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 Fashion/패션 필로소피아

사람에게 옷이 필요한 이유

패션 큐레이터 2010. 3. 19. 06:30

 

 

박영숙, Shoeaholic-Black Lace, Oil on canvas, 112.2x162.

 

패션, 인간에게 말을 건내다

<패션과 판타지>, 사람에게 옷이 필요한 이유

누가 하이힐을 발명했는지는 잘 몰라요.

하지만 세상의 모든 여자는 여기에 크게 빚지고 있죠

영화배우 마릴린 몬로

S#1 슈퍼맨에 관한 추억

4월입니다. 연두와 분홍이 지천에 깔렸습니다. 봄이 되면 마치 털갈이를 하듯, 새 옷을 주문합니다. 인터넷 쇼핑몰을 다니며 몇 번의 클릭이면 끝납니다. 갈색 가죽 블루종에 파스텔 블루 셔츠, 최근에 살이 빠져서 날카로워 보이는 인상을 가리기 위해 부드러운 느낌의 청신한 물빛 니트 가디건, 베이지색의 트렌치 코트까지. 짧은 봄날의 햇살이, 새롭게 차려 입은 제 몸의 구석구석을 지나갑니다. 어루숭 어루숭 가렵습니다. 직물과 제 신체의 푸른 틈새로 따스한 봄 기운이 도는 까닭입니다. 새 옷을 입으면 기분이 좋습니다.

 

 

겨우내 지친 몸도 되살아나는 듯 하고요, 3개월 남짓 되는 시간을 옷장 속 몇 개의 아이템으로, 제 몸에 빛의 금을 세길 수 있다면 그리 손해 보는 장사는 아닌 듯 합니다. 옷은 항상 인간의 이미지를 변형시키는 기능을 하죠. 어린 시절 열광했던 영화 <슈퍼맨>을 떠올려봅니다.

 

1938년 만화 속 주인공으로 등장한 이후, 사실 슈퍼맨만큼 현대 패션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캐릭터도 없습니다. 스포츠웨어의 절반은 그의 영향권 속에 있지요. 이번 동계올림픽에서 유래 없는 성과를 거둔 스피드 스케이트 분야처럼, 속도를 다루는 기능성 복식에 끼친 영향은 일일이 거론하기가 어려울 정도입니다.

 

슈퍼맨의 청색 레오타드와 붉은 색 케이프 망토를 생각해볼까요? 평상시 바보 같은 사진 기자인 클라크 캔트는 슈퍼맨의 옷으로 바뀌자마자, 초현실 속 주인공이 됩니다. 영화 속 슈퍼맨의 옷은 단순한 영웅의 식별기호가 아닙니다.

 

옷은 시대의 정신을 표상하는 기호를 넘어 이상적인 영웅의 신체, 사회가 원하는 몸을 드러내죠. 패션은 착용자를 또 다른 세계로 초대하며 자아와 신체를 재구성하는 일종의 은유로서 역할을 합니다.

 

S#2 패션은 환상을 창조하는 거울

<슈퍼 히어로즈: 패션 & 판타지> 전은 미술의 관점에서 패션과 대화의 포문을 열고, 착용자의 이미지를 변형시키는지, 이를 통해 서로에게 어떤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지를 묻습니다. 최근 패션과 미술의 접목이 빠른 속도로 이뤄지고 있죠. 두 장르가 결합한다고 미증유의 어떤 것이 탄생하진 않습니다. 각자 격절된 거리 속에서 살아온 두 개의 시선이 만나, 지금껏 보지 못했던 자신의 실체를 밝혀보는 것이죠. 패션의 언어로 패션을 정의하는 것이 아니라, 미술의 언어로 패션이란 실체의 옷을 벗기는 것입니다. 5명의 작가가 동참한 만큼 5개의 독특한 시선으로 규정된 패션의 정의를 읽을 수 있습니다.

 

 

 

백종기_명품아톰_Formex_87x90x14cm /백종기_명품장갑을 낀 아톰_Formex_115x90x18cm

 

작가 백종기는 아크릴로 아톰과 마징가 제트 조각을 만들었습니다. 어린 시절 즐겨보았던 만화 주인공의 몸 위에 브랜드 로고를 그려놓았습니다. 일본 만화에 자연스레 녹아 들어 그 논리의 관람객이 되듯, 우리들의 일상에 침투하는 브랜드 패션과 이를 소비하는 우리들의 관계를 은유적으로 접근하고 있습니다. 양문기의 작품은 더욱 놀랍습니다. 돌을 깎아 핸드백을 만들었습니다. 자세히 보니 샤넬 백입니다. 작가에게 있어 가방은 일상의 소품을 넘어 인간의 욕망을 표현한 매개입니다. 이게 무슨 말이냐고요? 그는 거친 자연석을 연마해서 매끈한 표면과 거친 면이 공존하는 핸드백으로 만들죠. 거친 질료가 명인의 손길을 통해 명품이란 실질적 가치로 태어나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그의 핸드백은 돌로 만들어진 탓에 들고 다닐 수가 없습니다. 가방의 본질적 기능성을 상실한 것이죠. 대신 우리 속에 잠재된 돌처럼 단단한 소유욕을 보여주기엔 안성맞춤입니다.

