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 Fashion/패션 필로소피아

영국패션의 총아, 알렉산더 맥퀸의 자살-이제 영국은 없다

패션 큐레이터 2010. 2. 12. 04:21

 

 

S#1 영국의 패션 아이콘, 알렉산더 맥퀸, 숨을 거두다

 

새벽 3시 39분. 비보를 접하고 잠을 도저히 청할 수 없는 지경이다. 세계 최고의 패션 디자이너로 사랑받던 알렉산더 맥퀸이 오늘 자신의 센트럴 런던 지역의 자택에서 자살했다. 목 매달아 숨을 끊었다. 아직 사인은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지만, 자신의 트위터에 남긴 메세지를 통해 추정할 수 있는 것은 며칠 전 엄마의 죽음 이후, 극도의 우울증에 의한 자살로 보여진다. 올해 향년 40-세의 나이다. 몇년 전 여자친구이자 스타일리스트였던 이사벨라 블로우의 자살 소식으로 우울했는데 그 마저 숨을 끊었다. 이사벨라는 그를 오늘날의 맥퀸으로 유명세를 타도록 도와준 친구이기도 했다. 트위터 세계는 지금 그의 죽음으로 난리법석이다.

 

오전 10시 20분경 경찰이 도착, 그의 죽음을 확인했고 이후 4시 30분경에 앰뷸런스가 도착 시신을 송구했다. 올해의 디자이너 상을 4번이나 받았던 맥퀸은 계보학 연구로 이름을 날린 엄마와 감정적으로 친밀한 관계를 유지했다고 전해진다. 엄마의 사후, 그는 고통과 싸우고 있다는 메세지를 트위터에 올리곤 했다. 결국 엄마의 죽음을 잊지 못한 채 "천국에서 지옥까지, 삶은 너무나 우스꽝 스럽고 아름다움이란 것도 결국 가장 역겨운 장소에서 태어난다"란 말을 남겼다. 엄마의 죽음을 이성적으로 받아들이기엔, 두 사람의 관계가 너무나 돈독했던 것 같다. 2008년 컬렉션에서 그가 선보인 붉은색 나비 모양의 머리장식이 기억난다. 결국 패션은 나비의 탄생과 성장 소멸과 같은 궤적을 긋는다며, 그것이 패션의 운명이라고 말했던 그는 (자신의 말처럼)그렇게 나비가 되어 우리 곁을 날아갔다.

 

 

S#2 알렉산더 맥퀸을 생각함

 

그는 영국 이스트엔드 지역에서 택시 운전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이후 전통적 영국 수트의 본산지인 세빌로에서 훈련을 받았고, 찰스 황태자의 수트를 디자인할 만큼 뛰어난 재단능력과 영감을 발휘했다. 바짝 자른 머리에 닥터 마틴 부츠를 신고, 초기 패션쇼에서 충격적인 메세지를 전달하는 기법으로 영국 패션계의 앙팡 테리블, 무서운 아이들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이후 태틀러사의 디렉터였던 이사벨라 블로우를 만나 패션계에 본격적으로 진입했으나, 2007년 난소암 판정 후 제초제를 먹고 자살한 이사벨라로 인해, 정서적인 혼란을 오랜동안 겪었다. 이사벨라는 단순한 여자친구가 아니었다. 그의 졸업작품 전부를 사주었고 오늘날 영국 패션계에서 그의 이름을 각인시키도록 도와준 멘토였다. 1996년 존 갈리아노의 뒤를 이어 지방시의 수석 디자이너로 임명, 그 명성은 더욱 깊어져만 갔다.

 

그의 패션 컬렉션은 항상 환상 그 자체였다. 게이로서 그는 양성성의 모든 장점을 결합한 디자이너의 상상력을 보여주었다. 모든 세대의 디자이너들에게 영향을 미친 천재였다. 영국 패션의 아이콘을 넘어 현대 영국 패션의 거장이었던 그가 이렇게 속절없이 생을 다했다는 사실에, 너무나도 기가 찬다. 매년 그의 컬렉션을 바라보면서 '어쩜 저렇게 다양한 범위의 표현이 가능할까?"라고 질문을 던졌던 나였다. 절제된 선과 거침없는 실루엣 처리, 다양한 소재를 획기적으로 사용해 패션의 의미망 자체를 확장시켜온 명실공히, 영국 최고의 패션 디자이너였다.

 

 

그는 항상 패션의 역사를 되돌아보며, 과거에서 캐낸 상상력을 현재의 환상과 결합, 독특한 뉘앙스의 패션을 창출해내곤 했다. 영국판 보그의 편집자인 알렉산드라 슐만은 "그는 자신의 세대에서 가장 탁월한 패션 디자이너였으며 그의 영향력은 지난 15년동안 모든 여성들의 착장 방식에 영향을 미쳤다"고 평가한다. 내가 맥퀸을 좋아했던 건, 그가 젊은 시절 혹독하게 훈련받은 세빌로우에서, 익힌 극도의 뛰어난 재단기술이었다. 그는 오트 쿠튀르의 감각과 애매모호함을 즐기는 상상력을 장인의 기술 아래 녹여냈던 몇 안되는 천재였다. 많은 이들이 과거의 영감을 찾기 위해 복식사를 공부한다. 하지만 그에게 있어 복식사는 단순하게 영감만을 추출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었다. 그에게 과거는 영원한 현재속에 새롭게 연마하고, 깍아내야 하는 보석같은 것이었기에. 매년 그의 컬렉션에서 선보인 중세와 현재의 결합, 모던과 고스의 이미지들을 이제는 볼 수 없다니. 조앤 콜린스에서 레이디 가가에 이르기까지, 그의 옷을 즐겨입었던 패셔니스타들은 이제 어디로 가야 할까? 적어도 알렉산더 맥퀸 때문에 '패션 디자이너가 되고 싶다'고 말했던 수 많은 사람들은 이제 큰 지향점을 잃어버렸다. 나도 너무나 마음이 아프다.

 

그가 없는 영국 패션은 이제 어디로 가야하는가? 정말 막막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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