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 Healing/내 영혼의 갤러리

그리스의 신과 인간 展-인간에게 신의 길을 묻다

패션 큐레이터 2010. 6. 15. 11:53

 

 

#1 그리스의 신과 인간전-신과 인간 사이

 

월드컵 열풍이 뜨겁다. 그리스를 맞아 2-0이라는 호쾌한 결과를 가져다준 경기를 보며, 16강의 꿈도 무르익는다. 기예에 가까운 세트 플레이와 지치지 않는 체력은 한국 축구를 서구의 시선을 끌어냈고, 새로운 가능성의 바다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 그리스와의 경기를 보면서, 그 다음날 본 <그리스 신과 인간>전시를 쓰자니 괜히 미안한 마음도 든다. 스포츠는 스포츠고, 문화와 예술은 또 다른 영역일테니, 어제 OBS 생방송을 진행하면서도 열심히 대한민국 짝짝짝짝짝, 박수를 열심히 쳐댔다. 그,만큼 사회적 길항작용으로, 긴장과 갈등을 토해내는 현 정권의 폭압을 일시적으로라도 잊을 수 있어 좋다. 그렇다. 스포츠를 왜 독재자들이 하나같이 후원했는지는 뻔한 이치다. 모든 것 잊게하고 잠시동안 기층질서를 뒤집어, 새로운 희망이 올 것처럼 말해보지만, 사실은 기층권력을 더욱 공고하게 하는 안전핀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스포츠의 또다른 매력이 있을거다. 적어도 정치가들에게는.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린 세계 문명전 <그리스의 신과 인간> 전시에 다녀왔다. 본 전시는 5월 1일부터 8월 29일까지 진행될 예정이다. 고대문명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한 4번째 전시다. 2008년 <페르시아>를 기점으로 2009년 <잉카문명전>과 <파라오와 미라>에 이어 고대 그리스 미술을 중심으로 그들의 사유와 삶의 방식을 살펴본다. 그리스 로마 문명은 서양의 두 개 핵심사상  헬레니즘과 헤브라이즘 중, 전자의 핵심을 이룬다.

 

복식사를 연구하는 사람으로서, 그리스 의상은 복식 양식의 거대한 흐름을 만들어낸 힘인 것을 부인하지 않는다. 그들의 패션은 영국과 프랑스를 중심으로 한 신체 특정부위를 강조하는 방식의 패션이 아닌, 인간의 신체를 전인격적으로, 조화와 균형의 미를 가진 오브제로 다루었다는 점이 놀랍다. 그래서일까 그리스의 패션은 몸을 종속시키지 않고 천으로 두르는 스타일이 대부분이다. 드러남과 가림, 이중의 매력 속에서 신체의 자연스러움과 가꾼 육체의 아름다움을 뽐낸다.

 

 

그리스의 신들은 인간의 숭배를 통해 영원불멸의 존재로 살 수 있다는 점 하나만을 제외하면 지상의 인간과 동일하다. 툭하면 외도하고 질투하고 변신을 통해 인간을 강간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는 서구 사회문화의 사상적 기조를 이루는 토대가 되었고 현대의 민주주의와 휴머니즘의 근간이 되었다. 어디 이뿐인가? 올림픽의 시조이며 그들의 신화는 오늘날까지도 수많은 문학작품과 연극, 영화의 소재가 되지 않았던가. 그리스의 다양한 얼굴을 살펴볼 수 있는 전시였다. 신들의 모습과 아울러 그들을 숭배하며 폴리스란 오늘날의 민주정을 만들고, 자유의사를 개진했던 고대의 자유로운 인간, 바로 그리스인들에 대한 생각과 풍속, 삶의 방식을 돋보기를 대고 볼 수 있는 기회인 셈이다.

 

 

특히 그리스 후기로 갈수록 오늘날 사실주의풍의 조각들이 더욱 정교하게 조형되었다. 대상을 가까이에서 관찰하여 포근한 일상의 순간을 포착하는 조각가의 시선이 예쁘다. 테라코타로 구워낸 두 소녀의 상을 보라. 곱게 차려입고 공기놀이를 하는 모습은 오늘날 우리의 모습과 그리 다르지 않다.  이외에도 그리스 신화 속 신들의 다양한 면모를 미술작품을 통해 즐길 수 있다. 사랑의 악동, 에로스의 모습을 보라. 에로스의 화살촉은 다이아몬드로 되어 있다. 결국 그 누구도 그 화살을 맞으면 사랑에 빠진다. 다이아몬드의 뜻이 '모든 것을 정복하는'이란 뜻을 가진 건 바로 신화 속 메시지에서 유래한다. 어린 시절부터 즐겨 그리스 신화를 탐독해왔지만 대부분 우리가 신화를 접하는 태도는 '그들의 이야기'로 끝나기 일쑤였다.

