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1 랑방의 도록을 읽다가
저는 개인적으로 패션 디자이너 랑방을 좋아합니다. <샤넬 미술관에 가다>를 쓰면서 샤넬의 바로 뒤를 이어 나비파 화가의 초상화로 소개했던 디자이너가 바로 이 랑방입니다. 잔느 마리 랑방은 1867년 1월 1일에 파리에서 태어났습니다. 현재 랑방 패션 하우스의 창립자이자 패션 디자이너죠. 1920년대와 30년대 패션을 이야기 할 때, 꼭 빼놓지 않고 이야기 하는 3명의 의상 디자이너가 있습니다. 바로 샤넬과 엘자 스키아 파렐리, 그리고 이 랑방입니다.
랑방의 극도의 섬세한 트리밍과 장인의식이 묻어나오는 자수 및 비드장식은 예술품에 가까운 수준을 보여주지요. 여기에 가볍고 명징하며 꽃의 빛깔이 투영된 옷의 질감은 랑방의 트레이드 마크가 되었습니다. 패션 큐레이터인 해롤드 코다가 집필한 이번 랑방의 도록은 그녀의 초기 의상부터 최근의 현대미술과의 협업작업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고 폭넓은 스펙트럼의 작품을 보여줍니다.
랑방은 11명의 아이중 장녀로 태어났습니다. 16살이 되던 해 모자 디자이너였던 마담 펠릭스의 도제로 들어가 훈련을 받았고 드레스 메이커였던 탈보트에게 재단을 배웠습니다. 1909년, 그는 파리 의상조합에 가입, 디자이너로서의 공식적인 위상을 갖고 작업에 임하게 되죠. 랑방을 유명하게 만들어준 것은 그녀의 딸입니다. 사랑하는 딸을 위해 화려하고 멋진 옷을 만들어줬는데요. 이를 본 부유층과 상류사회 회원들이 속속 그녀에게 자신의 자녀를 위한 옷을 부탁하면서 유명세를 타게 된 거였습니다.
1920년대는 여성패션의 역사에서 일종의 분기점이 되는 시대입니다. 바로 샤넬의 리틀 블랙 드레스가 등장하고 여성복의 간편화 경향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던 때이기도 하죠. 여기에 스키아 파렐리란 이탈리아 출신의 디자이너가 가세, 초현실주의적인 풍의 의상을 선보이며, 아트웨어로서의 패션개념을 일으켜 세우던 때입니다. 20년대는 패션의 역사에서 3가지 관점의 패션이 맹위를 떨치며 서로를 견제하고, 발전해가던 시절이기도 했죠.
랑방은 바로 전통적인 파리 패션, 오트 쿠튀르라 불리는 디자이너 라인의 핵심을 차지하던 디자이너입니다. 근세에 들어오면서 재정위기를 겪고 해체될 뻔 했지만 2001년 디자이너 앨버 알바즈의 영입과 더불어, 랑방 브랜드는 다시 명품의 전쟁속으로 진입하게 되죠. 이번 랑방 도록에는 앨버 알바즈의 특징적인 디자인에 포커스를 맞춰 잘 해설해놨습니다. 특히 컬렉션 정보를 테마로 묶어냈기 때문에 디자인의 한 흐름을 이해하기에도 좋죠.
S#2 우리는 언제쯤 정리할 수 있을까
외국에서 간행되는 디자이너 도록을 볼 때마다 한편으로 부럽고, 왜 한국에선 이런 성과를 보여주지 못하는지 궁금하기도 합니다. 이유야 다양하겠지만, 무엇보다 디자이너 스스로 자신의 작업을 데이터화 하는데 익숙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패션 디자이너를 예술가의 위치로 승격시켜 인정하는 사회가 되기 위해선, 무엇보다도 작품 전체를 아우르는 카탈로그 레조네 작업이 있어야 합니다.
카탈로그 레조네란 화가들, 가령 피카소를 예로 들면 평생동안 그가 그린 모든 작업을 한 곳에 모아, 개별 작품의 연도와 테마별로 묶어 정리한 일종의 도록입니다. 미술 컬렉터가 되기 위해서 꼭 챙겨야 하는 것 중에 하나가, 개별 작가의 카탈로그 레조네죠. 우리는 물어야 합니다. 과연 한국은 이런 카탈로그 전체 작업을 할 만한 디자이너가 없는 건가요? 제가 보기엔 아닙니다. 우선 이론작업을 하는 이들 부터가 이런 작업에 손을 대지 못하고 있습니다.
물론 그들이야 이렇게 변명하죠. "우리도 하고 싶다. 그런데 출판사가 내주질 않는다" 당연하죠. 단행본 기획을 제대로 하는 회사를 찾아야 하고, 그 과정에서 얼마나 발품을 팔아야 하는지도 생각을 해야겠죠. 의상학 교과서 나오는 곳은 두 군데 출판사가 전부이고. 그나마 대중도 함께 찾아볼 수 있도록 성의있게 책을 만들어내는 출판사는 찾기 어렵습니다. 최근 예경이나, 미술문화같은 전문 출판사들이 기존의 예술 장르에 패션을 결합해, 패션관련 도서들을 번역하고 내는 것이 눈에 띄더군요. 차라리 기존의 미술책을 만들던 출판사들이 패션책을 예쁘게 만들어내는 것 같습니다.
하긴 이론작업 하시는 분들만 야단치기도 무립니다. 무슨 조그마한 나라에서, 패션 디자이너 단체들은 서로가 반목을 하니, 인터뷰집을 하나를 쓸래도, 디자이너 모모씨가 들어간다고 하면 "그럼 나는 빼줘" 뭐 이런 식입니다. 이건 출판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런웨이를 하거나 패션 관련 페스티벌을 열거나, 행사를 주최할 때도 항상 이런 '진이 빠지는' 권력의 균형추를 아트 디렉터가 잡아줘야 한다는 거죠. 저도 그런 문제로 책을 쓰면서 이런 저런 맘 고생을 합니다. 그나마 저야 패션단체에 소속되어 있는 것도 아니고, 의상학을 전공한 사람도 아니어서, 오히려 독립적으로 글을 쓰기가 편하더군요. 랑방 이야기를 하다가 주제가 딴 곳으로 흘렀네요.
하여튼 열심히 글 쓰고 있습니다. 올해는 멋진 책들 선보일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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