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 Travel/나의 행복한 레쥬메

자유예술캠프를 마치며-달려라 패션!

패션 큐레이터 2010. 2. 21. 02:40

 

 

S#1 아름다운 만남을 기억하며

 

오늘 한예종 자유예술캠프의 마지막 강의를 마쳤습니다. 너무나 그립고 보고싶은 사람들의 얼굴이 떠오릅니다. 저도 놀랐습니다. 6주란 시간, 짧다면 짧은 시간인데, 제 인생에서 오랜만에 한번 한번의 강의를 위해 혼신을 쏟아본 적이 처음이었습니다. 이전의 강의와는 완전히 다른, 내용과 방식으로 사람을 만나야 했습니다. 제가 말하고 발표하고, 나누고 가르치고 싶은 분과의 지식을 추출, 다양한 인문학과 사회학의 관점, 나아가 예술학의 시각을 빌어 풍성하게 옷을 입혔습니다. 자유예술캠프의 주제는 '통섭'입니다. 그 뜻은 Jump Together, 함께 뛴다는 것입니다. 학문간의 분과별 패권주의를 넘어 다양한 학문적 관점을 빌어 사물의 법칙과 개념을 재정립하는 일입니다. 분야별 만남에 따른 마찰은 필수입니다. 그 마찰을 통해 지식의 표면에선 뜨거운 불이 일어나지요. 바로 영감, Inspiration의 시작입니다.

 

서구에선 Open Educational Resources란 운동을 통해, 대학별 전공지식과 인문학 강의내용을 인터넷에 무상으로 공개함으로서, 일반인에게 지식 나눔을 실천하고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MIT 대학의 OCW 강의가 그랬고, 최근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TED(Technology, Entertainment, Design) 컨퍼런스도 무상으로 각 분야의 최고의 전문가들이 모여 강의를 하고 동영상을 만들어 무료로 배포하고 있습니다.

 

해외대학과 기관의 무료 동영상 공개가 증가 추세입니다. 그러나 각 동영상 내용마다 한국어 자막을 찾아보기란 어렵습니다. 여기엔 몇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언어의 장벽은 높고, 흩어져 있는 수많은 컨텐츠를 찾기가 어려우며, 무엇보다도 지식을 한방에 쉬운 방식으로 일깨워주지 못하는 구조를 갖고 있다는 점이죠.

 

외국만 해도 아이들은 어려서부터 도서관을 다니며 직접 리서치를 하고 자료를 찾는 습관이 몸에 배어있습니다. 하지만 한국은 어떨까요? 수많은 참고서와 인터넷 강의가 판을 치지만, 한방에 조목조목 설명해서 입에 넣어주는 지식의 체계를 선호하는 우리에겐, 이런 정신적 습관이 부족합니다. 여기엔 높은 사교육열이 우리의 정신적 형틀을 지배하고 있다는 반성이 필요합니다.

 

구글의 풍성한 정보력이 네이버 지식인의 논술식 답안지를 못이기는 이유지요. 물론 이것이 한국적 정서이고 하나의 특징이 될수도 있겠지만, 저는 사실 많이 아쉽습니다. 정보는 획득하는 것이지만, 지식은 체득하는 것이기 때문이죠. 정보의 바다를 헤매고, 때로는 길도 잃어보고 고생도 하고 그 과정에서 우연하게 만나는 다른 생각의 경로를 걸어볼 기회를 원천적으로 잃어버린 다는 겁니다. 이번 한예종 자유예술캠프는 이런 열린 창의성 문제를 풀어보고자 하는 일련의 시도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자유예술캠프에 대한 오해도 있었습니다. 한예종 사태와 더불어 시작되다 보니, 정치적인 시각으로 평가하는 분도 있었는데요. 저야 패션 강의를 하면서 정치이야기를 할 여력도, 공간도, 혹은 주제도 만들어보질 못했던 것 같습니다. 오해를 가지고 자예캠을 보셨던 분들은 후회하실 정도로, 강의에 대한 수강자 전체평가가 높습니다. 97퍼센트가 매우 만족이 나왔습니다. 저도 점수가 높네요. 첫 수업부터 미술과 건축, 사진과 문학을 통해 패션의 다양한 속살과 빛깔을 읽어보려고 노력했습니다. 보통 120여장의 슬라이드를 3시간 동안 제대로 설명하기도 힘들어, 툭하면 1시간씩 넘기는 건 다반사였죠. 하지만 모두다 잘 따라왔고, 패션에 대한 다양한 지식의 체계와 틀 전체를 넓힐 수 있는 기회를 만들었습니다. 이번 자유예술캠프의 또 다른 특징은 도시공간 속에서 '학습하는 도시'의 면모를 만들자는 취지를 갖고 있었답니다. 때로는 열악한 상황에 처하기도 했지만, 그만큼 철저하게 대비도 하고, 서로 나누는 열공모드 속에서 살았죠.

