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 Fashion/패션 필로소피아

기억을 수선하는 법-바느질에 대한 묵상

패션 큐레이터 2010. 9. 6. 13:30

 

 

이지양_Untitled_고기, 조화, 꽃병, 설치_50×20×20cm 2009

 

명품이라 불리는 패션 제품들을 구매하다 보면

본의 아니게 수선을 맡겨야 할 때가 있다. 문제는 수공예 정신의

정점에 서 있는 명품의 특성 상, 한 땀 한 땀 정성스레 짜깁어진 물품을 복원하기란

쉽지 않다. 그만큼의 공임과 기술이 필요하다. 비단 물품의 복원만 그런 건 아닐것이란 생각을

해본다. 세월앞에 장사가 없다는 말을 요즘 같이 피부로 느낄때도 없지 싶다. 글감을 찾아

열심히 몰두하고 연구하고 글을 쓰고 난 후, 몰라보게 푸석해진 피부며, 시간의 흔적

이 할퀴고 간 얼굴의 면면에는 주름살과 깊은 금들이 옷 주름처럼 잡혀있다.

 

내가 아는 몇 군데, 명품 전문 수선가게들이 있다.

주인장들의 바느질 솜씨며 재단 실력이 장인급에 드는 이들이다.

펜디나 샤넬 핸드백을 가져다져도 정확하게 이음새 없이 물건이 만들어진

초기의 바느질 실력을 복원해낸다. 살아가며 받는 상처들, 아픔, 만남으로 인해 생긴

생채기들, 빗금들, 이 모든 걸 바느질로 기워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문득

실력좋은 주인장의 손 바느질 움직임을 보면서 들었던 생각이다.

 

 

이지양_Untitled_고기, 조화, 꽃병, 설치_50×20×20cm 2009_부분

 

작가 이지양의 작업은 지나간 유년기의 꿈과 추억을 모티프로 한다.

인간이 물리적 시간의 궤적을 그리며 살아가는 한, 결코 되돌릴 수 없는 과거의

시간을 그는 현재로 끄집어내고자 한다. 이지양은 바느질이란 행위를 통해 과거와 현재 사이에

놓여진 거리감과 불편한 마음의 풍경을 기운다. 바늘과 실이 만나 봉합하는 기억의 수선소에는 어릴 적

믿음을 버리지 않으면서 외부의 압력을 누그러뜨리고, 자신만의 언어로 소통하려는 작가의 정신이

오롯하게 배어나온다. 남은 자투리 천을 모아 퀼트처럼 엮고 꿰매고 누비고 이어나가며

자신의 내면 속에서 끓어오르는 갈등을 치유하고 다스린다.

 

그는 생고기를 모아 조화로 만든다. 바느질을 이용해 만든 설치작품인데

보는 순간 몸이 얼어붙었다. 고기란 무엇일까? 살아가면서 타인들을 씹고 먹으며

내 성장을 위해 자의적으로 이용한 타인들의 피와 아픔은 아닐까? 그래서일까 언제부터인가

식육을 할 때마다 죄송해진다. 송구한 마음을 기워낼 뭔가 있어주길 바랬다. 고기를 모아

한 송이의 꽃으로 기워 복원해낸 그녀의 솜씨가 놀랍다. 나도 타인들에게 혹은

타자들에게, 죄송한 마음 만큼이나, 상처를 받고 아픔에 져렸을 거다.

찔리고 찌르는 행위의 반복, 어쩌면 바느질이란 이 두가지의

반복이다. 그러나 행위의 누적은 살을 찔러 피를 내기

보다 봉합을 통해 새로운 창조물을 만든다.

 

바느질 하는 여인의 모습에서.......더욱 호흡을 가다듬고

단아해지려는 건 바로 이런 생각 때문일거다. 80이 넘은 침선장

선생님의 바느질 하는 시간, 그 시간을 묵묵히 바라보며 사진을 찍었던

적이 있다. 침선장 선생님과 나 사이엔 어떤 소통도 없었는데, 그저 옷감을 자르고

바느질 하는 풍경만은 비디오로 담으며 때로 스틸 작업을 했을 뿐인데, 왠지 모르게 그날

답답했던 마음의 한 구석이 트이는 느낌이 들었다. 작가 이지양의 설치작품에서

느낀 것도 바로 이런 감정이 아닐까? 이런 날, 문득 손바느질 하고 싶다.

내가 아프게 했거나 혹은 나를 아프게 하느라, 또 어느 한 곳이

상처받았을 이들을 위해 봉합의 기적을 이뤄내고 싶다.

 

아픈 기억을 수선하는 바느질 공장이 있다면.......얼마나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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