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숙, Shoeaholic-Black Lace, Oil on canvas, 112.2x162.
패션, 인간에게 말을 건내다
<패션과 판타지>展, 사람에게 옷이 필요한 이유
누가 하이힐을 발명했는지는 잘 몰라요.
하지만 세상의 모든 여자는 여기에 크게 빚지고 있죠
영화배우 마릴린 몬로
S#1 슈퍼맨에 관한 추억
4월입니다. 연두와 분홍이 지천에 깔렸습니다. 봄이 되면 마치 털갈이를 하듯, 새 옷을 주문합니다. 인터넷 쇼핑몰을 다니며 몇 번의 클릭이면 끝납니다. 갈색 가죽 블루종에 파스텔 블루 셔츠, 최근에 살이 빠져서 날카로워 보이는 인상을 가리기 위해 부드러운 느낌의 청신한 물빛 니트 가디건, 베이지색의 트렌치 코트까지. 짧은 봄날의 햇살이, 새롭게 차려 입은 제 몸의 구석구석을 지나갑니다. 어루숭 어루숭 가렵습니다. 직물과 제 신체의 푸른 틈새로 따스한 봄 기운이 도는 까닭입니다. 새 옷을 입으면 기분이 좋습니다.
겨우내 지친 몸도 되살아나는 듯 하고요, 3개월 남짓 되는 시간을 옷장 속 몇 개의 아이템으로, 제 몸에 빛의 금을 세길 수 있다면 그리 손해 보는 장사는 아닌 듯 합니다. 옷은 항상 인간의 이미지를 변형시키는 기능을 하죠. 어린 시절 열광했던 영화 <슈퍼맨>을 떠올려봅니다.
1938년 만화 속 주인공으로 등장한 이후, 사실 슈퍼맨만큼 현대 패션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캐릭터도 없습니다. 스포츠웨어의 절반은 그의 영향권 속에 있지요. 이번 동계올림픽에서 유래 없는 성과를 거둔 스피드 스케이트 분야처럼, 속도를 다루는 기능성 복식에 끼친 영향은 일일이 거론하기가 어려울 정도입니다.
슈퍼맨의 청색 레오타드와 붉은 색 케이프 망토를 생각해볼까요? 평상시 바보 같은 사진 기자인 클라크 캔트는 슈퍼맨의 옷으로 바뀌자마자, 초현실 속 주인공이 됩니다. 영화 속 슈퍼맨의 옷은 단순한 영웅의 식별기호가 아닙니다.
옷은 시대의 정신을 표상하는 기호를 넘어 이상적인 영웅의 신체, 사회가 원하는 몸을 드러내죠. 패션은 착용자를 또 다른 세계로 초대하며 자아와 신체를 재구성하는 일종의 은유로서 역할을 합니다.
S#2 패션은 환상을 창조하는 거울
<슈퍼 히어로즈: 패션 & 판타지> 전은 미술의 관점에서 패션과 대화의 포문을 열고, 착용자의 이미지를 변형시키는지, 이를 통해 서로에게 어떤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지를 묻습니다. 최근 패션과 미술의 접목이 빠른 속도로 이뤄지고 있죠. 두 장르가 결합한다고 미증유의 어떤 것이 탄생하진 않습니다. 각자 격절된 거리 속에서 살아온 두 개의 시선이 만나, 지금껏 보지 못했던 자신의 실체를 밝혀보는 것이죠. 패션의 언어로 패션을 정의하는 것이 아니라, 미술의 언어로 패션이란 실체의 옷을 벗기는 것입니다. 5명의 작가가 동참한 만큼 5개의 독특한 시선으로 규정된 패션의 정의를 읽을 수 있습니다.
백종기_명품아톰_Formex_87x90x14cm /백종기_명품장갑을 낀 아톰_Formex_115x90x18cm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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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문기_Luxury stone3 - 11_37×12×23_native stone
전상옥_A Dress_Oil on canvas_116x91cm_1998/ 전상옥_A Dress_Oil on canvas_145x112cm_2009
최혜경_flight of fancy_oil on canvas_192x160 cm_2007 / 최혜경_wish_oil on canvas_116_91 cm_2008
#3 인간에게 옷이 필요한 이유
패션은 인간에게 ‘세상 속 무대’를 연기할 수 있는 또 다른 아바타를 선사합니다. 제2의 피부로서 사회적 공간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인간에게, 보호와 유혹, 정숙과 세련, 사회적 위상을 부여합니다. 그렇게 인간의 몸과 직물은 서로를 감싸며 또한 그 안에 담긴 자신을 드러내지요. 우리는 패션을 통해,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환상의 세계 속에 머물기도 하고 그 세계를 스스로 창조하여, 다른 사람을 초대하기도 합니다. 아름다운 옷을 입은 여자/남자에게 혹하는 이유입니다. 샤넬이 그랬다지요? 여자를 만난 후, 그 옷이 먼저 떠오르면 그 여자를 만나지 말라고요. 왜냐고요? 그녀는 옷이 기억되는 여자는, 우아함을 위해 ‘옷을 거부할 수 있는 용기’를 가진 여자가 아니라고 했다네요.
본 원고는 4월호 문화공간에 발표될 글입니다. 미리 올립니다.
본 저작물의 권리는 저자에게 귀속되오니 이점 양지하세요. 사진저작 또한 작가들의 허락을 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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