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곤 '그해 여름-그리움', 한지위에 혼합재료, 122x60
오랜세월 그림을 모았습니다. 컬렉터의 삶을 살아오면서
몇 가지 그림을 보는 기준이 생겼습니다. 특히 풍경화의 경우, 단순하게
이국적인 외국 풍경을 그린 그림보다, 한 곳에 오랜동안 정착하면서 그 마을의
사람들과 함께 어울리며 먹고 마시며 쉬며 작업한 화가의 그림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화가는 2009년 이른 봄, 봉하마을에 입성합니다.
오랜세월 자신의 캔버스를 지배해온 생각들을 정리하며
봉하마을의 생태와 노무현 대통령의 모습을 담기 위해서였죠. 하지만
대통령의 서거가 이어지며, 화가는 꽤 오랜시간 번민의 시간을 보내야 했습니다.
그래서일까 작가가 자신의 상처를 다잡고, 다시 붓을 들어 그려낸 봉하의 사계에는 단순한
풍경 그 이상의 것이 담겨 있습니다. 그것은 농촌과 함께 하며 새로운 생태적 삶을
꿈꾸었던 노무현 대통령의 꿈과 이상이, 자연의 풍광과 어우러져 있다는
것입니다. 진득하게 한 곳에서 풍경을 담는 화가만이 가질 수 있는
일종의 내공이자 화면이기도 합니다.
김은곤, 봄-물안개, 한지위에 혼합재료, 2009
노무현 대통령은 귀향 후 마을 앞 습지인 화포천에서 환경정화 활동을 했고
주민들과 함께 작목반을 구성, '봉하오리쌀'을 재배하기도 했지요. 저 또한 작년 가을 이
봉하에서 나온 봉하오리쌀로 밥을 지어 먹었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농촌의 부활과 재구성을
꿈꾸었던 분이기도 했습니다. 물론 그의 사후에야 저 또한 알게 된 점이지만 말이지요.
김은곤 봄-누운선버들, 한지위에 혼합재료
화포천은 전장길이가 22킬로미터에 이르는 하천형 습지입니다. 습지와 더불어
거주하는 인원만 10만명이 넘는다고 하더군요. 습지는 사람들의 생을 지켜주고 성찰시키는
거울과 같습니다. 세계적으로 습지를 지키고 보호하는 주 목적이지요. 화가는 찔레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나는 5월의 화포천을 그리지 못해 아쉽다고 했답니다. 아쉽게 대통령이 우리의 곁을
떠났기 때문이겠죠. 만화방창의 세계 속에서, 작은 인간으로 살고 싶었던
한 사람의 면모를 캔버스로 보지 못하는 게 아쉽습니다.
봄-화포천일출
한지위에 혼합재료 180x90
화포천 일출의 풍경을 봅니다. 작가는 새벽 2-3시면 일어나
이 화포천을 들렀습니다. 하천 부지 아래 일궈진 밭에선 사람이 먹고 살았습니다.
자연의 품은, 일상의 삶에서 아귀타툼에 지친 인간을 꾸짖기 보다 껴안아 물줄기처럼 흘렀습니다.
낮은 목소리로 토해내는 자연의 숨결을 들으며 작가는 물품과 물봉숭아, 선버들, 개망초, 노랑어리연, 자운영
솔갱이 등 각종 풀과 나무를 그리며, 자연 속에서 그림을 그린다는 것이 얼마나 환희 였는지를 배웠을
터입니다. 자연의 섬세한 아름다움, 그 속살에 배인 경이의 세계를 그리기 위해
화가는 가장 가느다란 세필을 빌려 꼼꼼하게 큼지막한 캔버스
위에 그려냈습니다. 놀랍습니다.
겨울-갈대의반영
한지위에 혼합재료 60x20
대통령을 보내고 맞은 봉하의 겨울은
그 어느때보다 한기어린 상처의 시간이었을 겁니다.
화가에게도, 그와 함께 꿈을 꾸던 이들에게도 말이지요. 겨울의 시간
습지에 어린 갈대의 반영 속에, 비쭉하게 솟아나온 풀들의 풍경이 애잔합니다.
김은곤, 봄-괭의밥, 캔버스에 유채, 2009년
봄은 생성의 계절입니다. 그리스 신화에서 대지의 신
데미테르가 잃어버린 자신의 딸을 찾아 기쁨의 눈물을 흘리는 시간.
대지를 뚫고 고물고물 피어오르는 괭이밥, 하트모양을 한 잎파리도 곱습니다.
우리내 산하 들녁에서 자유롭게 피는 이 괭이밥도 봄이 되니 더욱 예쁩니다. 그렇습니다.
