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 한국공예관에서 디자이너 이상봉의 30주년 기념식이 열렸습니다. 선생님께서 직접 전화도 주신데다, 작품 전체를 한 곳에 모아놓고 볼 수 있는 기회를 얻기가 쉽지 않았던 만큼, 서둘러 내려갔습니다. 하루 전날 전화를 받은 터라, 원래 약속도 잡혀있었는데 말이죠. 이번 전시의 주제는 <전통과 패션의 만남>입니다. 임옥상 선생님의 글씨체가 프린팅된 쇼파 위에 앉아있는 이상봉 디자이너를 찍었습니다. 위에 있는 붉은 톤의 문신작업은 제가 좋아하는 작가 김준의 작품이구요. 이번에 함께 작업하셨다네요.
선생님과 알고 지낸 지 햇수로 3년. <샤넬 미술관에 가다>가 출간되던 날, 인사동에서 선생님과의 첫만남. 책을 드렸더니, 독특한 책이라며 칭찬도 해주셨고, 그날 새벽까지 전통찻집에서 열렬히 패션 이야기에 빠져들었습니다. 그날 저녁, 화가 임옥상 선생님과 배우 안석환, 미술평론쓰시는 김광우 선생님과 처음으로 만났던 자리였네요. 이후 모임에 제대로 나가지 못해서 송구하기만 합니다. 그때 당시, 새벽 3시가 넘어가자, 제 눈꺼풀은 무거워지는데, 패션에 관한 자신의 관점을 설명하는 디자이너의 눈빛은 여전히 반짝거렸지요. '거장을 움직이는 힘'은 바로 열정이구나란 생각. 패션(Fashion)은 곧 패션(Passion)이구나 하는 생각이었습니다. 디자이너를 완성시키는 힘은 창의력에 체력이 더해지는 건 아닐까 생각이 날 정도였습니다.
전시에서 본 드레스들은 청주의 현직 공예가들과의 협업작업을 통해 만들어진 것들과 기존의 옷이 함께 섞여 있었는데요. 전통 나비 문양을 가죽 패턴 위에 박음질해서 세부적으로 마감한 드레스가 눈에 들어오더군요. 한복의 주름 선을 가죽으로 변용시켜 표현한 것이 눈에 보입니다.
사람들은 이상봉의 옷을 가리켜 '전통과 현대미술을 패션에 접목한 작품'이라고 말합니다. 맞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너무나 진부한 해석입니다. 패션과 미술, 한국 고유의 전통적 미를 결합한 디자이너는 수도 없이 많습니다. 디자이너 설윤형, 오리지널 리(이신우), 진태옥에 이르기까지, 한국에서 파리로 진출한 많은 디자이너들은 한국의 전통적 문양과 패턴에 지속적인 관심을 표명했습니다. 초등학교 6학년때 부터 열독했던 월간 '멋'지를 아직도 버리지 않고 있는 이유는, 바로 이 당시의 디자이너들이 지금 한국의 명장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답을 해야겠지요. 패션 디자이너 이상봉의 차이가, 파리를 넘어 세계가 그의 쿠튀리에 작업에 주목하는 이유가 뭔지 말입니다. 그 특성과 창의력의 중심에 놓여진 해결의 방식을 이해하면, 디자인과 더불어 창의성의 과제를 풀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최근에는 신인 디자이너들 중에 외국에서 졸업과 동시에 주목을 받는 이들도 늘었습니다. 그만큼 선대보다 공격적이고, 시장상황에 더 밝고, 코스모폴리탄적인 사고를 통해 유연하게 디자인을 하기 때문이죠.
이상봉의 작품에는 전통의 샘에서 길어낸 청신함과 더불어, 함께 나누어 마시는 우물처럼 많은 이들의 상상력을 함께 녹여낸 장인의 손길이 있습니다. 이번 전시에도 철사를 엮어 파리의 오트쿠튀르 의상을 만드는 조각가 박승모, 브랜드를 몸에 문신처럼 새기는 사회를 표현했던 김준 선생님과 함께 작업을 했습니다. 요즘 유행하는 협업, 콜래보레이션입니다. 요즘 콜래보레이션이란 단어가 상종가입니다. 상상력 고갈의 시대에 까다로운 소비자의 입맛을 맞추기 위해 상이한 업종 간 디자이너나 예술가들이 함께 작업을 하죠. 문제는 지속성입니다. 잠깐 반짝하고 사라지는 일, 돈은 될지 몰라도 디자이너의 고유한 성격을 드러내는 일에는 오히려 악영향을 끼치죠. 그런 점에서 디자이너 이상봉의 지속적인 콜래보레이션은 내적인 통일성을 갖춘 언어가 되어 가고 있습니다. 끊어지지 않는 열정이 만들어낸 디자이너 개인의 자신이 된 셈이죠. 물론 그 언어의 형성은 여전히 진행형입니다. 어떤 변모와 탈각의 형식을 갖추게 될지는 미지수인 셈이죠.
