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 Fashion/패션 필로소피아

세기의 여신을 만나다-패션초상사진의 거장 세실 비튼 展

패션 큐레이터 2010. 5. 3. 06:00

 

 

S#1 아름다움의 탄생

 

패션초상사진의 거장, 세실 비튼의 <세기의 아름다움>전 오프닝 파티에 다녀왔습니다. 말 그대로 영화사에서 가장 아름다왔던 6명의 미인을 주제로 한 세실비튼의 패션초상사진 전시회였죠. 사진을 내내 보면서, 사진 속 세계로 도로시의 빨간 구두를 신고 들어가고 싶은 욕망이 일었습니다. 저도 헐리우드를 자주 여행했지만, 헐리우드의 역사를 통해 가장 빛난 배우들의 이면이랄까, 영화에서 만나볼 수 없는 그들의 또 다른 실체를 볼 수 있는 것. 그것이 바로 이번 세실 비튼 사진전의 매력이 아닐까 싶네요. 세실 비튼은 영국 출신의 무대의상 디자이너이자, 패션과 초상사진 분야의 거장입니다. 실제 영화의상을 제작해서 오스카 상까지 받았던 다방면의 르네상스적 인간이었죠.

 

 

그는 1904년 햄스테드에서 목재상을 하는 아버지 밑에서 출생, 일찌기 배우가 되고 싶었던 그의 아버지, 연기를 하면서 만난 엄마, 이렇게 영화와 사진이라는 제7의 예술의 유전자가 몸 속 가득히 배어있는 집안이 아니었을까 싶네요. 그의 일대기를 찾아보면 재미있는 것이 1940년대 런던 문학계를 사로잡았던 소설가 에블린 보우와 초등학교를 같이 다녔는데, 에블린이 세실을 꽤나 괴롭혔나 봅니다. 오죽하면 이 내용은 모든 그의 자서전에 등장하네요. 어찌되었던 어린시절 유모에게 부모님이 사진 당시 최고의 사진기종이었던 코닥3A로 사진기술을 배웠다고 합니다. 어렸을 때부터 사진을 잘 찍은 탓에, 영국의 사교계 잡지나 관련 매거진에 사진을 보내 등재되기도 했고요. 이후 캠브릿지의 세인트 존 컬리지에서 역사와 예술, 건축을 공부했습니다. 비튼은 계속해서 사진기를 놓지 않았고, 이때 찍은 공작부인의 사진을 영국판 보그가 구매해 잡지에 등재하면서 세상에 그의 이름이 알려집니다.

 

 

세실 비튼의 패션 사진, 혹은 초상사진은 단순하게 옷을 묘사하거나 시대의 모습을 조망하는 데서 끝나지 않습니다. 그는 1920-30년대 1차 세계대전의 전후반의 영국을 묘사하는데 뛰어난 작가였습니다. 사람의 얼굴을 찍는다는 건 단순하게 아름다운 면모만 뽑아내 증류하는게 아니지요. 시대가 빚어낸 이상미의 속성, 아름다움과 매혹의 코드, 이걸 소화해내는 배우나 젊은 계층의 얼굴을 통해, 시대의 심층부를 드러내는 겁니다. 초상사진은 결코 만만한 장르가 아닙니다. 사람의 얼굴을 찍는것것이 얼마나 어려운 지는, 이 작업을 수 년간 해본 분들은 다 공감할 겁니다.

 

 

그가 찍은 오드리 햅번의 모습을 보고 또 보고, 그렇게 온 시선의 초점을 지방시가 디자인한 드레스의 화려함에 빠져보기도 하고, 그녀의 지중해산 진주 목걸이를 보기도 하면서 전시장에서 시간을 보냈습니다. 사진사에서 세실 비튼은 사실 능숙한 기술적 성취를 이뤄낸 사진가라기 보다는, 강렬하고 화려한 스테이지를 만들고, 배우를 외삽, 순간의 진실을 기다리며 사진작업을 한 작가이기도 합니다.

  

 

저는 사실 세실 비튼을 사진가보다, 무대의상 디자이너로 기억하고 있는 사람 중에 하나죠. 그는 전후 브로드웨이의 뮤지컬과 다양한 작품 속 세트 디자인과 조명, 의상을 맡았고 연기까지 했습니다. 어찌보면 대단한 욕심꾸러기지만, 그 재능 하나만큼은 너무나도 부럽습니다. 바로 <마이 페어 레이디>의 의상을 만들었고, 이후 뮤지컬 <지지>의 의상까지 도맡았죠. 이로 인해 1964년 아카데미 의상상을 받습니다. 이외에도 브로드웨이의 다양한 연극작업을 통해 토니상도 여러번 휩쓸었죠. 특히 69년 <코코>는 비튼의 모든 패션의 상상력이 돋보인 작품이기도 했습니다.

