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 Healing/내 영혼의 갤러리

우리가 살아야 하는 이유-한 송이 꽃 앞에서

패션 큐레이터 2010. 3. 15. 06:00

 

김명곤_꽃이 피다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80×80cm_2008

 

봄이다. 흐린날들이 지속되면서

연분홍과 연두를 상상한 봄의 시간은 머만치에서

피어나고 있지만, 그래도 봄은 온다. 춥고 버려진 것들을

서로 껴안아 길 내던 나무에 꽃이 핀다. 봄이 되면 사물은 싱그럽게

자신의 소리를 낸다. 왼쪽가슴에 있는 제 심장 소리가 꽃들의 수다 소리와

사금사금 엉겨 들린다. 비로서 내가 무엇을 위해 뛰는지 알게 된다.

영롱한 봄 햇살이 다시 돌아오면 좋겠다.

 

 

 

김명곤_꽃이 피다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31×162cm_2008

 

내 심장소리를 들어주는 꽃들을 향해 경배한다.

미만한 연두빛이 차오르는 시간, 꽃기운이, 희망을 담아

내 가난한 몸의 구석구석을 지나간다. 간지럽다. 어루숭어루숭, 살아

있음에 대한 자기확신을, 이다지도 아름다운 방식으로 깨워주는 꽃들이 얼마나

고마운가. 꽃을 피운다는 것은 꿈을 꾼다는 것이다. 성경 속 예수는

열매를 맺지 못하는 무화과 나무를 향해 저주한다. 꽃과 열매를

맺는 다는 것은 현실 속에 기적을 만드는 일이다.

그만큼 고난이 요구된다. 기적이 필요하다.

 

김명곤_꽃이 피다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62×112.5cm_2008

영화를 보기 전 우리들은 대략의 줄거리를 읽는다.

시놉시스라고 말하는 작은 이야기의 궤적을 통해, 영화를 보기전

펼쳐질 세상의 일부를, 나의 상상이 만들어낸 조각과 맞추며, 공감의 공간을

만들어낸다. 봄에는 시놉시스가 없다. 우리가 어떤 겨울을 맞이했는가에 따라, 그 가늠할수

없는 깊이와 충만을 우리에게 보여주기 때문이다. 봄이란 시간에 마침표를 찍을 수

있는 것은 없다. 그만큼, 봄은 우리에게 희망을 보여준다. 또한 측량할 수

없는 크기의 희망이 될 것이다. 인간이 희망을 봄이란 계절과

연결하는 것은 바로 그런 이유일 것이다.

 

김명곤_꽃이 피다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80×80cm_2008

작가 김명곤의 그림에는 바로 '희망'의 힘이 녹아있다.

겨우내 차가운 기운에 저항하느라, 혈흔자국이 단단하게 굳어진

죽은 껍질의 결을 뚫고 자라는 어린입. 여린 어린입이 눈을 깨듯, 우리의 영혼도

깨어난다. 겨울기운, 한기 속에 떨던 나무에 귀를 대보면, 들을 수 있다. 상처를 견디는

신음소리를. 이제 그 신음을 명징한 함성으로 바꾸는 나무들의 내면은 풍화가

빚어낸 생의 기적을 토해내리라. 그래서 난 꽃이 핀 나무가 좋다.

 

김명곤_꽃이 피다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50×50cm_2008

꽃은 봄을 증거하는 기호다.

외로움의 시간, 폭압과 강철의 시간을 뚫고

생의 기적을 빚는다. 꽃은 그런 의미에서 희망을 말하는

종교다. 가늠할 수 없는 희망의 크기. 우리가 한떨기 꽃 앞에서

숭고의 미를 느끼지 못한다면, 그/그녀는 생의 이력들을 다시 살펴봐야 한다.

김명곤의 그림은 겹치는 가지들을 구분하지 않고, 그린다. 회화의

평면성을 강조하고, 원근을 표현하지 않음으로써 꽃과 꽃

사이에 존재하는 깊음과 거리를 제거한다.

 

그런데 그의 그림이, 평면적임에도 불구하고

지루하지 않은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꽃이 가진

두개의 속성, 여림과 그 약함의 시간을 관통하는 생의 끈질긴

기운, 김명곤이 그린 커다한 꽃 잎파리 마디마디의 결엔, 체념보단 희망을

잉태하는 자연의 용기가 베어있다. 내 빈궁한 영혼의 공간을 채우는

꽃들의 현란한 반란이 너무나 고맙다. 그래....살아야겠다.

김명곤_꽃이 피다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62×112.5cm_2008

오늘 공연을 보러갔다가, 우리시대의 소리꾼

장사익 선생님이 부르는 노래를 들었다. 연분홍 치마가 꽃바람에

휘날리는 날, 그의 목소리는 청신하게 가슴 한 구석을 메웠다. 그가 부르는

희망가를 듣는데, 왜 그렇게도 눈물이 나던지.

 

 

김명곤_꽃이 피다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61×41.5cm_2008

김명곤의 그림을 보면서 용기를 얻는다.

꽃이 피는 이유에 대해 생각한다. 그래 살아야겠다.

좌절보단 희망을 이야기 하며 살아야겠다. 그래, 더욱 악착같이

살아내야겠다. 한 송이 꽃도 저렇게 차가운 칼의 시간을 견디며 자신의

화양연화를 기다리는데, 이렇게 무기력하게 살아갈 순 없지 않은가. 이제 깨닫는다.

이제는 함부로 산의 들의, 거리의 고운 꽃들 함부로 꺽지 않아야 한다는 걸. 살아있는 것들의

목숨이 하나하나 소중하고, 무심히 꺽은 꽃의 아픔, 이제는 몸으로 아는 나이가 되어가는

것 같다. 강물을 막느라, 사라지고 있는 이 땅의 습지 속 마음 저미며 우는

살아있는 것들의 목소리가 내 심장에 들린다. 꽃들을 지켜야겠다.

풍진세상을 만난 자연과 함께 그렇게 싸워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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