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 Healing/내 영혼의 갤러리

봄이 오는 소리를 들으며-백지혜의 아주 예쁜 그림들

패션 큐레이터 2010. 3. 18. 17:39

 

 

백지혜_꽃단장_비단에 채색_44×69cm_2007

날씨가 맑습니다. 연두와 분홍이 가득한 세상이

오려는지, 인터넷 여행 사이트의, 벚꽃구경 관련 패키지들은

마감이군요. 지리하게 책상 앞에 있는 지금, 2개의 매체에 보낼 원고를 정리하고

친구가 사준 상아빗을 꺼내 머리카락을 빗습니다. 상아재질로 만든 빗으로 두피를 종종 마사지

해주면 탈모예방에도 좋고, 혈액순환에도 좋다네요. 저처럼 활자와 싸워야 하는

이들에겐 꽤 요긴할 거라며 친구가 사줬습니다.

 

어린 뿌리를 땅에 숨기고 살아남은 겨울의 시간

한 촉의 수선화, 그 아련한 꽃대가 연둣빛 입술을 내미는 때입니다.

여전히 세상살이에 미숙한지, 내면의 상처가 심한 듯, 낯설은 봄 기운 햇살에

어루숭 어루숭, 어리둥절한 표정을 하며 맞이하는 꽃의 풍경.

꽃 한송이 꺽어 머리위에 꽂는 소녀의 모습이 보입니다.

 

백지혜_바람이 전해 준 이야기_비단에 채색_68×53cm_2007

오늘은 비단에 전통채색 기법을 응용하여

정확하고 결곡하게 인물을 그려내는 백지혜의 작품을 소개합니다.

저는 그녀의 그림이 좋습니다. 그림 속으로 부드러운 봄의 미풍이 불것 같습니다.

화면 속엔 한 명의 소녀가 다양한 포즈로 등장하는데요., 머리카락이며 눈썹 하나하나,

머리핀 장식을 한 자수 바느질 까지, 어찌나 정교하게 묘사해 놓았는지, 그림 속엔

농밀한 순간의 연금술에 취해버린 인간의 모습만 가득합니다.

 

작가는 대학원에서 조선시대의 초상화 기법을

심도깊게 연구했고, 이를 캔버스에 응용하여 현대의 인물화로

재창조합니다. 대부분 초상화는 동/서양이 동일하게 사회적 비중이 있는

인물들, 혹은 당대의 권력자나 최상위 부유층들이 그 모델을 하죠. 흔히 Statute Portrait

라고 불리는 이 장르는 빅토리아 시대부터 1900년도 초기까지, 사진의 발명 이전

까지 여전히 인기를 끌었던 회화의 한 장르이기도 했습니다.

백지혜_봄이 오는 소리_비단에 채색_31×66cm_2007

백지혜의 인물 초상화가 좋은 건

인물들이 우리 주변의 편안하게 볼수 있는

보통사람들의 형상인데다, 일상이란 지루할 수 있는

공간에서, 작은 기쁨과 행복을 찾아 상큼하게 웃음을 머금는

소녀들의 모습 때문이겠죠. 소녀는 지금 만화방창의 세계, 그 표면위에

살포시 귀를 얹고 송골 송골 부르튼 입술처럼 부풀어 오른 진달래 꽃의 앙탈 소리를

듣고 있습니다. 언 땅의 속살을 뚫고 내면의 튼실한 두 개의 물관으로

둥근 지구의 숨소리를 껴안으며 자라나는 꽃의 환희를 듣는 듯

합니다. 단단한 뿌리의 근원 속에서, 봄은 겨우내 상처를

덮고 인간을 다독입니다. 희망의 향을 맡아보라며

말입니다. 한 송이 꽃 앞에서 묵상하는

까닭입니다.

백지혜_달콤한 꿈_비단에 채색_72×94cm_2007

흔히 한국 미술사에는 배채란 기법이 있습니다.

이것은 고려시대 불화에서 사용하던 기법인데, 그림을 그릴 때

종이나 비단 깁의 배면에 물감을 가볍게 칠해서 맑은 중간 색조의 투명성을

살리고, 뒷면에 채색한 빛깔이 앞면으로 우러나온 상태로 만들어, 음영과 채색의 균형을

맞추는 것입니다. 인물의 미묘한 심리랄까, 따스한 봄날, 바람의 소리를 들으며,

달콤한 꿈의 세계에 빠져있는 아이의 모습이 곱습니다.

백지혜_나 어디 있게?_비단에 채색_96×72cm_2007

분홍 진달래꽃 피는 풍경 속

하늘 빛 스커트엔 꽃물이 통째로 들었는지

꽃의 형상이 각인되어 있군요. 꽃을 향해 코를 가져다대는

소녀의 모습에서, 이미 훌쩍 우리안에 들어와버린, 봄의 기운을 상상합니다.

서양화 일색인 화단에서, 여전히 한국화의 지평을 지켜나가며, 자신만의

세계를 견고하게 쌓아가는 좋은 작가들을 만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림 속 소녀들을 꿈속에서 만나고 싶군요. 40분만 지나면

퇴근이네요. 오늘은 오랜만에 무용공연을 봅니다.

다녀와서 빨리 리뷰 올리겠습니다.

 

봄을 즐기세요.....봄이 왔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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