면 경제적인 급부의 해결이나 미래에 대한 전망도 있어야 할텐데, 자칭 국내 1호란 스스로 갖다붙인 호칭 때문에 호사도 누리지만 어깨에 짊어질 '십자가'의 무게도 깊습니다. 이 일을 통해 얻고 싶은 것이 무엇인가 물어보게 되네요. 인터뷰에서 직업 선택시 흔히 빠지는 딜레마들을 풀어보고 싶었죠. 패션 큐레이터를 희망하는 이들에게 권하고 싶은 책을 말해달라는데, 국내에 다룬 책이 없어서 그저 호구지책으로 제가 쓴 <샤넬 미술관에 가다>를 교양 쌓듯 한번 읽어보라고 말하는 데도 왜 그렇게 화끈거리던지요. 물론 앞으로 해 나가면 될 일입니다. 실제로 <샤넬 미술관에 가다>는 분에 넘치는 사랑을 받은 책입니다. 그만큼 수요와 갈증이 있었다는 뜻이겠지요. 책이 잘 나가고 그 덕에 각종 강의와 방송활동에 원고청탁에 부산한 시간들을 보낸 걸 보면 감사의 마음 만큼이나 부담감도 백배입니다.

 

앞으로 패션과 사회, 패션의 인류학, 패션 디자이너들의 개별 작가론, 다양한 예술장르와 패션의 만남을 소재로 책을 쓸 것입니다. 이미 계약도 했구요. 물론 복식사 오디세이아 5부작도 마무리 해야지요. 막막할 때도 많습니다. 기존의 큐레이터들은 패션에 대해 무지하고, 의상학 출신들은 인문학의 렌즈로 옷을 해석하는 일에 미진하다 보니, 두 영역의 간극을 메우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모바나 첸 <Dialog Dress> 2007년작 HUT Gallery 서울

 

제가 인터뷰에서 한 이야기의 핵심은  "패션 큐레이터는 무엇인가"라기 보다 한국사회를 옥죄고 있는 스펙에 대한 열망을 부수자는 것이었어요. 우리는 직업 선택시 기존의 직업군에 맞춰 남보다 '잘하도록' 스펙을 올리는 데만 주력해왔죠. 남보다 잘하는 것을 경쟁의 요체로 삼아온 이유입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남과 '다르게 하는 것'입니다. 더 이상 기존 경력을 위해 경쟁하는 시대가 아닙니다. 남과 다르게 하는 것이야말로, 경영전략의 구루였던 마이클 포터가 주장한 차별화의 본질이 아니겠습니까? 어찌보면 한정된 시장에서 자신의 기술을 팔지 못해 천하를 주유하던 중세시대의 재단사들처럼, 길드의 장인들처럼 이미 한국사회도 공급초과의 시대에 접어들었거든요. 우리는 역사의 딜레마를 그대로 답습하고 있습니다.

 

인문학적 감수성과 용기, 기획력, 아이디어를 구체화하고 사회적 네트워크를 통해 풀어갈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새로운 자신만의 영역과 영토를 만드는 것입니다. 기존의 땅, 권력, 자본에서 강제로 탈영토화된, 대지의 주변부로 밀려난 우리들이 스스로의 지혜를 통해 '우리의 꿈을 재영토화'하는 과정이 필요한 것이죠. 부디 기사를 읽는 학생들에게 조금이나마 인식의 문을 여는 기회가 되었으면 하네요. 패션 큐레이터가 되고 싶어요란 질문보다, 내가 하고 싶은 꿈을 위해서 어떻게 생을 개척해야 하는가로 질문의 답이 귀결되길 바랍니다.

 

특정 스타일의 교육과 전공, 학교부터 나열하는 지금의 교육 방식은 사라져야 합니다. 특정 영역에서 특정 지식을 전수받는 시대는 이미 지났습니다. 지식은 이미 온라인에 산재하고, 슈퍼컴퓨터로도 다 담아내지 못할만큼 가득합니다. 중요한 건 내게 필요한 것을 알아내는 지혜인데, 이 부분에서 대학교육은 이미 죽은지 오래구요. 위기의 시대일수록 근본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우리가 관행적으로 익혀온 모든 것들을 재검증하고 새로운 의미를 부여할 때 돌파구를 찾을 수 있습니다. 저는 그 과정에서 '옷'이란 오브제를 선택했을 뿐입니다. 아이들에게 도움이 되는 인터뷰가 되었길 소망합니다. 2주 후 기사화 된다는데 기대되네요.

 

모바나 첸의 다이얼로그 드레스 작품을 보는 시간, 세상의 모든 옷은 대화를 여는 열쇠말이 되길, 소망하고 또 기대해봅니다.

 

 

421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