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 Fashion/패션 필로소피아

이런 패션잡지 하나 만들고 싶다

패션 큐레이터 2010. 4. 15. 01:12

 

 

기 부르댕의 사진전을 본 날, 흐린 날씨에 쌀쌀한 기운이 가득했던 탓에 감청색 수트를 입고 예쁘게 거리를 걷고 싶었던 마음을 접었다. 그리고 들어간 곳은 프렌치 스타일 베이커리인데, 갑자기 이름이 생각이 안난다. 커피를 시켰더니 보울에 가득 담아 내온다. 기분이 좋다. 소맥으로 바삭바삭하게 구운 짙은 암갈색 빵들이 눈에 들어왔다. 주인장이 프랑스에서 오랜동안 제빵기술을 배웠다는데, 미술품을 보는 안목도 훌륭한 듯. 벽면 인테리어에 내가 좋아하는 스페인 작가 에바 아미센의 판화를 걸어놓았다. 나는 그녀의 작품을 꽤나 좋아한다. 작년 판화 아트페어에 앤드류샤이어 갤러리의 대표작가로 출품되어 나왔다. 그때 소품 하나를 샀다. Good Buy 였다.

 

Cabinet이란 잡지가 가게에 놓여있었다. 외국 잡지인줄 알았는데 편집자가 홍대 앞에서 디자인 뮤지엄을 하는 주인장이란다. 오랜 동안 여행을 하며, 디자인 작업을 해온 필자가 자신이 만나고 싶은 디자이너, 공예가, 화가, 패션 디자이너 등 다양한 종류의 크레아퇴르(창작자)를 만나며 인터뷰한 내용이 담겨 있다. 유럽의 전통직조 장인에 대한 내용이 있어 살펴봤다. 잡지가 디자이너들에겐 영감을 주는 소스가 많이 담긴 것 같아 이 자리를 빌어 소개한다.  

 

기회가 되면 주인장과 인터뷰를 하고 싶다. 가구와 앤티크, 디자인 전반에 대해서 배울 수 있는 기회가 될 듯. 세상엔 내공이 강력한 사람들이 많다. 장인들을 인터뷰하고, 과정을 기록하고 정리해서 한 권의 잡지를 만들고, 그 내용이 논문집보다 뛰어나니, 부럽기만 하다. 나는 조사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만남'이라고 생각한다. 지식의 축적과정에서 '시행착오'와 '자신만의 철학'을 견고하게 만든 장인을 만나는 것만큼 힘이 되는 것도 없다. 나는 해당 학위를 가지고 있는 사람보다, 현업에서 '기다림과의 싸움'을 이겨내고 현재의 자리에 선 사람들을 만날 때 더 많은 걸 배운다. 적어도 복식사나 패션미학에 있어서는 학회논문을 비롯해서, 국내 학자들의 글을 썩 좋아하지 않는다.

 

  

 

학생들은 정보검색 과정에서 경험하는 실패의 순간을 두려워한다. 네이버가 구글을 이긴 것은 좋지만, 그 배후를 보면 한국학생들이 네이버 지식인의 정리체계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검색의 우수성을 떠나, 자신이 얻고자 하는 정보를 '다양한 원천을 통해' 찾고 그 과정에서 실패하기도 하고 헛다리를 짚기도 하면서, 연구대상의 실루엣을 정교하게 그릴 수 있다는 걸 알았으면 좋겠다. 어찌된게 학생들의 리포트를 보면 하나같이 답이 같은지. 속으로 찔리지도 않은 것일까? 네이트 초기 광고를 봤다. 이화여대를 다닌다는 모델, '저는 인터넷으로 다 처리했어요'라고 참 뻔뻔스레 이야기한다. 그렇게 수업보고서를 쓰니, 더 배울것도 나아갈 것도 없다.

 

좋은 가르침을 얻기 위해선 '좋은 질문'을 해야 한다. 대학 박사과정을 나와도, 질문 조차 엉터리로 하는 이들을 부지기수로 봤다. 그냥 학위를 따기 위해, 공부를 한 탓이다. 물론 대학이 제대로 가르치지 않은 탓이기도 하고. 최근 외국의 경영학 서적을 보면 두렵다. 인문학과 사회학, 공학이 결합된 통섭의 논리가 종횡무진 글의 행간에 입혀져나온다.  '밥그릇 타령'에 빠진 이 나라의 고답적인 대학이 과연 통섭의 바람을 불러일으킬 수 있을까? 몇몇 대학이 교수평가를 통해 연봉을 조정한다는 소식이 들린다. 고무적이긴 한데, 논문의 질이 아닌 양으로 평가될까 아쉬운 부분이 있다.

 

개인적으로 벨기에 패션학교 출신 디자이너들을 만나고 싶었다. 드리스 반 노튼 뿐만 아니라, 벨기에는 유럽에서 최상급 레이스를 만들어 전량 수출하던 나라가 아니던가? 최근 빅토리아 앤 앨버트 박물관에서 나온 <레이스의 역사>란 책을 들여다 보고 있다. 800페이지에 달하고 시대별 레이스의 특징과 제작방법, 관련 공방 이야기들이 재미있게 적혀있다. 책의 세로길이만 30센티가 넘는다. 외국 박물관들은 왜 그리도 책을 크게 만드는지. 그래도 부럽다. 이렇게 또 내 서재에는 정말이지 커다란 한 권의 책이 공간을 차지하게 되었다. 아이폰으로 스타일 닷컴의 컬렉션 정보를 보는 법을 배웠다. 샤넬을 비롯 원하는 디자이너들의 최신 컬렉션을 액정으로 지속적으로 볼 수 있어 좋다. 패션계에도 Cabinet 같은 스타일의 매거진이 나오면 좋겠다. 월별로 나오는 건 무리일거고, 계간지 정도라면 붙어볼 만 할텐데. 주인장에게 노하우를 물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