 

 

패션사진의 역사, 다양한 보석과 액세서리의 기호학과 더불어 패션의 역사를 미술사의 명화를 통해 살폈습니다. 패션이 변화하는 요인에 대해 면밀하게 살펴보고 유행과 트렌드를 읽어내는 법을 살폈습니다. 패션의 변화가 이상적인 신체미의 역사와 맞물려 있다는 것을 고대 중세, 르네상스를 거쳐 근대의 다양한 회화작품을 통해 공부해봤습니다.  패션이 하나의 이데올로기일 수 있다는 점. 패션도 사회전체가 동원되어 제조한 산물이다 라는 점을 배웠습니다. 수강생 중에 의상학과 교수님도 계셨고, 무대의상 디자이너도 계셨죠. 이런 수강인원 전체의 요구를 만족시키기란 쉽지 않았습니다. 나이대가 중학교 3학년에서 60대 초반의 어른까지 계셨거든요.

 

열린 창의력의 사회, Open Creativity란 바로 지식의 공유에서 나오는 즐거움을 함께 만끽하는 사회입니다. 닫힘과 열림의 긴장 속에서, 세상을 향해, 내가 가진 지식을 함께 나눔으로써 더욱 부자가 되는 것이죠. 지식은 아무리 퍼날라도, 쓰고 빌려줘도 없어지지 않으니까요. 무엇보다 선대가 구축해놓은 데이터와 지식의 체계는 후배들에게 그대로 전해져서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고, 사회적 약자를 위한 봉사의 매개로 사용될수도 있습니다.

 

자유예술캠프의 열기 속에 명확하게 파악하지 못한 개념을 저 스스로 파악하고 알아갈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가르친다는 것은 꼭 많이 알아서 가르친다기 보다, 가르치기 위해 준비하는 과정에서 겪는 시행착오가 주는 지혜로 인해 성장할 수 있음을 믿게 된 것이죠.

 

올 여름에는 <영화 속 패션 이야기>를 끌어가려 합니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패션의 시대 배경사를 나열하며 공부하는데서 끝나지 않습니다. 패션의 역사를 공부하는 이유는 '이야기의 복원이자 역사적 과거를 영원한 현재로 만드는 작업'이기 때문입니다.

 

패션은 한 시대에 대한 환상을 재조합하고 기억을 벼리며, 때에 따라선 이전에 갖고 있던 기억들을 포멧하는 무시무시한 장치입니다. 이 모든 걸 가능하게 하는 것이 바로 서사의 힘이지요.

 

영화를 통해, 시대를 배우고 언제든 디자이너들이, 혹은 창작자들이 과거를 전유해서 현재를 살펴보고 재현할 수 있도록, 재미있는 이야기꾼으로 만드는 작업. 그래서 이것이 패션 컬렉션과 연결이 되고 자신만의 브랜드를 만드는, 토대로 삼을 수 있게 하는 데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영화 속 연기와 성격화 작업, 화면 구성방식, 대사의 호흡 등 많은 요소를 함께 살펴봅니다. 이 과정에서 극중 인물의 캐릭터 작업에 패션이 얼마나 큰 작용을 하는지를 밝혀내는 것이 큰 목적이지요.

 

이번 한예종 자유예술캠프에서 실제로 의상학과나 의류학과에 개설되어 있지 않은 과목과 지식의 방식을 함께 공부하며 나눌 수 있었던 것이 가장 큰 장점이었습니다. 자유예술캠프의 가장 큰 매력은 가르쳐보고 싶은 지식의 세계를 스스로 디자인하고 이를 사람들 앞에서 오픈하고 함께 나누는 데 있습니다.

 

올 여름과 겨울에도 열심히 이곳에서 강의를 해야 할 듯 하네요. 가르치고 싶은 내용들이 많습니다. 옷의 인류학에서 패션의 정치사회학에 이르는 다양한 담론도 살펴보고, 문화이론과 문학, 건축, 사진, 순수예술과 디자인 역사등 다양한 관점들을 빌어 한 시대를 입체적으로 구성해보는 즐거움을 사람들과 나누고 싶습니다.

 

저는 이번 강의를 통해 얻고 싶은 것이 생겼습니다. 그것은 단순하게 복식의 역사를 연구하는 복식사가가 아니라, 디자이너들과 상상력에 매마른 작가들과 예술가들, 그리고 일반인들에게 역사를 재미있게 읽으면서 재구성하는 즐거움, 이를 통해 얻는 영감의 촉발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지식보단 영감을 주는 사람.......이를 위해 배경이 되는 지식의 아카이브를 구축하고 사람들을 향해 무료로 여는 것. 재미있는 강학 아카데미나 하나 열었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사람들과의 만남을 통해, 꿈을 영글어갈 수 있다는 건 참 매력적인 일이죠. 모든 게 만남을 통해 이뤄지네요. 그저 감사하다는 말, 부족한 강의 들어주셔서 제가 오히려 힘이 되었다는 거. 말씀드리고 싶었어요. 여러분 고마왔습니다.

 

 

420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