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 Fashion/패션 필로소피아

패션 마케터가 되고 싶다는 당신에게 1

패션 큐레이터 2010. 5. 23. 20:49

 

최근 한예종 자유예술캠프의 여름 강의를 준비하면서, 분주한 일상을 소화하고 있습니다. 때 아닌 폭우로 기온차가 떨어진 한산한 저녁, 에두른 강변의 풍경을 담으며 또 한차례 땀을 흘리고 들어왔습니다. 길을 걷다보면 저공비행하며 수면 위를 나는 새들을 만나고, 낮은 풀과 여린 꽃들의 수런한 대화도 듣습니다. 오늘은 비가 온 터라, 짙은 회색 구름 아래 어두운 잔영들이 깊게 깔린 물결의 고요함만이 눈에 들어오네요.

  

오늘 컴퓨터를 켜보니 비밀글로 질문이 올라와 있어 작정하고 답을 하기위해 글을 올립니다. 소속학교와 이름은 지웠고요. 질문의 맥락과 내용이 실제로 많은 여학생들이 제게 물어오는 질문인지라, 이번 기회를 통해 조금이나마 답하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요즘 대학생들을 만날 때마다 드는 생각은 교수는 있으되 멘토는 없다는 점입니다. 기업에 가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각 기업들은 최근 멘토 프로그램을 시행한다고 자랑들을 하는데요. 이것이 업무를 가르치거나 조직의 정치학을 가르치는 수준에서 끝납니다. 중요한 것은 삶의 철학을 자신이 롤 모델이 되어 말해줄 수 있어야 멘토가 되는 거지요.

 

Q 안녕하세요 처음뵙겠습니다. 투자론 퀴즈를 준비하다말고 퀴즈 준비보다는 김홍기님과 소통하고자 하는 맘이 앞서 설레는 마음으로 노트북을 켰습니다. 저는 언제나 감각적이기를 추구하는 23살 여대생이고, XXX이라고 합니다 XX대학교 경영학과에 재학중입니다. 패션 마케터를 꿈꾸는 저에게 우리학교는 서양복식사나, 패션마케팅, 섬유에 관한 강의를 들을 수없어 아쉽고 힘든 터였지요. 궁금증을 여쭤봐도 되나 싶습니다.

 

저는 패션 마케팅을 정말 전문적으로 공부해보고 싶습니다. 그래서 취업을 하더라도 수출입업체나 패션 회사에 인턴을 하는 것이 좋을까 생각해보았는데요, 인턴은 인턴이고, 패션마케팅 분야로 의류학과 대학원을 진학하는것을 목표로 삼고있습니다. 제 최종목표는, 브랜드매니저가 되거나 교수가 되고, 제가 좋아하는 우리나라의 신진 디자이너들이나 브랜드의 엔젤 투자자가 되고, 유럽과 중국, 일본 등에 연계시키는 일을 하는 것 까지가 최종 목표입니다. 저에게는 멘토가 전혀 없습니다.

 

패션 마케팅이라는 분야도 사람들에게는 생소할 뿐아니라 마케팅하면 되지않냐고들 하는데요. 이렇게 누군가에게 상담을 요청한 것도 처음입니다. 정말 궁금한게 많습니다. 경영학을 공부하시면서 어떻게 구체적으로 패션분야에 접근해 가시기 시작했는지, 그리고 패션 마케팅에 다가가기 위하여 제가 지금부터라도 할 일은 무엇인지, 의류 대학원을 간다고 해서 패션마케팅에 대하여 많은 것을 알 수 있을지. 혹시 추천해주실 국 내외 기관이나 분야가 있으신지 정말 궁금합니다.

 

Answer

이 학생에게 묻고 싶은게 몇 가지 있는데요. 브랜드 매니저랑 교수랑 엔젤 투자자랑, 연계 프로모터에 이르기까지, 무려장장 4개가 꿈으로 등장합니다. 졸업 후 4가지 꿈을 다 동시에 이루긴 어렵죠. 4가지 꿈의 순서가 연결되어 있다고 보기엔 서로의 영역이 다르기에 묻는 질문입니다. 이중 하나를 선택해서 집중적으로 직능 트랙을 만들어도 쉽지 않은 길이거든요. 4가지 모두 가치적으로 등가가 성립하는지 묻고 싶네요. 그래야 이걸 할걸 그랬는데, 저걸 할 걸 그랬는데란 말이 안 나올거 같아서 그럽니다.

 

이제 첫번째 질문에 답합니다. 경영학을 하면서 어떻게 하면 패션 마케터로 성장할 수 있는가? 여기엔 완벽한 답은 없습니다. 저의 경우엔 백화점에서 패션 바잉을 하고 싶다는 꿈을 갖고 있었죠. 대학시절 저 또한 학교엔 의상학과가 없었습니다. 가정교육과에 부설된 패션 디자인이나 복식사, 피복재료학, 의복구성학 등을 수강하는게 전부였지만 그렇다고 내용이 부실했던 건 아닙니다. 피복 재료학을 텍스트로만 배우는 것도 아니고, 원단시장 다니면서, 학생인거 빤히 아는 주인 아줌마들에게 구걸구걸해가며 스와치 구해 실 풀어보고 조직 공부하고 그랬죠. 지금도 의상학과 간다고 별 다를게 있을거라 생각하지 마세요. 요즘처럼 방학기간 동안 인텐시브 코스의 패션 과정이 많은 것도 아니었죠. 바이어로 오랜동안 유통업체에서 생활을 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많이 배우긴 했습니다만, 회사든 학교든 주어진 것만 주워먹고 다녀선 많은 걸 익힐 수 없죠. 회사 다니면서 틈틈히 연수 다니고, 바잉과 머천다이징 특강 듣고, 선배들 졸라서 장표 따와서 요소들 배우고 그랬습니다. 원단공부도 방직회사 기술이사님들 한테 꿀밤 맞아가매, '나가 이 분야에서 27년간 일을 혀가꼬잉....'하는 자랑들 비위 맞춰주면서 현장도 가고 그렇게 배웠죠. 물론 이렇게 안 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그저 자리에 있으니까 일을 한다는 생각을 가진 직딩들이 많답니다. 성공한 사람과 실패한 사람의 구분은 여기서 나죠.

