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 Healing/내 영혼의 갤러리

천안함 희생장병을 위한 그림-아름다운 폭풍이 분다

패션 큐레이터 2010. 6. 1. 00:59

 

박혜원_beautiful storm_OHP 필름에 아클릭채색_33×33cm×46_2010

S#1 꽃이 떨어진다, 울고 싶다

 

천안함 사건 후, 한국사회는 격변의 시간을 겪고 있습니다. 징고이즘(Jingoism)이라 불리는 호전적 전쟁주의가 부상하고 천안함 사태의 배후로 '북한'이란 불구대천의 원수를 상정한지 오래입니다. 그들의 범죄 여부를 떠나 제가 화가나는 건, 천안함 사건 이후 누구도 이 사안에 대해 책임지지 않고 있으며 군의 수뇌부 누구도 문책없이 슬그머니 사건을 넘기고 있다는 점입니다. 북한공작에 의한 것이라면, 이 땅의 해군력과 운용방식에 대한 반성과 사과가 뒤따라야 할 것 같은데, 어디에도 이런 사과는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참으로 어처구니 없고 뻔뻔스런 작태입니다.

 

 

박혜원_silent storm_OHP 필름에 아클릭채색_80×105cm_2010

정보의 비대칭 상황 속에서 언론과 일반 국민은 군이 발표한 내용만을 기정 사실로 받아들일 뿐, 이견이나 다른 관점의 주장을 내밀지 못합니다. 그들이 내놓는 정보는 임시변통의 속성이 강하게 드러났던게 사실입니다. 일관성도 부재했지요.  국가 원로라는 자들은 전쟁을 요구하고 모든 국면을 극과 극이 부딪치는 대국성의 무대로 옮기려 합니다. 선거가 이틀남은 지금, 전쟁의 의지가 얼마나 진실하고 강력한 외침이었는지는 그때 밝혀지겠죠. 선거 후 돌입하는 월드컵 열기로 모든 걸 덮을까 두렵습니다. 국제 사회에서 가해자는 처벌받아야 하며, 우리 쪽의 잘못 또한 반드시 심판대에 올라, 그 책임을 져야 합니다. 이 사안을 잊지 않고, 진행과정을 지켜보려 합니다. 선거에만 이용해 먹고 사후처리를 명확하게 하지 못한다면, 이 또한 현 정권의 책임이 되겠지요.

 

 

박혜원_silent storm_OHP 필름에 아클릭채색_50×104cm_2010

작가 박혜원은 천안함 사태가 벌어진 봄의 시간을 잊을 수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는 현실에 대한 애도와 그 이면에 내재된 양면성을 꽃과 철갑의 천안함을 대비시켜 작품으로 만들었고, 46명의 희생장병에 대한 추모와 슬픔을 승화시켜, 봄날 한없이 아름답게 피었다 지는 벚꽃의 운명에 비유했습니다. 전시회의 제목도 멋집니다. <Silent Storm>, 고요한 폭풍입니다. 그렇습니다. 천안함 사태는 선거의 모든 의제를 덮고 호전의 덫에 빠지게 할 만큼 강력한 폭풍을 만들었습니다. 46칸에 촘촘하게 피어나는 봄꽃은 이 땅을 위해 순수의 영혼을 바친 그들의 넋을 위로하는 작가의 생각을 담습니다.

 

박혜원_silent storm_OHP 필름에 아클릭채색_53×104cm_2010

꽃이 피었다 지는 것은 자연의 운명이건만 천안함 사태로 죽은 46명의 전몰장병들의 산화는 꽃의 죽음으로 해석되지 않는 슬픔을 담고 있습니다. 작금의 우리 내 현실 속에 빚어진 일이며, 그 속에서 젊음의 나날을 펴보지 못한채 주름진 영혼이 되어 떠나야 했기 때문이지요.

 

박혜원_silent storm_OHP 필름에 아클릭채색_104×150cm_2010

벚꽃이 흐드러지게 핀 자리, 그 이면의 그림자 속에 알알이 박힌 우리내 슬픈 젊은 영혼들의 외침이 오늘 이자리까지 들리는 듯 합니다. 햇살과 부대끼며 토해내는 오후의 벚꽃들, 그 낙화의 시간을 마주보며 고요한 상처의 외침은 이제 폭풍이 되어 한국을 흔들겠지요. 그들의 죽음을 헛되이 않기 위해서도, 그래야 합니다. 이 상처를 어떻게 치유하고 보상받을지 고민해야 할테니까요. 참담함을 극복하고 나가는 우리가 되길 바라면서도 여전히 석연치 않은 사실관계의 미로를 거니는 이 마음이 불편합니다.

 

 

박혜원_silent storm_OHP 필름에 아클릭채색_104×150cm_2010

 

박혜원의 작업은 오에치피 필름(OHP film)의 오브제 뒷면에 역순으로 채색을 합니다. 이 작업의 특징은 좌우, 앞뒤가 바뀌 형상과 색의 표면에 달라붙는 안착 순서가 기존 회화와 달리 역순으로 이뤄진다는 것이죠. 역의 과정을 통해서 비로소 앞면의 이미지가 보입니다. 이 과정은 꽤나 존재론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사실(FACT)이라고 확증하고 믿는 모든 것들 또한 역순으로 다시 재구성하고 맞춰볼 때, 진실의 상을 알 수 있게 된 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삶이 그렇고 담론이 그렇고, 이번 천안함 사태와 같은 문제를 바라보고 풀어가는 입장과 방법론 또한 이래야 합니다. 책임을 회피하고 자신의 잘못을 타인에게 전가하기 위한 방식이 되어서는 안되는 이유입니다.  

 

박혜원_silent storm_OHP 필름에 아클릭채색_100×104cm_2010

 

화려한 봄꽃의 소멸 앞에서 영령이 되어 우리곁을 떠난 그들의 모습을 기억합니다. 잊지 않겠습니다. 선거일도 이제 하루 남은 지금, 그들또한 누군가를 선택하고 싶었겠지요. 그들의 양심과 외침이, 여전히 봄꽃은 피었으나 봄이 오지 않는 이 앞뒤로 가로막힌, 슬픔의 시대, 철의 폭력으로 봉쇄당한 이 땅에, 조용한 폭풍이 되어 막힌 담을 허물어 주길 바라고 바랄 뿐입니다. 하늘나라에서, 아름다운 꽃으로 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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