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 Fashion/패션 큐레이터의 서재

패션 큐레이터가 왜 무용책을 읽냐면

패션 큐레이터 2010. 4. 30. 01:07

 

  

 

이번 달 제 서재에는 세실비튼을 비롯, 1900년대 시대별 패션사진작가들의 도록과 패션 디테일을 표현하기 위한 옷본과 레이스를 복식사와 연결지어 설명한 아주 두꺼운, 게다가 큼지막하기 까지한 책이 들어왔네요. 이번달엔 좀 특이한 책들을 샀습니다. 복식사를 공부하면서 가장 심도깊게 파고들어가고 싶은 분야가 바로 무대의상입니다. 세실비튼의 <세기의 아름다움>사진전 오프닝에 다녀왔습니다. 세실비튼의 패션사진이 독보적인 이유는 그가 복식사와 장식미술, 보석의 기호학에 누구보다도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무대의상이란 단지 무대에 서는 이를 위한 의상이 아닙니다. 복식사와 미술사의 결합이 되어야 하고 여기에 사회사와 풍속사까지 포함될 때 탄탄한 해석이 나옵니다. 배우/무용수의 내면적 성향과 심리를 겉으로 드러내는 외피임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무대의상은 일종의 스크린인 셈이죠.

 

최근 국립발레단을 비롯, 강수진 발레 갈라 콘서트, 코펠리아에 이르기까지, 빼놓지 않고 무용작품들을 보고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대형서점의 무용코너에 가면 읽을 만한 이론서들이 썩 많지 않습니다. 일반인들을 위한 무용개론이나, 쉽게 설명한 길라잡이 책도 많질 않죠. 아직 걸음마 수준도 때질 못한 상태이니, 현대무용은 이해가 어렵습니다. 내면으로의 여행, 신체를 통한 성격화, 수축과 이완을 반복하는 무용수의 신체를, 극의 흐름에 따라 이해하고, 이들을 둘러싼 의상의 코드를 함께 맞춰보는 일은 더더욱 어렵습니다. 무대의상이 어려운 이유가, 옷 하나를 만들때, 디테일까지 철저하게 극에 용해되어야 하고, 무대디자인과 조명까지 고려해서 천의 질감을 표현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로저 코플랜드의 댄스 이론과 비평선집들은 앞으로 무용을 좀 더 비평적인 관점에서, 심도깊게 읽기 위해 열심히 읽어볼 참입니다. 앤 달리의 무용의 제스처에 대한 연구나, 관련 논문집도 기대됩니다. 물론 읽기가 수월하진 않을 겁니다. 쉽지 않겠지요. 하지만 꼭 전공을 해야, 뭔가를 배우고 공증받는다는 식의 인식은 버린지 오래입니다. 누군가의 지도하에, 학문의 산을 오르기보다, 저 혼자서 좋은 친구들을 벗삼아 올라가며, 제 호흡을 못 견딜때는 쉬기도 하고, 또 힘이 날땐 한 걸음에 지치는 자신만의 관점과 호흡을 갖고 싶습니다. 세월이 흐르면서, 저 나름의 생각의 체계들을 정리해보는 즐거움이 참 좋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