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 Fashion/패션 큐레이터의 서재

인생은 결국 디테일이 좌우한다

패션 큐레이터 2010. 4. 10. 21:37

 

 

 

패션 큐레이터의 서재에 꽂혀있는 많은 책들 중에서, 그냥 보기에 좋아서 사놓은 몇 권의 책이 있습니다. 책에 쓸 이미지를 위해 구매한 책들입니다. 바로 Fashion In Detail 시리즈입니다. 17-8세기 바로크와 로코코 시대 의상의 실제 제작과 디테일한 면모들을 의복구성의 측면에서 살펴본 책이죠. 실제로 역사의상을 고증하거나 코스툼 드라마 속 역사 의상을 제작하는 무대의상 디자이너들이 주로 보는 책입니다. 저는 의상학을 대학에서 전공하질 않았기 때문에, 복식사나 복식 사회심리학과 같은 텍스트 기반의 공부만 했습니다. 물론 텍스트 기반의 공부가 상대적으로 쉽다는 생각은 버린지 오래입니다. 라틴어도 익혀야 하고 중세 게일어와 같은 지금 '실용적인 목적이 전혀 없는'언어까지 익혀야 하는 일이 수반되며, 수많은 문학작품과 영화, 문화적 산물 속에 옷의 의미를 밝히기도 쉽지 않거든요.

 

복식사를 공부하면서 가장 아쉬운 것이, 박물관 내에 소장된 의상을 보고, 한 눈에 의복구성방식을 깨달을 만큼의 수준이 못된다는 것. 그만큼 옷의 디테일 하나하나를 실제로 만들어 본 사람이면 더 정확하게, (좀 솔직하게 말하면 피가 말리게) 옷의 면면이 보일 거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의복구성과 입체재단 기술을 꼭 배우고 싶습니다. 그래서 책에 나온 옷본을 따라서 실제로 만들어 보고 제작도 하면 얼마나 좋을까. 그냥 저만의 기쁨으로 여기며 해도 재미있는 작업이 되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패션 공부를 독학하다보니, 하면 할수록 욕심만 커지더군요. 중요한 것은 실제 의상을 재현하는 것 만큼이나, 옷에 담긴 이야기를 고고학자가 되어 밝혀내는 작업도 흥미로울텐데 말이에요.

 

 

 

세계적인 복식사가인 발레리 커밍스와 커닝턴이 편집한 복식사 사전과 언더웨어의 제작 방식을 다룬 두 권의 책을 주문했습니다. 아직 출간 전이라 아마존으로 선주문을 해놓았습니다. 복식사엔 수많은 이야기 거리와 사건들이 존재하지만, 실제로 세부적으로 하나하나 밝혀나가긴 쉽지 않습니다. 이럴때 객관성을 부여할 수 있는 사전이 하나 있어도 좋을 듯 싶어서 주문을 했네요. 이번달에도 12권의 복식사 관련 서적과 컬렉션 관련 책들, 잡지들을 샀습니다. 서재가 좁아져서, 오크목 책장을 하나 더 주문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래도 책을 사는 날은 항상 행복합니다.

 

한국복식사를 하는 분은 많아도, 서양 복식의 역사를 진정으로 캐묻고 옷의 은유들을 하나씩 풀어내며, 이를 전시로 엮어내는 분은 거의 전무합니다. 문학수업을 병행해서 듣고 공부하는 것도, 결국은 옷에 담긴 이야기들을 복원하고 현대적으로 풀어내는 데 관심이 있기 때문이죠. 오늘 청담동 꼬르소꼬모에서 패션 사진작가 기 부르댕의 작품전을 봤습니다. 이후 에르메스 매장에 가서 전시가 있는지 확인하러 갔는데요. 참 기분이 나쁜게 문 앞에서 지키는 퉁퉁한 경비분이 난데 없이' 매장에 오셨냐고 묻더군요. 굉장히 불쾌했습니다. 도대체 에르메스 매장은 다이아몬드로 만들어진 궁전이기라도 한 것인가요?

 

패션 소품의 역사를 정리하면서 그래도 에르메스 브랜드의 역사와 의미들을 정리해서 올려보려고 했는데, 그만 기분이 잡쳤습니다. 추후 서술할 책에서도 에르메스 스카프 내용은 완전히 빼고 싶더군요. 과거의 영화와 의미를 가지고 있는 브랜드일지라도, 고객에게 함부로 하는 것들에겐 절대로 기회를 주지 않습니다. 그들은 작은 행동 하나로, 충성고객을 잃은 것이고, 복식사 통사에 기록될 기회를 상실한 것이죠. 당당하게 말할 수 있습니다. 작은 차이를 만드는 것. 그것이 명품의 기품과 장인의식을 연결해온 하나의 고리임을 말이죠. 에르메스 브랜드는 디테일하게 손님을 다루는 법을 좀 배워야 할 것 같네요.

 

옷의 디테일 뿐만 아니라, 그 옷을 구매함으로써, 옷의 기능과 의미를 완전하게 만드는 고객들의 디테일한 감성도 읽을 줄 알아야 할 것 같습니다. 저도 패션 상품의 바이어를 했지만, 고객에게 함부로 하는 것들은, 아무리 브랜드의 역사와 가치를 논하기 전에, 옷을 팔 자격이 없다고 생각을 합니다. 하여튼 스카프 부분에서 에르메스 이미지와 내용은 삭제해야겠네요. 누가 아쉬울지는 두고 봐야 겠죠. 스카프 만드는 브랜드가 뭐 한개만 있는 것도 아니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