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 Healing/내 영혼의 갤러리

흙이 따뜻한 이유-광부가 된 화가 황재형의 그림

패션 큐레이터 2010. 2. 15. 20:30

 

 

철암역 Cheoram Station 130x193.8㎝, 1984~2006 캔버스에 유채

 

S#1 동트는 새벽에, 봄의 기운을 맞다


그리스 신화를 보면 인간이 4계절을 갖게 된 이유가 나옵니다. 명계의 신 하데스가 땅의 생산력과 곡물의 수확을 관장하는 데미테르의 딸, 페르세포네를 납치합니다. 자식을 잃은 모성의 분개는 제우스마저도 어찌할 수 없어, 중재안을 세워 딸을 데려오려 합니다, 지옥에서 아무것도 먹지 않고 기다려야 한다는 단서를 내세웁니다. 하지만 간교한 하데스의 꼬임에 빠진 페르세포네는 그가 건 낸 붉은 석류를 먹게 되고, 그의 아내가 되어 명계에 머물 운명에 처합니다. 하지만 데미테르의 간청에 못 이겨 1년 중 4분의 3은 딸과 함께 보내고, 나머지 기간은 하데스에게 보내는 것으로 최종 합의를 보죠. 잃어버린 자식이 돌아온 시간은 환희와 성장, 생육과 수확의 시간입니다. 바로 봄과 여름, 가을의 탄생입니다.

 

 

한 숟가락의 의미 The Meaning of one Spoon

캔버스에 유채_130.3×97.3cm_1984~1998

 

S#2 따스한 흙 속에선 길을 잃어도 좋다

 

반면 데미테르가 자신의 딸을 잃고 서럽게 우는 계절이 겨울입니다. 초근목피가 말라붙고 엄습한 한기로 인해 땅의 모든 것이 얼어붙었습니다. 겨울은 항상 죽음과 동의어로 사용되곤 합니다. 신화 속 세계처럼 말이죠. 그러나 현실은 어떤가요? 흙을 밟고 서는 순간, 살아있는 모든 것들은 평등의 시간을 경험합니다. 흙의 가슴으로 돌아오고서야, 비로소 살아있음을 확인합니다. 흙은 생명과 삶을 담아내는 그릇이자 지표입니다. 광산촌 깊은 갱도 안, 인간의 미열을 덥혀줄 석탄을 캐는 광부의 손 주름에는 땀과 흙이 섞인 진득한 정직함이 베어납니다. 상황과 입장에 따라 백지로 돌아가고 마는 마뜩찮은 인간의 약속보다, 저 믿음의 땅이 소중한 까닭입니다. 흙을 밟고 흙을 캐어 사는 이들에게서 땅의 정신을 배우는 것은 당연합니다.

 

 

피냇골 이야기 The Story of Pinaet Vaelly 80.2X184.9㎝, 1998~2004 겨울, 캔버스에 혼합매체

 

오늘은 한 명의 화가를 소개할까 합니다. 그는 태백 탄광촌으로 내려가 지역민들의 삶을 캔버스에 담았습니다. 민초의 삶을 있는 그대로 화면에 담아낸 그를 세인들은 광부 화가 혹은 탄광촌의 화가라고 부릅니다. 바로 황재형이란 화가입니다. 그의 그림을 처음으로 본건 2007년 어느 봄날이었습니다. 1983년 태백으로 내려간 그는 탄광촌 사람들의 애환을 지속적으로 관찰하고, 그 내면의 속살을 파고들며 배우고 경험한 것들을 캔버스에 하나씩 기록합니다. 대상을 조용히 관조하며 작가의 내면에 맺힌 응어리를 하나씩 풀었습니다. 눅진하게 배어나는 땀냄새 나는 광부들의 모습은 성스러웠고, 그들을 둘러싼 대지는 견고합니다. 16년이 지나서야 화가는 작품을 들고 서울로 왔습니다. 겨울의 시간을 지내고 봄의 따스한 기운 아래, 태백의 풍경을 병치시키려는 듯 말입니다.

 

 

고무 씹기 Chewing Rubber 72.6x60.7㎝, 1997~2008 캔버스에 유채

 

S#3 쥘 흙과 뉠 땅의 주인은 누구인가?


작가는 자신의 그림에 대해 한 마디로 쥘 흙은 있어도 누울 땅은 없는 사람들의 이야기라고 평가합니다. 화가에게 땅은 인간의 가치를 복원하기 위한 매개였으며 80년대 혹독한 정치적 상황에 대한 저항이었습니다. 광부가 되어 막장의 삶을 살며, 탄광지대 아이들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미술이 세상에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지 끊임없이 물었습니다. 운동한 시간보다, 술자리에서 운동을 회상하는 시간이 더 긴 사회운동가가 되기보다, 붓대신 나이프로 자연의 껍질을 하나씩 긁어내며 사람의 향기를 뽑는 그림쟁이가 되었습니다. 화가의 정체성을 놓지 않음으로써 오히려 당당하게 세상을 그릴 수 있었습니다. 그가 그려낸 탄광촌의 풍경은 오랜 시간 매만진 높은 밀도의 형상으로 가득합니다.

 

  

산 허리 베어 물고 Lying into a Mountainside 162.2×112.1㎝, 1997~2003 캔버스에 혼합매체 (오른쪽)

장마 Rainy Season 130x80.5㎝, 1993~2003 캔버스에 유채(왼쪽)

 

물감 외에도 흙과 석탄을 개어 바른 탓에, 캔버스엔 자연의 물질감이 강력하게 살아 숨쉽니다. 타고난 데생능력과 묘사력으로 밑그림 위에 끊임없이 덧칠을 하며 자연의 형상을 지워나갑니다. 그렇게 자연을 그리고 또 지우기를 수백 번. 그림 한 장이 완성되기 위해 걸리는 시간은 길었습니다. 다른 화가들은 보통 형태를 다듬어 가며 풍경을 완성하지만, 그는 자신의 내면풍경에 조응하는 외면의 풍경만을 담으려 했기 때문이지요. 그래서일까 그의 그림에선 상처를 감내하고 성숙의 위치에 오른 인간의 관점이 녹아있음을 발견합니다. 한 숟가락의 의미란 그림을 보다 문득 전시장에서 점심을 걸렀다는 걸 알았습니다. 그런데 왠지 배가 고프다는 말을 하면 안될 것 같은 생각이 들더군요. 정호승의 시가 떠올랐습니다.

 

밥상 앞에 무릎을 꿇지 말 것. 눈물로 만든 밥보다, 모래로 만든 밥을 먼저 먹을 것

무엇보다도 전시된 밥은 먹지 말 것 먹더라도 혼자 먹을 것 아니면 차라리 굶을 것 굶어서 가벼워질 것

때때로 바람 부는 날이면 풀잎을 햇살에 비벼 먹을 것 그래도 배가 고프면 입을 없앨 것

정호승 <밥 먹는 법> 전편

 

땅은 지상의 모든 인간에게 평등합니다. 그림을 보며 쥘 흙과 누울 땅이 따로 있다는 그릇된 믿음을 갖고 있었다면 반성해야 합니다. 지하를 관장하는 하데스마저도 굴복시킨 견고한 모성의 대지, 데미테르를 믿는다면 말이죠.


 

이 글은 세종문화회관에서 발행하는 <문화공간>지의 '김홍기의 갤러리 가는 길' 3월호에 실릴 글입니다. 오늘 원고를 마쳤고 블로그에 동시 연재합니다. 황재형 작가님의 그림을 소개해달라는 독자분이 계셔서 힘을 내어 썼습니다.

 

 

42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