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 Fashion/패션 필로소피아

패션은 제2의 피부-자아의 옷을 벗는 법

패션 큐레이터 2010. 7. 23. 04:21

 

 

 

류혜진_피부자아1 외로움_세라믹_32×28×1cm_2010

S# 패션은 제2의 피부

 

자유예술캠프 강의를 준비하는 시간, 하루에 7시간씩 평균 55시간을 한 시대의 옷을 규정한 정신을 익히는데 쓰고 있습니다. 복식 공부는 끝이 보이지 않는 켄타우로스의 미로와 같습니다. 복식사 공부를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도 새롭게 깨닫습니다. 요즘 라틴어 공부를 게을리 한걸 후회합니다. 죽은 언어로 알려진 라틴어는 실상, 일상생활에서 사용되지 않을 뿐, 고전시대를 연구하기 위한 열쇠와 같습니다. 이집트를 넘어 그리스와 로마 복식의 세계까지 살펴보는 동안, 로마의 작가들을 비롯 철학자들이 써놓은 '옷의 철학과 자기 배려의 기술과 관련된 텍스트를 만납니다만 부족한 실력으로 꼼꼼하게 읽어내기가 쉽지 않습니다.

 

우리는 흔히 패션을 제2의 피부라고 말합니다. 대학1년 때 마릴린 혼과 루이스 구렐이 쓴 <The Second Skin>이란 책을 읽었습니다. 90년대 초반 '학제간적'이란 단어의 의미도 모호하던 시절, 옷을 읽어내기 위해 저자들이 동원한 미학과 경제학, 심리학과 윤리학의 이론들은 놀라왔습니다. 그때부터 다양한 학문의 경계를 넘나들며 '옷'이란 사물을 인간과의 관계에서 바라보는 작업은 흥미로왔고 오늘날 <샤넬, 미술관에 가다>를 저술할 때도 큰 도움을 줬습니다. 물론 이 때는 미학과 미술사의 방법론이 역할을 했죠.

 

 

 

류혜진_피부자아2 그림자_세라믹, 나무_27×22×1cm_2010

 

정신분석가 디디에 앙지외가 쓴 <피부자아>란 책을 읽고 있습니다. 그는 피부가 신체를 감싸듯이 자아가 심리 전체를 감싼다는 의미로 자아를 피부에 비유하고 피부자아를 "심리적 싸개'의 개념으로 확장합니다. 다양한 감각들로 부터 비롯된 이런 심리적 싸개들이 마치 퍼즐 맞추듯 포개어지며 맞춰지는 과정이 자아를 구성한다는 것입니다. 연구하고자 하는 대상, 혹은 담론과 주장을 '비유와 은유'를 통해 풀어내는 과정은 모호한 인식의 경계를 넘어 '대상'에 대한 명확한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돕는 힘이 있지요. 역사에서 뛰어난 철학자는 하나같이 이 비유를 들어 설명해온 이들입니다. 예수와 석가 또한 비유를 들어 자신의 우주를 설명하는 것도 그런 이유일겁니다.

 

작가 유혜진의 작업은 이 피부자아의 개념을 빌려 구현한 내용들로 가득합니다. 사진 속 옷은 도자로 구워낸 '움찔하거나 바람에 나부끼지 않는' 부동의 옷이라는 점입니다. 옷은 인간의 성장에 있어 큰 역할을 합니다. 그저 피부를 감싸고 지켜주는 갑옷의 역할을 넘어 그/그녀의 성격을 만드는데도 일조를 하죠. 갓 태어난 아이들은 피부를 통해 자기를 낳은 부모와 소통하고 관계하는 법을 배웁니다. 흔히 이걸 일본식 영어로 스킨시푸, 스킨쉽(Skinship)이란 표현을 써왔지요. 피부는 서로 접촉하며 타인과 소통합니다. 힘들때 백 마디의 말 보다 따스하게 잡아주는 한번의 손길이 더 고마운 이유지요.

 

류혜진_피부자아3 envelopes_세라믹, 나무_27×22×1cm, 가변설치_2010

작가는 자신이 직접 입었던 옷 위에 직접 세라믹 재료를 녹여낸 후 불로 구웠습니다. 자신의 옷에 각인된 기억들을 불 속에서 구워냄으로써 무엇을 얻고 싶었던 걸까요? 나무 상자속에 마치 잘 개켜놓은 옷가지 마냥, 하나씩 쌓아놓습니다. 적층되는 기억처럼, 옷을 쌓아둠으로써 기억의 지층을 만들려 냈는지도 모를일입니다. 작가는 나무 상자를 컨테이너와 같은 개념으로 본다고 했습니다. 말 그대로 감정을 Container 봉쇄하는 장치일 것입니다. 우리를 둘러싼 사회적인 풍경들이 다 그렇지요. 쉽게 감정을 드러내지도, 그렇다고 마냥 감출수도 없는 어려운 무대니까요.

 

  

류혜진_피부자아4 envelopes_세라믹, 나무_27×22×1cm, 가변설치_2010

그래서인지 모르겠지만 글을 쓰면서 자꾸 몸이 가려울 때가 많습니다. 내면과 외부의 경계에 있는 피부가 가렵다는 건 내면이 아프다는 뜻이 아닐까 생각도 해봅니다. 피부과에도 들렀는데 그냥 스트레스성 피부염이라며 책상에 오래 앉아있지말고 '운동하고 잘 먹어라'는 진단만 받고 옵니다. 그러고 보면 살아있는 모든 생물들은 그 피부에 가장 농축된 영양분들이 들어있다지요. 외부의 불완전한 환경을 버텨내기 위한 자연진화일 겁니다. 인간은 살아가면서 이 피부위에 옷을 입혀왔습니다. 옷을 통해 우리 자신의 내면을 표현하기도 하고 감추기도 하죠. 나이가 들어가면서 누군가에게 속살을 열어 보이는 일이 점점 더 어렵습니다. 속내를 드러내고 진심을 표현하기가 더욱 어려운 것은, 제 피부가 그만큼 외부로 부터 상처를 받아 자꾸 각질이 두터워지는 건 아닌지 살펴봐야 겠습니다.

 

그래도 이런 부족한 나를 감싸주고 안아주는 한 벌의 옷이 있어 고맙습니다. 옷 한벌을 통해 내 생의 작은 여울에 얼굴을 비춰볼 수 있어 행복합니다. 옷을 성찰하고 사유할 수 있는 대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사회. 그것은 타인의 옷을 통해 그의 상처를 이해하는 사회란 뜻이 될 겁니다. 이런 사회에 대한 비전은 과연 얼마나 먼 거리에 있는 걸까요? 블로그를 통해 오르는 패션 관련 글들이 싸구려 스타일 가이드와 코디 내용으로 가득한 세상. 자칭 트렌드를 읽네 어쩌내 하지만 정착 유행을 통해 세상을 읽기 보단 표피적인 분석에 머무는 것도, 여전히 우리 사회 패션 저널리즘의 일천한 수준이 드러나는 지점이겠죠. 글을 쓰면서 원고를 기고하면서 항상 자신에게 자문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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