 

양문기_Luxury stone3 - 11_37×12×23_native stone

전상옥의 작품은 더욱 놀랍습니다. 언뜻 보면 마치 패션잡지 속 화보 같기도 하죠. 그는 패션 광고의 본질에 대해 질문합니다. 흔히 패션사진을 가리켜 World of Bi Spread Wings 즉 두 개의 펼침 면 속 세상이라고 부릅니다. 그의 작품은 잡지의 한 장 한 장을 확대해 보는 듯한 느낌이 듭니다. 작품들은 패션매거진의 모델을 꼼꼼하고 세밀하게 재현함으로써, 현대사회의 명품중독, 소비의 윤리가 전도된 세상을 그립니다패션광고는 철저하게 순간의 미학입니다. 명멸하는 순간을 응고시켜 영원한 미의 본질로 드러내려는 그의 그림 속, 패션의 디테일들은 화려한 세련미로 가득하고, 그 속에 용해된 우리의 소비욕구를 섬세하게 그려집니다.

 

 

전상옥_A Dress_Oil on canvas_116x91cm_1998/ 전상옥_A Dress_Oil on canvas_145x112cm_2009

 

박영숙의 작품은 또 어떻습니까? 드디어 앞에서 영화배우 마릴린 몬로가 이야기했던 하이힐이 등장합니다. 여성에게 하이힐은 선망의 대상이자 아름다움의 상징입니다. 소녀는 숙녀가 되기 위해 붉은 색 하이힐을 사며, 여인들은 아름다워지기 위해 하이힐을 선택하지요. 또한 남성은 그녀들의 하이힐을 보며 여성의 판타지를 그립니다. "갖고 싶어? 죽을 만큼 갖고 싶어? 그럼 이리와 나를 가져봐-" 하이힐의 아찔함과 유혹적인 칼라가 만들어 내는 이미지는 한 마디로 도발적인 내 안의 공격성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그만큼 하이힐을 신는 순간, 그 어떤 영웅보다 공격적으로 세상을 향해 발포할 수 있는 여성의 변신과정을 보여주는 것이죠. 마지막으로 작가 최혜경의 향수 그림은 많은 생각을 떠올리게 합니다. 여성에게 있어 향수란 어떤 의미를 갖는가? 왜 인간은 향을 입는가? 에 대한 작은 답이 되길 바라는 마음 같습니다. 여성은 오르가슴이라 불리는 12초의 황홀을 위해, 페로몬에서 추출한 향의 옷을 입습니다. 작가가 그린 향수는 유리병에 담긴 작은 적요의 세계이지만, 그것을 내 품는 순간, 강렬한 욕망이 발산되기에, 조용할 듯 보이는 캔버스는 순간 긴장감으로 가득합니다. 최혜경의 향수 그림 앞에서 사뭇 소롯한 느낌이 드는 이유입니다.

 

          

 

                                              최혜경_flight of fancy_oil on canvas_192x160 cm_2007 / 최혜경_wish_oil on canvas_116_91 cm_2008 

 

#3 인간에게 옷이 필요한 이유

패션은 인간에게 세상 속 무대를 연기할 수 있는 또 다른 아바타를 선사합니다. 2의 피부로서 사회적 공간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인간에게, 보호와 유혹, 정숙과 세련, 사회적 위상을 부여합니다. 그렇게 인간의 몸과 직물은 서로를 감싸며 또한 그 안에 담긴 자신을 드러내지요. 우리는 패션을 통해,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환상의 세계 속에 머물기도 하고 그 세계를 스스로 창조하여, 다른 사람을 초대하기도 합니다. 아름다운 옷을 입은 여자/남자에게 혹하는 이유입니다. 샤넬이 그랬다지요? 여자를 만난 후, 그 옷이 먼저 떠오르면 그 여자를 만나지 말라고요. 왜냐고요? 그녀는 옷이 기억되는 여자는, 우아함을 위해 옷을 거부할 수 있는 용기를 가진 여자가 아니라고 했다네요.

 

 

 

 

본 원고는 4월호 문화공간에 발표될 글입니다. 미리 올립니다.

본 저작물의 권리는 저자에게 귀속되오니 이점 양지하세요. 사진저작 또한 작가들의 허락을 득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