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고궁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영친왕 일가 복식전>에 다녀왔습니다.
이번 특별전에 전시된 복식유물들은 1991년 5월 한일 정부간 협상에 의해 환수된 것들입니다.
아직도 해외의 유수 박물관에 버젓이 놓여진 이 땅의 전통 유물들을 우리 손에 다시 넣기엔, 넘어가야 할
산이 많습니다. 한 세대와 당대를 넘어, 축적의 시간을 경험하며 정신의 화석이 된 우리들의 소중한 유산들을 되찾기
위한 노력, 게을리 해서는 안될 듯 합니다. 서구의 문화약탈의 역사는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에겐 다양한 문화적
상상력을 키워주는 자양분의 역할을 했습니다. 비교문화적 관점을 일찌기 서구인들이 발달시킨 건
무엇보다, 우리로 부터 약탈해간 유물입니다. 이것들을 연구하면서 아시아의 미감과
예술적 감성, 뛰어난 공예의식, 사회구조들을 흡수하고 연구한 것이죠.
대한제국 마지막 황태자 영친왕과 그의 가족들이 착용했던 의복과
장신구 333점이 선보였습니다. 이번 전시를 통해 조선 말기 우리가 쌓아온 예술성과
역사적 의의를 살펴볼 수 있었습니다. 특히 곤룡포와 적의, 자룡포는 왕과 왕비, 왕자의 것으로는
유일한 것이며, 한 가족의 것이어서 의의가 크죠. 한국의 의복 문화를 살펴보면 이미 상고시대 부터 우수한
복식문화가 발전했습니다. 삼국시대에 들어 신분제의 확립과 더불어 사회적 계층을 구분하기 위한 표식으로서의
복식제도가 갖추워졌고, 대 가야 시대에는 둥근 깃 저고리에 모자를 곁들여 쓴 패션감각 또한 선보였죠.
산호 노리개와 보자기
이번 영친왕 일가 특별전에서 눈에 띄는 건 뭐니 뭐니해도 패션의 소품이라
일컬어지는 노리개를 비롯, 여인의 단아한 머리품새를 조율해주었던 비녀들, 옥잠과 같은
부수 부속물들의 화려한 모습입니다. 서구에서도 산호는 아이들의 영혼을 지키는 수호석으로 역할을
했습니다. 산호로 만든 노리개를 감싸고 있는 동일 빛깔의 보자기 또한 화려한 미감을 자랑합니다. 두개의 산호를
이용, 끝에는 용의 머리를 한 은장식을 달고 여기에 매듭을 해서 처리했습니다. 낙지발 모양의 술을 달아,
왕의 장수를 기원했조, 끝 마무리는 금실을 돌려 만든 가락지로 처리해, 섬세한 미감을 보여줍니다.
삼작 노리개의 화려함, 눈이 부실 정도네요.
전통복식을 공부하거나, 연구하는 것은 우리가 예전에
어떤 옷을 입었고 그 사회의 미감을 연구하는 일에서 끝나서는 안됩니다.
오늘날, 전통적 요소들을 해체와 재구성을 통해, 어떻게 새롭게 사용할 수 있을지
무궁무진하게 놓여진 순열조합의 수들을 세어보고, 적용해보는데 진정한 힘이 있습니다.
곤룡포
왕이 행정과 정치 일반 사무를 볼 때 입는 평상복입니다.
여기에 머리에 쓰는 익선관, 허리띠인 옥대, 사슴가죽으로 만든 신발을
신었지요. 그리고 홀을 들었습니다. 홀은 왕의 위엄을 나타내는 상징인데요. 쉽게 말해서
서구의 왕들이 손에 들고 있는 막대기 모양의 장식을 생각하시면 됩니다. 가슴과 어깨 등에는 용의 문양을
넣었습니다. 이 옷은 영친왕이 결혼 후 아버지를 배알할 때 입었던 곤룡포라고 하네요.
임금님의 허리띠인 옥대구요
홍원삼
홍원삼은 궁중에서 왕비가 예복으로 착용한 의복입니다.
겉은 홍색 단이나 사(紗)로 하고 안은 황색을 써서 만들었고 여기에 남색의 단을 둘렀죠.
겨드랑이가 트이도록 만들었으며 뒷자락에 비하여 앞자락이 짧습니다. 소매 끝에는 황색, 남색의 색동과
백색 한삼을 달았는데, 모란꽃을 문양으로 세겼습니다.
홍원삼의 색은 포의 색인 홍색을 중심으로 황색, 남색, 백색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
이처럼 궁중의 예복에 겉감과 안감의 색을 달리하고 색동을 통하여 색이 조화를 꾀하려 한 것은
미적인 기준은 물론 음양의 조화도 함께 고려했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라 할수 있지요.
왕자 까치 두루마기
씨실과 날실을 한 올씩 엇바꾸어 짜낸 질긴 평직 위에
석류와 박쥐, 장수를 염원하는 무늬를 아로새겨 만든 왕자용
까치 두루마기입니다. 안감은 부드러운 명주를 이용해, 아이의 피부에
딱 맞는 느낌을 발산했겠죠. 여기에 노랑, 빨강, 하양, 자주, 분홍, 군청과 같은
6가지 천을 덧대고 포개어서 붙였습니다. 각 빛깔별로 1.5센티미더의 간격을
유지하며 질서감 있는 우리 의복의 단아함을 보여주지요.
진주 두루 주머니
무늬가 없는 빨강색 천으로 만든 향 주머니입니다.
이런 걸 보면 서양과 동양이 비슷한 양상을 띠네요. 서양도 중세부터
주머니에 향을 담아 다녔습니다. 그만큼 향이란 것이 향수의 대용이라기 보다
불교적 관점에서 향은 인간의 각성을 깨우치는 매개였기에 이런 패션 소품들이 등장한게
아닐까 싶습니다. 주머니를 자세히보면 세 송이의 매화꽃이 피어있고, 입새와 줄기, 끝에는 나비를
자수로 놓고 여기에 진주로 장식을 해서 화려함의 극치를 드러냅니다. 주머니 입구에는 6개의 모주름을 잡아서
감색 끈목을 꿰고, 양쪽에는 두줄을 어긋 매껴 만든 도래 매듭과 생강 쪽처럼 만든 생쪽 매듭,
날개달린 국화 문양의 매듭을 만들고, 여기에 술을 달아 장식했습니다.
봄빛이 좋습니다. 우리의 전통복식을 보면
색감과 문양, 패턴에 이르기까지, 그 어느것 하나 서구에
뒤지는 것이 없습니다. 무엇보다 우리의 색, 우리의 감성이 녹아있기 때문인거죠.
급속한 근대화 이후, 우리의 시각은 거의 병적일 정도로 서구의 관점에 녹아들어, 그들이 규정하는
역사, 그들이 규정하는 방식에 맞추어, 우리의 몸과 옷을 찟고 해체시켜 왔습니다.
아직도 극복해야 할 것들이 많다는 것이죠. 우리 내 복식, 그 미감에
푹 빠져 보시는 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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