 

 

그리스 신화가 고전이 된 이유는 오늘날까지 인간의 전형과 내면을 통찰하는 힘을 부여하기 때문이다. 인간의 감정이 어디 세월이 흐른다고 바뀔쏜가? 신들의 쟁투와 연합, 전쟁을 불사하며 때로는 인간을 매개로 내세워 대리전까지 일삼는 그들의 모습은 권력이란 사회적 장치를 둘러싸고 치열한 경쟁을 하는 인간사회의 모습을 드러낸다. 그리스는 동성애가 합법적으로 이뤄진 곳이었다. 그들이 말하는 정신적 사랑이라 포장되는 플라토닉 러브란 실제로 운동선수들이 몸을 단련하는 연무장에서, 공공연히 벌어지는 어린 소년에 대한 성인 남성의 구애를 에둘러 표현한 것일 뿐이었다.

 

 

#2 올림픽의 인간, 신을 닮아가다

 

운동 선수가 원반을 던지기 직전의 순간을 포착한 대리석상을 보자. 그들은 전시가 아닌 평시에는 운동을 통해 완벽한 신체를 가꾸는 것을 소중한 가치로 삼았다. 이 상의 몸과 팔다리의 자세 및 위치는 그리스인이 이상적으로 생각한 균형감과 리듬감을 담고 있다. 그리스 미술은 인체에 대한 발견이 이뤄진 시기다. 이때 인간의 몸이란 그들은 자유의지를 가진 자유민으로서, 폴리스를 중심으로 오늘날의 민주정을 형성했다. 당시 그리스 민주주의의 풍경은 오늘날 우리들에게 많은 것을 시사해준다. 헬로트(노예)의 강제노동에 의거 국가경제를 이끌어간 스파르타나, 거류 외국인의 존재가 있어야 민주제를 유지할 수 있었던 아테네의 모습은 오늘날 불법체류자와 하층계급의 노동력을 통해 자국의 민주주의와 자본화된 공장생산을 유지할 수 있는 미국의 현실과 닮았다.

 

 

게다가 펠레폰네소스 전쟁의 패전 이후, 아테네에  등장한 30인 참주는 1980년 서울의 봄 이후에 등장한 신군부 세력과 맞닿아있다.  물론 여성들도 자유롭지 않았다. 그들이 상정한 자유인의 목록에는 여성들이 빠져 있었다. 이후의 역사는 페미니즘의 역풍과 더불어 투표권을 가진 주체로 성장하기까지, 그리스 시대의 형상을 그대로 복제한 것과 다름없다. 여성의 일상이 그려진 화장품함 혹은 보석함을 보라. 여인들은 리본으로 머리를 묶거나 상자에서 목걸이를 꺼내고, 향수병을 들고 있다. 털실을 감고 있는 여성의 모습도 보인다. 

 

그리스의 신과 인간전은 오래도록 기다리던 전시였다. 이외에도 그리스 시대의 화장품함, 여인의 일상들, 배우들의 가면에 이르기까지 독특한 작품들이 많이 소개되었다. 책으로만 읽은 그리스 미술에 대한 지식을 두껍게 만들 수 있는 좋을 기회가 아닐까 싶다. 한국의 미술도 시간이 지나며 클래식이 되는 날까지, 이 배경에는 무엇보다 우리의 국력과 문화의 힘이 바탕이 된다는 점도 알았으면 한다. 오랜 시간이 걸리는 도전이겠지만 한류라는 것이 단순하게 운동 경기 몇 게임, 연예인들의 해외 진출 정도로 해결되는 게 아니란걸 배우는 기회가 되면 한다. 클래식이란 시간의 흔적, 그 광폭한 망각의 시간을 넘어 현재까지 의미를 지니는 것이기에, 한국이 이제 클래식이 되어보자고 말하는 건 이상이지만, 멋진 도전이 될 것 같다.

 

사진제공 : 국립중앙 박물관   글과 취재 : 김홍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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