어찌보면 우리가 알고 있는 세계적 반열의 패션 디자이너들은 자신의 고집을 수십년에 걸쳐서 일관되게 부려온 장인들입니다. 파리를 강타한 일본 출신의 디자이너들이 그랬습니다. 오늘날 일본패션이 세계 속에 저패니즈 쉬크(Japanese Chic)를 심을 수 있었던 것도 여러 디자이너들이 통일성 있게 일본의 복식미학을 세계에 알렸기때문에 가능한 것이었습니다. 물론 여기에는 국가의 전략적인 지원이 도움이 되었습니다. 여기에 비하면 한국의 패션이 세계속으로 파고들기 위해, 갈아엎어야 할 묵정밭은 너무나 넓고 깊습니다. 지원은 전무하고, 디자이너 혼자서 고군분투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번 전시에서 선보인 샤머니즘 시리즈나, 바우 하우스 시리즈, 큐브 시리즈는 패션 디자이너 이상봉의 작가로서의 성향을 명확하게 보여주는 작품들입니다. 현대미술의 다양한 상상력을 프린팅, 옷에 각인시키는 수준을 넘어, 한국의 전통적 패턴을 그대로 차용하기 보다, 해체와 재구성을 통해 새롭게 디자인 한 것이죠. 물론 이런 내용들을 알고 보면, 옷의 형태감이나 미학이 더욱 선연하게 드러납니다.
3년째 파리를 강타한 한글패션은 이제 문화적 아이콘이 되었습니다. 이외에도 보자기와 청초한 소나무는 그가 즐겨쓰는 프린팅의 첫번째 소재이자 한국을 알리는 도상이 되었죠. 한글은 옷 뿐만이 아니라, 도예, 잡화, 문구 등 다양한 상품에 차용되고 있습니다. 디자이너로 활동한 지 이제 30년, 젊은 청년시절 연극에 빠져들었다가, 우연한 계기로 만난 바느질이 가장 행복한 일상의 모자이크가 된 남자.
그는 지금도 고집스럽게 한글과 한국 고유의 전통적 미감을 패션에 녹여내며, 세계를 오갑니다. 종종 전화 통화로 안부나 여쭙는 게 전부일 정도로, 바쁜 생의 일정들을 소화하는 선생님의 건강이 걱정되는 이유입니다. 이번 전시회 후 식사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다 돌아왔습니다. 선생님께서 청주까지 와줘서 고맙다며 꼭 껴안아주셨는데요. 제가 오히려 감사합니다. 패션 디자이너들의 전체 도록 하나 만들어내지 못하는 사회, 예술가들의 작품을 지속적으로 수집하고 저장하는 예술 아카이브 하나 제대로 없는 나라, 바로 이곳에서 발품과 열정으로 지금까지 버텨온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가 거장이라 말하는 패션 디자이너 이상봉 또한 이런 이들 중의 한명입니다. 그저 환한 박수 한번 밖에 드릴 게 없어 제가 죄송하네요.
한국 사회에서 패션이란 거대한 하나의 담론을 다루면서, 많은 디자이너들을 만납니다. 물론 무조건적인 칭찬만 늘어놓을 생각은 없습니다. 하지만 뒤집어보면 이 나라만큼, 개인 디자이너들에 대한 상호인정이 부재하는 나라도 없지 싶습니다. 여기엔 이유가 있겠죠. 앞에서 말했듯, 외국처럼 디자이너 한명 한명에 대한 제대로 된 카탈로그 레조네 하나 출간하지 못하는 사회이고, 의식주 중 태두를 차지하는 옷의 심미성과 철학에 대해, 제대로 생각하지 못한 우리들의 모습이 그대로 투영되어 있을테니까요. 힘들어도 한발자국 한발자국 내쳐 가야지요. 우리자신을 쳐서 복종시키며, 새가 자신의 날개로 몸을 쳐서 날듯, 그렇게 가야지요.
헤어지는 길에 제가 말씀드렸죠 "선생님 이제 평전 쓰실 때가 되었다"고요. 그 책 제가 쓰겠습니다. 인터뷰를 100시간 넘게 해야 할텐데, 또 새벽을 지새우겠군요. 뭐 상관없습니다. 패션(Fashion)은 결국 패션(Passion)이 모여 잉태하는 열매일테니까요. 거장과 중견, 참신한 신인들의 건강한 길항작용이, 우리시대의 패션계에 불어오길 간절히 바랍니다. 패션계 또한 하나의 거대한 숲을 이루는 세계임을 잊어서는 안될겁니다. 명장 그룹과 중견 그룹, 신인그룹이 더불어 숲을 이뤄 생의 섭생을 이어나가는 세계. 조화롭고 서로를 끌어주는 멋진 세계. 그런 세상을 꿈꾸며, 도전하는 디자이너들에게 관심을 끊지 않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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