 

 

머천다이저는 감성과 함께 사업 마인드가 뛰어나야 합니다. 바이어는 업체들 다룰 줄 아는 능력이 우선이구요. 협상력이 중요하겠죠. 실제로 바이어 생활, 컨트롤러 생활 하면서 느낀건, 패션 마케팅과에서 배울 수 있다는 내용이 별 도움이 안되더라는 겁니다. 숫자놀음에 뛰어나려면 개수감각도 있어야죠. 마냥 크리에이티브만 따진다고 바이어 되지 않습니다. 제조업체 사장을 설득하는 건, 시장 내 정보를 재가공해서 보여주는 매출의 비전이지, 그들이 내미는 패션미학에의 동조가 아닙니다.  패션 바이어나 MD는 원가와 트렌드, 간절기 상품과 본 상품 사이의 사이클과 타이밍을 맞추는 과학적인 산출능력과 동물적인 감각, 재고를 처리하는 기술 등 다양한 직능 기술이 있어야죠. 꼭 이걸 학교에서 배울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상위 학위를 공부해서 얻을 수 있는 거라는 생각을 버리는 게 어떨까요? 요즘 학생들은 하나같이 현장에서 일을 하는 건 싫어하고 자꾸 학교나 학위의 스펙을 높여서 좋은 자리에 가는데만 관심을 갖는 거 같아요. 그러지 마세요.

 

이 세상 어디에도, 현장경험없이, 바닥을 굴러보지 않고, 학위만 높다고 사람에게 고급정보를 다루는 의사결정을 맡기는 회사는 없습니다. 행정 담당자들 중에 자칭 연구소나 관련 필드에서 패션 마케팅 박사학위를 가지고 연구원 하시는 분들 봤는데요. 현실 감각이 너무 없어서 뜬 구름 잡는 소리들 많이 하는 거 봤습니다. 이렇게 되면 안되죠. 뭐 공무원하고 연구원 하면 흔히 '뽀대'는 나겠죠. 그럼 뭐 합니까? 순 허상인데. 맨날 헛소리나 남발하는 교수들 자문위원으로 불러 어떤 이야기를 듣고 싶어하는지 궁금하더군요.

 

 

 

패션 마케팅을 공부하면 패션의 마케팅을 잘 할 수 있을거란 단순한 생각을 버리면 어떨까요? 그만큼 한정된 포커스를 두고 배우는 만큼, 안타깝게도 전문적이기 보다, 시장을 읽는 관점들이 더 약한 경우를 많이 봤습니다. 자칭 의상학과 교수가 쓴 <럭셔리 마케팅>인지 하는 책을 봤는데, 물론 이 책을 쓴 의상학과 교수는 마케팅 전공자였지만 그 내용은 홈페이지를 번역하거나, SWOT 분석만 줄창 해대더군요. 한마디로 허접 그 자체였습니다.

 

제가 삼성 SERI나 혹은 기업 강의에서 강조하는게, 마케팅이란 걸 Myopic(근시안적)으로 보지말라는 겁니다. 이런 질문을 던지는 학생들에게 물어보면 답은 하나겠군요. 제약회사에서 마케팅 하려면 제약 마케팅 석사가 있어야 하고, 공연기획과 엔터테인먼트 회사에서 일하려면 예술마케팅 석사가 있어야 한다는 논리같은데, 솔직히 저는 이 논리에 동의를 못하겠습니다. Specific Marketing Field(특정 분야에 접목된 마케팅)을 공부한 친구들의 실력을 보면서 느낀 바고, 실제로 더 협소하고 아는게 없는 경우를 많이 봤죠. 저는 요즘 대학에서 말하는 특화된 교육이란게 제목장사 하는 기자들과 별 다를바 없어 보입니다.

 

마케팅도 깊게 하다보면 소비자 행동과 마케팅 전략(유통, 가격, 제품, 촉진)을 깊게 알게 됩니다. 물론 분과를 일일이 공부하면서 통계학이나 수리적 감각도 놓쳐선 안되죠. 특히 학생들 질문을 듣다보면 가장 해주고 싶은 말이, 기업조직은 마케팅만 있는게 아니랍니다. 기획과 생산, 조달, 마케팅, 재무, 인사, 이 모든 것들이 촘촘하게 연결되죠. 패션 마케팅을 전공한 이들은 스페셜리스트라고 말하고 싶을 지 모르겠으나, 정작 기업에선 포괄적인 그림을 그릴 줄 알아야 의사결정을 합니다. 그러니까 경영학 공부하는거 제발, 좀 꼼꼼히 열심히 제대로 공부하세요.

 

브랜드 매니저와 엔젤 투자자, 아카데미 내의 교수 직능에 대해서는 다음에 설명합니다. 그리고 마케팅을 어떻게 공부해야 하는지도 다음에 이야기할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