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 Fashion/패션 큐레이터의 서재

무늬에 홀리다-왜 우리는 물방울에 끌릴까

패션 큐레이터 2010. 7. 27. 19:09

 

 

 

무늬에 홀리다......

 

이번 달 입고된 45권의 책 중 시대별 문양과 패턴, 무늬에 대한 책들을 살펴봅니다. 우리의 옷을 살펴보면 항상 압도적인 우위를 차지하는 몇 가지의 무늬들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흔히 땡땡이라 불리는 물방울 도트 무늬와 타탄 체크, 스트라이프, 이외에도 다양한 기하학적인 무늬들이 옷과 건축, 가구, 심지어는 책 디자인과 산업용품, 소비재와 같은 다양안 스펙트럼의 상품 속에 각인되어 있습니다. 이런 것들의 역사를 알아가는 과정은 무늬의 형성과정은 물론이고, 왜 인간들이 특정 패턴과 무늬를 만들어 왔는지에 대하여 좋은 성찰의 지점을 놓아줍니다. 타탄 체크 하나만 해도 스코틀랜드 역사의 대부분을 이해할 수 있는 넓이와 폭의 체계를 갖고 있지요. 어디 이뿐인가요? 줄무늬 스트라이프는 배제와 차별의 상징이기도 했습니다. 물방울은 포용과 질서를 통해 원의 형상속에 .부족한 인간을 껴안아 냅니다.

 

르네상스와 바로크와 로코코 빅토리아 시대의 주요 패턴들과 무늬를 살펴보려 합니다. 시대의 속살을 살포시 뒤집어보는 과정. 정신의 자궁 속에 착상된 시대의 무늬들을 아로새겨져 있을 겁니다. 무늬를 새긴다는 것은 단순하게 장식만을 위한 것이 아니었을지도 모릅니다.

 

세상은 온통 무늬천지다

 

하늘과 땅, 바다, 인간 이들을 꿰뚫고 하나로 엮는 것이 바로 무늬입니다. 비 오는 날 사선으로 쏟아지는 소나기의 무늬에 홀린 적이 있습니다. 더운 여름 굵은 한 줄기의 빗망울이 오와 열을 이루어 회청빛 포도위로 쏟아지는 시간. 가을 햇살은 또 어떤가요? 빗살무늬를 그리고 옹글옹글 익어가는 과실의 표면 위에 그 힘을 쏟지 않았던가요.

 

바다가 그리는 무한반복의 파랑은 어떨까요? 그것은 무한 곡선으로 이루어진 로코코 시대의 건축을 닮았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무늬에 홀릭하는 이유는 그 무늬가 바로 우리의 생의 이면을 보여주는 거울이기 때문입니다. 무늬의 풍경 앞에서 흠칫 멈춰설 때가 있습니다. 부족한 언어로 우리를 둘러싼 무늬들을 형식을 표현해 보려고 하지만, 어렵습니다. 언어 속에 함유된 마지막 수분을 짜내어보지만, 태양빛을 받아 긴 하품을 하는 도시공간엔 무료함 보단, 그래도 무늬가 지켜내는 혼이 살아 있으니까요.

 

복식사 공부는 정말이지 끝이 없군요. 미술사의 논리들을 그나마 조금 건들여본것도 다행이지 싶을 정도로, 텍스타일과 부자재들, 색채와 형태 연구, 유행과 마케팅, 스타일과 양식에 대한 이해가 하나로 돌올하게 말려들어가야만, 시대의 복식이 보이는 이 얄궂은 정신의 노가다를 언제까지 해야할지요.

 

요즘 빗과 부채, 망토, 시대별 주얼리 컬렉션, 가면과 장갑, 머플러 등등 우리의 패션을 구성하는 작은 소품들의 역사에도 눈을 돌리고 있습니다. 좋은 한 권의 책으로 곧 만나게 되겠지요. 내 인생의 무늬는 어떤것일까? 난 어떤 무늬를 사람들의 영혼속에 각인시키고 있을지 오늘도 엄정하게 물어봐야 하지 않나 싶네요. 강의 자료 준비하느라 그나마 짧은 잠을 계속 줄이다 보니 균형이 깨져서인지 조금 힘들긴 합니다.

 

 "그래, 언제 너희들이 은근하게 안아 보듬어 주고 싶은 결 고운 무늬가 되어 본 적이 있었더냐
온몸에 지울 수도 없는 상처를 붉은 꽃문신처럼 아름답게 새겨 본 적이 있었더냐 누이의 오라버니의 그때 흘린 눈물의 흔적이 피의 흔적이 당신들의 땅위에 남아 아직도 저렇게 피고 지고 하는 것을 아느냐  내 몸을 베어 목숨 살린  그 살가운 정한情恨을 아느냐 말이지 봄비 온 뒤 파랑새 살고 있는 동산 위에 뜬  일곱색깔 무지개 빛이라든가 설빔으로 곱게 차려 입고 아침 해를 바라보며 절하는 색동저고리 같은 것이라든가 한 겨울을 꼬치 속에 있다가 어두운 산과 들을 깨부시고 나온 나방의 태극무늬같은 것이 우리들이라는 것을 아느냐 말이지 너희들은 그저 얼룩이었을 뿐이다 빨아도 지워지지 않는 검붉은 핏덩어리 묻혀 놓고 감추려고 안달난 한 마리 겁 많은 짐승이었을 뿐이다  내다 버릴 수밖에 없는 저 얼룩진 마음"

 

시인 김종제의 시를 읽다가 몸 한 구석이 파르르 떨립니다. 얼룩대신 무늬를 새기는 인생, 그 삶을 살아가기를 소망할 수 밖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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