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드라마 <나는 전설이다> 화면 캡쳐
SBS 월화 드라마 <나는 전설이다>를 봤다. 첫회 분 치곤 두 자리수의 호의적인 시청률과 더불어
좋은 출발이다. 드라마 제작 초기 부터 김정은의 드레스 값만 수억에 이른다는 소문이 돌며 호사가들의
입방아를 찧었던 드라마가 공개되었다. 극 중 김정은의 캐릭터는 굴지 규모의 로펌 대표 변호사의 아내이다.
예전 왕십리에서 '침좀 뱉었던'과거는 난데 없이, 조신한 상류층 사모님이 되어버린 여자다. 내가 관심을 가지는 건
극중 그녀의 옷차림이다. 단순하게 옷의 스타일이나 가격, 혹은 구설을 이야기 하자고 쓰는 글이 아니다.
청담동 며느리룩이라 불리는 상류층 여성들의 패션 코드를 그 역사와 더불어 생각해 보기 위함이다.
우리 사회에서 언제부터인가 재벌가 가문의 여성들의 옷차림을 가리켜 '청담동 며느리룩'이란
레이블이 붙었다. 왜 이런 명칭이 생겨났을까? 사실 청담동 며느리 룩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게 바로 샤넬의
트위드 정장 수트다.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이르는 시간, 복식사는 패션의 노예였던 여성들을 자신을
옥죄었던 의상에서 해방시키는 '복식개혁운동'의 움직임을 보여준다. 이후 건축의 기능주의와 맞물려
의상은 장식을 최대로 줄이고 형태상의 간결미에 근거한 의상들이 대거 등장한다.
©SBS 드라마 <나는 전설이다> 화면 캡쳐
김정은이 주연을 맡은 <나는 전설이다>는 바로 우리시대의 신데렐라의
삶, 그 이후의 생을 보여주는 드라마가 될 것 같다. 지금껏 재벌가문의 며느리가 되는게
이야기의 마지막 결론이었던 드라마가 판을 쳤다면, 이 드라마는 그 결론 이후의 이야기를 다루는 셈이다.
이야기의 전개는 빠르고 갈등이 될 만한 인물간의 교류관계도 거의 투명하게 보인다.
©SBS 드라마 <나는 전설이다> 화면 캡쳐
외국영화들 중 흔히 신데렐라 스토리를 가진 영화들은
영화 끝에 꼭 Happily Ever After(그 후로도 그들은 행복했습니다)란
수사를 집어넣곤 한다. 사실 안데르센 식의 결말이지만, 어른이 된 지금 가장 궁금한 건
그들이 정말 '그후로도 오랜동안 행복했을까?"에 대한 것들이다. 결국 <나는 전설이다>는 신데렐라
이야기의 변형된 구조다. 그러나 왠지 여기서 멈출것 같진 않다. 단순한 변형에서 끝나서는
안되기 때문이고 그 경우 이야기가 중간지점에서 힘을 잃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첫회 분에서 가장 눈에 들었던 것이 남편의
대표직 축하행사에서 김정은이 입고 나온 베어탑 드레스다. 블랙과 화이트가
균형잡힌 실크 드레스 위로 진주 네크리스를 함으로써 단순함이 주는 강력한 아름다움을
표현했다. 헤어스타일을 정갈하게 빗어 뒤로 넘긴 것도 이런 느낌을 살리기 위해서였으리라 생각한다.
©SBS 드라마 <나는 전설이다> 화면 캡쳐
왜 드라마 속 재벌가문의 며느리들은
샤넬 풍의 수트나 간결한 느낌의 드레스를 선호하는 것으로
나올까? 샤넬은 럭셔리의 반대말은 천박함이라고 말한다. 그만큼 겉으로
지나칠 정도록 장식적이 옷 보다는 능률적이면서도 새롭게 시작된 산업사회의 미감을
담아낼 드레스가 필요했던 셈이다. 우리시대의 청담동 며느리룩은 바로 자본이 중심이 된 시대의
여성들의 활발한 사회활동, 나아가 기능성을 살린 일종의 군복인 셈이다. 물론 그들만의
지위상징성을 살린 패션이기도 하고. 그러고 보면 의상의 간소화 경향이 드러난 것도
세계 대전으로 인한 산업계의 공백을 여성들이 메우면서 부터다.
청담동 며느리룩의 본질은 간결함 속에 감추인 치열한 부르주아 계층의
전투의식이다. 일상을 검정과 화이트를 비롯한 몇 개의 컬러 스케일로 규정한 후
철저하게 균형잡힌 우아함과 연출된 미를 드러낸다는 데 그 의의가 있을 것이다. 삶의 전쟁은
바로 기업을 비롯한 일상, 파티, 사람들의 관계와 모임 모든 자리에서 벌어지는 것이니
그 전쟁터를 위해 만들어진 패션의 코드라고 이해하면 좋지 않을까.
©SBS 드라마 <나는 전설이다> 화면 캡쳐
드라마 작가는 이번 <나는 전설이다>가 일종의 성장 드라마의 성격을 띠게 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우리 시대, 여성들의 '성장'이란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일까? 적어도 이 드라마에서
내가 기대하는 것이 이것이다. 단순하게 지금의 지루한 삶을 박차고 나와서 '보컬밴드로 성공하기?" 이후
지금껏 자신을 여자로 봐주지 않았던 남편에게 다시 간택되기. 이건 아니지 싶다. 물론 이야기 중간 중간에 끼어들
삽화같은 이야기들의 구조도 빤해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드라마가 싱싱하게 우리 사회 30대 후반에
접어든 아줌마들의 삶을 자연스레 드러내주길 기대한다. 성공중독 워커홀릭 강수인의 캐릭터와
건강식품 판매원인 화자 아줌마, 남편을 따라 아이들의 교육 때문에 외국으로 떠나는
기타리스트 해나, 그녀는 자녀교육에 모든 걸 올인하는 우리 사회의 주부들의
모습이다. 인생역전 혹은 유쾌하고 통쾌한 뒤집기란 식의 진부한
수사는 그리 어울리지 않는다.
©SBS 드라마 <나는 전설이다> 화면 캡쳐
나는 개인적으로 이 드라마가 진중하게 우리 시대의 줌마렐라를 꿈꾸는
여성들의 삶을 제대로 드러내주길 기대한다. 블랙드레스에 진주로 포장한 재벌가문의
며느리 대신, 청담동 며느리룩을 입는 인생이 마냥 행복할 것이란 환상을 주입하기 보다는
그 삶의 간극에 개입되어 있는 답답한 삶의 구조와 그들의 치열함 또한 이해하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
럭셔리는 정신의 충만함에 있다고 하지 않았던가? 여성으로서의 전쟁에 나가기 위해 입는 청담동 며느리 룩보다는
밴드의 꿈을 향해 '자신의 몸에 맞는 옷'을 골라입는 그녀를 보고 싶다. 오늘 2회차 기대된다.
본 글에 사용된 이미지는 드라마 비평 및 복식상의 이해를 돕기 위한 자료로서 사용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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