풀과 대지는 때에 따라 시절을 좆아 과실과 씨를 맺어야 합니다. 그것이 신의 법칙이지요. 자연스러운
생명의 흐름을 막는 것은 범죄입니다. 인간의 욕망이, 물의 흐름을 막고 생육의 대지를
찬탈하는 것. 이것은 곧 신에 대한 불경입니다.
여름-노랑 어리연1
화천포에 아침 안개가 서면, 새벽 연잎 위에
밥알처럼 붙어있다 따스하게 안아주는 햇살의 애무 속에
녹아버리는 노랑색 어리연꽃. 사람들은 어리연꽃을 향해 세상 잎에
얹혀 일렁이는 식은 밥 한 덩어리라는 뜻을 붙였습니다. 뒤집어보면 정치가 그랬고
사회가 그렇고, 문화 예술이 그렇습니다. 세상사 이리치고 저리치는 아픈 상흔의 시간을 관통하며
많은 이들에게 그저 허기진 배 조금이라도 채워주는 식은 밥 한덩이, 그런 삶을 살아도
좋았을 것을......새벽에 잠시 피었다 지는 저 노랑 어리연의 삶엔 비전을 다하지
못하고 우리 안에서 죽어간 전직 대통령의 모습이 어리어 있습니다.
봄갈이, 한지위에 혼합재료
이제 봉하에도 곧 봄이 오겠지요. 겨우 내 한기에
할퀸 살터를 보듬기 위해, 자연의 표피위에 서린 차가운 상처들을
감싸기 위해 인간은 흙을 엎어 새로운 출발을 다짐합니다.
길-그리움
한지위에 혼합재료 122x60
화가는 짙은 초록 풀잎 위에 대통령이 평소에 쓰던
밀짚모자를 그렸고, 길 위에 세워둔 자전거를 그립니다. 길 위에
서니 돌아간 망자가 그립고, 그의 꿈이 그리웠던 이유겠지요. 흙내음 고이 젖어 흐르는
고양 들녁에 서서, 내 안아주던 그리운 할머니의 양갈래 가리마처럼 곱게 난
그 길을 따라, 걷고 싶습니다. 그림 속 길이 저를 부르는 군요.
봄-수련
한지위에 혼합재료 122x40
화가의 그림 속 봄 수련히 예쁘게 피었습니다.
자연이 주는 취기에 젖어 습지 표면위로 유영하며 자연의 햇살
머금는 수련꽃이 곱습니다.
봄-자운영
한지위에 혼합재료
봄에 핀 자운영 꽃 길을 걸으면, 마음 한 편이 환해집니다.
인간이 괜히 이 꽃의 무리를 가리켜 연분홍의 구름같다고 했을까요?
직립형태의 가지와 솜사탕같은 하얀털이 배후에 자라, 짙은 자주빛 꽃대궁을
돋보이게 하는, 저 아름다운 자운영꽃. 사람들은 미열에 시달릴 때 한 송이의 꽃을 꺽어
그대로 달여먹기도 했습니다. 자운영 군락을 지날 때마다 생각합니다.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와서
누구나 꽃을 피우고 그렇게 살다 돌아간다는 것을. 누구에게나 꽃 같은 한 시절이 있을거라고.
미려한 꽃의 색감에 휘감긴 우리의 생이 그 앞을 지나갑니다. 황금빛으로 빛나는
나이테가 하나씩 그려질 테지요. 꽃의 갈빗대에도 말입니다.
한 인간의 삶이 우리 내 영혼 속에 각인시킨
작은 자운영꽃 나이테를 올해는 꼭 세어보고 싶습니다.
오늘은 어떤 곡을 고를까.....글을 쓴 후 고민의 고민을 했습니다.
봉하마을의 봄, 그 멋진 시골길을 산책하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하게 드는 군요.
아직도 사무실에서, 엑셀데이터를 만지작 거리고 있는 제 모습과 너무 대조되지만 말이에요.
그래서 골랐습니다. 영화 <이웃의 토토로>의 인트로에 나오는 '산책'이란 곡이에요. 아카펠라로 부른
버전을 올려봅니다. 다른 인간의 목소리가 합쳐지는 아카펠라.....매력있네요.
현 그림전시는 봉화마을회관에서 열리고 있답니다.
도록이 아닌 실제 그림을 너무 보고 싶어요. 끝나고 나서 산책도 하고......
'Art & Healing > 내 영혼의 갤러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우리가 살아야 하는 이유-한 송이 꽃 앞에서 (0) | 2010.03.15 |
---|---|
비누거품을 부는 아이들..... (0) | 2010.03.09 |
동구리에게-무상급식의 의미를 묻다 (0) | 2010.02.19 |
피겨의 여제 김연아를 그린 미술작품들 (0) | 2010.02.17 |
흙이 따뜻한 이유-광부가 된 화가 황재형의 그림 (0) | 2010.02.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