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 Fashion/패션 필로소피아

패션의 에로티시즘-기 부르댕의 '당신을 위한 메시지'展

패션 큐레이터 2010. 4. 13. 15:11

 

 

S#1 꼬르소꼬모 가는 길

 

하늘엔 짙은 회청색 구름이 무겁게 걸려있던 오후. 갤러리와 약속을 잡고 청담동으로 꼬르소꼬모로 향했다. 초현실주의 패션사진의 거장, 기 부르댕의 사진전을 보러가기 위해서다. 카메라를 꺼내 사진을 찍었다. 구름 하나하나가 마치 거리란 캣워크를 걸어가는 각 인간의 옷처럼, 미세한 차이가 드러나는 윤곽선을 갖고 있다. 바람에게 맡겨둔 채 사묻 둥둥 떠 있는 비움의 물알갱이들, 구름의 본질은 비움으로써, 하늘을 덮지만 인간의 욕심은 결국 채움으로써, 형광색 간판이 난무하는 도시의 풍경에 방점을 찍는다.

 

  

 

중세 말, 패션 개념의 시작과 더불어 인간의 역사는 옷과 관련된 수많은 매체와의 병렬진화를 지속해왔다. 패션사진의 역사를 보면 근대 패션의 정신이 잘 드러난다. 재현기술을 정점으로 하는 사진이, 시대의 이상적 신체미를 담는 패션과 만나 이뤄진 무대다. 사진의 발명 이후, 자본은 사진기술을 다양한 상업적 측면으로 활용, 그 전략의 방식들을 다양화시켰다. 1920년대 회화같은 스트래이트 패션사진에서 30년대에는 사진의 초현실주의적 경향이 등장했고, 세계대전의 와중, 우울한 시대를 포착하던 패션사진은 50년대 후반에 접어들면서 야외촬영와 이미지 구성에 열을 올린다. 오늘 소개할 기 부르댕은 70년대 최고의 패션사진작가다. 금기시했던 여성의 성욕을 적나라하게 묘사하고, 동성애와 관음증, 복장도착과 같은 내밀한 사회적 현상이 사진을 통해 재현되었다.  

 

 

 

이번 사진전은 두 명의 큐레이터가 공동기획했다. 쉘리 버타임과 니콜 마이어. 오른쪽 세월의 흐름이 느껴지지 않는 미모의 니콜. 그녀는 작가 부르댕이 가장 아끼는 모델이기도 했다. 자신과 함께 작업을 했기에, 작가의 의중을 누구보다 잘 해석해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그래서일까? 전시장에 들어간 순간부터, 전시장의 구성방식과 이미지 배열의 면모가 남달랐다. 검은색 큐브로 막아 영상작업을 볼수 있는 개별 공간을 만들었다.

 

 

작가 기 부르댕은 사진작업 뿐만 아니라, 영상으로도 한 시대를 풍미했다. 부르댕은 1960년대에서 80년대까지, 스튜디오의 패션 촬영장부터 그가 선호하는 여러장소에서 촬영한 영상을 파노라마 프로젝션으로 소개했다. 그는 작품 전반에 걸쳐, 거울 이미지를 사용한다. 거울을 보는 여자, 그 속에 반영된 나의 다른 자아를 보는 주체등, 빛의 반사와 굴절, 반복과 이미지의 잔상을 이용한 영상작업은 독특하다.

 

 

인간은 거울을 통해서, 자아를 발견해왔다. 거울의 역사를 통해 보면, 거울은 단순한 화장을 위한 사물체가 아니다. 좌우대칭의 아름다운 미를 창조하기 위해 끊임없이 거울 속 자신을 동일시하거나, 교정해야 할 대상으로 생각하며 '발달과 진화'를 거듭한다.

 

 

그는 사진을 통해 관객을 매혹시키는 방식으로, 집착에 가까울 정도의 초점 반복을 보여준다. 같은 장면을 반복적으로 촬영하거나 주제를 순환시키는 방법을 통해 마치 사진 촬영 자체를 이야기의 서술과정으로 만든다. 그는 70년대 보그 파리와 구두 메이커인 찰스 주르당의 사진을 담당, 인기를 누렸다.

 

 

내가 기 부르댕을 좋아하는 이유는, 그의 사진 연작들이 따로 노는게 아니라, 하나의 이야기를 구성하면서 연결되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방식으로 작업을 하는 작가들은 수도 없이 많다. 하지만 동시대의 작가들 중에 그의 영향이 그만큼 컸다는 걸 방증하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개인적으로 마네킹을 소재로 한 작품이 눈길을 끌었다. 1920년대 초현실주의 미술이 발흥하던 당시, 데 키리코 같은 작가들은 마네킹을 통해 상업적으로 착취당하는 인간의 모습을 그려냈다. 초현실주의자들은 마네킹을 통해 인간의 잠재의식을 드러내고 에로틱한 대상으로 만들어냄으로써, 사회의 숨겨진 코드를 발견하고 드러내려 했다. 초현실주의 작가인 한스 벨머는 마네킹을 파편조각처럼 만들어, 정신분열상태에 있는 인간의 몸을 드러내기도 했다. 사회학자 수잔 보르도는 <참을수 없는 존재의 무게-페미니즘, 서구문화, 신체>에서 대중매체를 통한 이상화된 미의 이미지가 아름다움의 균질화와 표준화 효과를 초래하고 이것이 여성들에게 지속적인 자기 측정과 교정을 요구한다고 주장한다. 우리 시대의 여성들이 끊임없이 '무리한 다이어트'와 '성형중독'에 시달리는 요소인 셈이다. 사진과 영상은 바로 그 욕망을 만들고 추돌시키는 힘이기도 했다. 이번 기 부르댕의 영상은 바로 그런 욕망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집단 마네킹 사이에서 포즈를 취하는 여인을 보면, 균질화된 몸을 갖기 위해 안달하는 우리들의 초상이 보인다.

 

 

그가 우리에게 주고 싶었던 메세지는 무엇이었을까? 그의 사진은 유독 많은 상념에 젖게 하는 힘을 갖고 있다.

 

 

그가 왕성하게 활동한 1970년대는 금기시된 성적 욕망이 사진의 표면위로 스멀스멀 기어오르던 때다. 사라문이나 헬무트 뉴턴, 데보라 터버빌, 아더 엘고트등이 그랬다. 솔직하고 낙관적인 라이프스타일 중심의 이미지 사진도 아울러 인기를 끌었지만, 결국 모든 걸 아우르는 힘은 '에로티시즘의 재발견'에서 나왔다. 패션사진을 통해 '패션의 담론'을 벼릴 수 있다는 주장에 동의한다. 시대별 아련한 특징들을 하나씩 잡아가다 보면, 당대와 더불어 지난 시절의 미감이 눈에 보이기 시작할 거다. 이번 전시를 놓치면 안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