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예술캠프 강의도 이제 4주차가 마무리 되었습니다.
강의준비로 보통 50 여시간을 보내며 패션의 통사라 할수 있는 시대별
복식을 살펴보고 있습니다. 이집트를 넘어 그리스와 로마, 지난 주는 로마네스크
시대의 복식을 영화와 다양한 미술작품을 통해 살펴보고 이해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저는
복식을 연구하면서, 국내와 해외의 유수 연구자들과 작가들이 쓴 책들을 참조하고 읽어봅니다.
그러나 항상 아쉬운 것은 대부분 시대별 복식을 양식사적으로 접근한다는 문제이죠. 옷의
특성과 소재, 디자인을 이야기 하기에 급급하다보니, 정작 옷을 입은 인간을 둘러싼
다양한 사회적 풍경에 대해서는 소홀한 것을 많이 봤습니다.
가령 사진에서 보이는 귀네비어 영주가 입은 옷이
중세의 대표적인 옷, 블리오인데요. 이걸 대부분의 복식사 책은
형태상의 특징만을 지적하고 넘어가기 바쁘다는 것이죠. 왜 이런 옷이
등장할 수 밖에 없었고 이후 패션의 세계에 이 스타일의 옷이 어떻게 영향을 미쳤는지가
더욱 중요하지 않을까요? 물론 복식사를 연구하는 데도 여러가지 방법론이 있을 수 있습니다.
전시기획을 할 때, 특정 테마가 선정되면 이것을 어떻게 관객들에게 보여줄 수 있을까 어떤 제시방법을
써야 좋을까 교육목적 중 어떤 부분을 달성해야 할 까를 고민하지요. 저는 복식사를 연구하면서
한 가지 깨달은 것은 옷은 '수천 수만의 인간의 기억이 담긴 매개물'이란 것입니다.
역사학에서도 일상생활 속 사람들의 모습, 먹고 마시고 즐기고
섹스하고 파티하고 연합하고 배설하고 집을 짓고 친구를 사귀는 것과 같이
너무나 진부해 보이는 일상의 형상을 하나씩 복원시켜가며 각 시대별 '의식의 구조'를
밝혀내려는 아날학파의 접근법이 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경제나 정치에 매몰된 역사읽기의
관점보다 좋습니다. 정작 옷을 입은 사람들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살았을까 하는 궁금증을
풀어가기에 좋기 때문입니다. 비루해보이는 우리들의 일상이 사실은 사회에 나가
연기하는 우리의 실존적인 모습을 담는 그릇이듯이 말이지요.
중세 시대는 노르만족이 영국을 정복한 후 함께 흘러들어왔던
모직물 기술자들이 의복 기술의 발전과 더불어 길드를 형성한 후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던 때였습니다.
이번 로마네스크 복식을 강의하면서
어린시절 읽었던 기사문학들, 아더 이야기나 란슬롯 이야기
의 실체 혹은 진실을 함께 밝혀보고 공부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중요한 것은 중세는 우리가 생각하는 단순한 '암흑기'가 아니라 근대로 이어지는
척추의 역할을 하는 정신의 시대였다는 점이었죠. 이런 면모들이 배어나는 옷의 향기를
살펴보는 재미가 솔솔했습니다. 옷은 사회적 산물이기에, 그것을 잉태한 시대의 자궁을 열어
그 속살주름을 하나하나 당겨 펼쳐보아야 합니다. 그것이 제대로 된 옷을 통한
인간의 이해이며 복식사를 공부하는 근본이 되는 거겠죠.
요즘 강의 준비에 블로그를 거의 방치해 두고 있습니다.
앞으로 2주 후면 좀 더 나아지겠죠. 그러나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점점 더 상업화의 일로로 치닫는 블로그스피어에서 얼마나 정직하게 학문적인
내용과 비평적 글 쓰기로 살아남을 수 있을지 걱정입니다. 한국의 시오노 나나미 같이
되고 싶었거든요. 앞으로 다가올 5년 동안 10권의 책을 꼭 쓰고 싶습니다. 패션을 매개로 하여
문학과 건축, 영화 정치와 사회학, 심리학의 경계를 넘는 통섭적 글쓰기를 통해 우리가
걸친 한 벌의 옷이 단순하게 만들어진 물질의 수준을 넘어, 시대의 정신성을
담는 그릇이란 생각을 사람들의 머리속에 심어주기를 바랍니다.
어찌되었든 이번 달 강의 준비하면서
아마존만 호강을 시켰습니다. 300만원 어치 정도 책을
산 거 같네요. 옷과 보석, 헤어스타일, 당시의 문화연구와 일상사 연구 등
어찌나 봐야 할 책이 많은 지 놀라왔습니다. 자크 르 고프의 저술은 벅차지만 매력으로
가득했으며 당시의 그림들은 다소 고졸한 매력을 갖고 있지만, 그 내부는 종교적인
감성으로 무장되어 있는 것들이었죠. 공부하는 시간, 열공이 즐겁습니다.
여러분은 어떠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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