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연_내 잔이 넘치나이다.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16.7×91㎝_2009
눈코 뜰새없이 부산한 일정을 소화하는 요즘. 원고를 청탁받아 송고하고, 방송준비를 하고, 강의와 회사일 모두를 잘 해내는게 쉽지 않습니다. 이럴 땐 웅크려 최대한 몸을 밀착시켜 팔에 얼굴을 묻고 울먹이기도 합니다. 혼자서만 달려온 터라, 정말 힘들때 옆에 누군가 있었으면 할 때도 많습니다. 인간이 웅크린 자세로 자신의 몸을 밀착하는 건 타인의 부재 속에서 몸의 접촉 면적을 넓힘으로써, 연대의 에너지를 자가 발전하는 것이라지요. 정혜신 박사님의 글을 읽다가 이 부분에서 무릎을 탁 치고 맙니다. 오늘은 부모님께 들러 저녁을 먹고 돌아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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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연_축복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60.6×72.6cm_2010
우리는 흔히 '사랑의 빚 이외에는 지지 말자'고 말합니다. 이 문장을 다시 읽어보면 내가 먼저 이 아름다운 빚의 채권자가 되겠다는 마음이 잘 드러나지 않는 것 같아서 아쉽습니다. 타칭 성공의 반열에 들었다는 교회에 들러 설교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설교 중에 와 닿는 말이 있었는데요. 자신의 목회성공의 비결은 '자기 사람'을 만들지 않는 것이었다고 하시더군요. 자칭 대형 교회는 엄정한 의미에서 기업 구조와 그리 다르지 않습니다. 교회 전체의 책임을 지는 목사는 자신의 편의와 자신이 쌓은 것들을 유지하기 위해 '자기 사람'을 심으려고 하죠. 기업이나 정치구조도 마찬가지죠. 왜 흔히 대통령의 측근을 가리켜 MB맨 이란 표현을 왜 쓰겠습니까. 그것이 사람 살아가는 하나의 방식이라 그런거지요. 그런데 목사님의 말은 참 달랐습니다. 다른 교회의 목자가 와서 "오른팔이 누구냐"고 물으실 때, 여기 옆에 달려 있는데요 하면서 오른팔을 번쩍 드셨다지요. 하나님이 자신을 '자기 사람'으로 삼았기에 더 이상 목사 자신에게는 '자기 사람'이 필요없다는 게 핵심이었습니다.
한미연_축복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53×45.5cm_2010
문화계에서 이름을 유지하기 위해 어디에 줄을 대야 하나로 고민하는 제게 떨어진 '작은 외침'이었습니다. 나를 믿어주고 선택해 준 이들, 바로 이들이야 말로 세상을 조형한 거대한 힘이, 나에게 보내준 선물임을 잊고 살았습니다. 인디언들은 내 주변에 있는 모든 것들이 신이 보내준 선물이다라는 믿음을 갖고 살았다지요. 이 안온한 세계의 질서가 무너진 후, 자본의 광폭한 열기가 뒤덮은 세상은 어두운 담즙만 가득합니다. 이미 주어진 것, 내 잔이 넘치는 지도 모르고 그 잔을 더욱 채우기 위한 욕망만을 추구해왔던게 아닐까 하고 소롯한 반성을 하는 하루입니다. 사랑의 빚만 지기로 작정하는 채권자의 삶을 살고 싶습니다. 저에게 자기 사람이란 바로 온라인이든 오프라인이든 제 이야기를 들어주고 공감해주며, 같은 세계를 그리기 위해 영혼의 캔버스를 꺼내는 이들이 될 것입니다. 이들을 위해서 오늘 하루도 최선을 다해 살아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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