 

그의 작업사진을 하나씩 살펴보다가, 문득 들었던 생각은 그가 가진 '인간관'은 무엇이었을까 입니다. 그는 열정적으로 일기를 썼던 사람입니다. 1922년 부터 74년까지 지치지 않고 그의 모든 작업과 사람들, 영향력과 영감을 하나씩 적어나갔죠. 물론 당시의 솔직한 성격의 소유자였던 그의 일기는 후에 무삭제판으로 공개되기도 했는데요. 당시 런던 사교계와 헐리우드 영화계 인사들의 숨겨진, 놀라운 사실들이 공개되어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습니다. 그가 찍은 엘리자베스 테일러의 모습은 그냥 한 마디로 '여신'입니다. 입을 다물기가 어렵더군요. 다이아몬드와 플래티넘이 함께 세팅된 귀걸이와 목걸이 세트도 눈에 띠고,, 그녀의 실크 오간자 드레스는 황홀함 그 자체입니다.

 

 

어느 시대나 헐리우드는 당대의 '미인'의 기준을 선포할 수 있는 배우를 골라, 스타로 만듭니다. 흔히 이 스타시스템은 시대의 미인형을 사회적으로 공표하는 일종의 체계였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죠. 영화 한 편을 통해, 그 시대의 의상과 메이크업, 헤어 스타일링, 피부 관리, 신체를 조율하고 각인시키는 기술이 총동원되고, 대중을 현혹시키고 관련 산업을 부유하게 만듭니다.

 

 

중요한 건 그럼에도 불구하고, 즉 이러한 사회적 모순을 낳는 영화라는 매체의 속성을 알고 있는 지식인은 예전에도 수도 없이 많았지만, 왜 사람들은 여기에 대해 비평적인 질문을 던지기 보다는 그 세계 속으로 빠져들었을까요? 영화학자들이 흔히 '기만의 메트로폴리스(Metropolis of Make-Believe) 라고 부르는 헐리우드의 매력은 이다지도 강력한 것이었을까요? 바로 세실비튼의 사진은 엄청난 무대화 효과를 사진을 통해 환기시켜준 작가이기도 합니다.

 

 

이런 무대화 작업을 돋보이게 하는 건 시대의 여신들이었죠. 40년대 거칠고 동성적인 이미지의 마들렌 디트리히를 비롯, 한 마디로 여신이란 강력한 힘을 발산하는 엘리자베스 테일러의 완벽한 외모, 이와는 달리 순수하고 소녀같은, 그러나 기품과 우아를 놓치지 않는 오드리 헵번으로 연결되겠죠.

 

 

1972년 뇌출혈로 신체의 오른쪽 전체가 마비가 되기까지, 세실 비튼이 남긴 강력한 무대효과와 배우들의 공모는, 세기의 이목을 끄는 것을 넘어, 시대의 아이콘과 결탁한 미의 산업 전체를 부흥시키는 결과를 빚습니다. 사진 속 배우의 이면이 비춰진 거울 속 가면의 이미지가 바로 그런 세계를 은유적으로 드러내는 건 아닐까 싶네요. 디트리히의 깊은 목선에 남자들의 욕망을 정지시키는, 다이아몬드와 루비, 플래티넘이 함께 세팅된 초커도 눈에 들어오네요.

 

 

이번 사진전을 보면서 느끼는 건, 배우의 이면이라 불리는, 혹은 세월의 결 앞에서 익어가는 인간의 모습을 봤다는 것입니다. 저는 배우들을 만나는 걸 좋아합니다. 연극 배우도 나이가 있는 중견배우들을 만났고, 인터뷰를 하고, 그들의 인상 스케치를 하죠. 앞으로 인터뷰에 오르게 될 다양한 문화계 인사들을 생각해 봅니다. 제가 좋아하는 무용수도 있을거고, 발레리나나 안무가도 있겠죠. 배우나 발레리나, 화가 모두 그들을 만나며 세월 속에 함께 늙어가는 인간의 모습을 봤습니다.

 

특히 배우는 화려하고 아름다왔던 한 때의 시절만을 위해 기억되어서는 안됩니다. 배우또한 그/그녀를 기억하는 이들과 함게 오롯하게 늙어가죠. 세실 비튼의 사진을 자세히보니, 지금처럼 포토샵 기술이 있던 시대가 아니다보니, 자글자글한 얼굴의 표면과 눈가의 주름이 보이더군요. 연기로 기억되는 배우는 그 눈가의 주름이 마치 훈장처럼 더욱 빛나는 건 아닐까요? 우리 시대, 우리가 진정 찾아야 할 배우의 모습이자, 배우에게서, 그/그녀의 연기를 보는 이들이 재발굴하고 찾아주어야 할 미덕은 바로 펼침의 배후에 놓여진 작은 한 가닥의 주름은 아닐까 생각해 봤습니다.

 

*****

프렌치 바이올리니스트 로랑 코르샤가 연주하는 Moon River를 올립니다. 오늘 따라 정말 오드리 햅번의 영화를 다시 한번 보고 싶네요. 한 시대를 살아가면서 누군가에게 아름다운 사람으로, 배우로 기억되고 간직될 수 있는 것. 너무나 멋진 삶일 겁니다. 누구나 꿈꾸는 삶이지만 아무에게나 주어지진 않겠죠.

 

본 블로그에 사용된 사진은 주관사인 컬쳐앤아이에서 허락을 득하고 가져온 것입니다. 이 포스팅을 가져가신 분들이 꽤 있는데요. 물론 제가 일부만 열어놔서 그런 걱정은 없습니다만, 주관사 허락없이 이미지 사용하시면 안됩니다. 아셨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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