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 Travel/나의 행복한 레쥬메

패션에 쏠린 사람들

패션 큐레이터 2010. 1. 17. 02:36

 

 

<자유예술캠프>강의 후기입니다. 작년 여름 한예종에서 시작된 자유예술캠프는 올해부터 독립적으로 일반인과 학생들을 위해 열립니다. 처음엔 한예종 학생들이 많았지만 이제는 예술과 통섭이란 화두에 관심을 가진 모든 이들에게 열리게 된 셈이지요. 이번 강의를 수락하면서, 한예종의 뛰어난 교수진과 더불어 예술의 지식을 함께 나누면서 사회적인 책임을 다하는 사람이 되자고 마음을 먹었습니다.

 

패션이론으로 얼마나 사람을 끌어모을 수 있을까 고민도 되더군요. 현 인원은 96명입니다. 시인이자 전 한예종 총장이신 황지우 선생님은 단연코 톱을 달리셨고, 영화강의를 하는 김홍준 감독님 강의, 그 다음이 저네요. 이외에 무용사와 사회사를 결합한 강의를 하시는 김채현 교수님과 디지털과 통섭, 서사를 아우르시는 심광현 교수님도 계십니다. 훌륭한 석학들과 함께 강의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된 것 만으로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무엇보다 <샤넬 미술관에 가다>를 통해 패션의 역사를 다양한 인문학의 관점에서 풀어냈고 이걸 나눌 수 있어서 기뻤습니다.

  

  

영문과 학생도 있고, 기술사 박사과정의 학생도 계시고 건축하시는 분도 있고, 중학교 3학년생 학생도 있고, 60이 넘은 어르신도 계시구요. 유독 제 강의가 수강생의 나이폭이 제일 넓습니다. 그만큼 패션이란 분야가 많은 이들을 껴안아 낼 수 있는 힘을 갖고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이번 <자유예술캠프>에서의 미술 속 패션 이야기 강의는 기존에 기업이나 미술관에서 주로 했던 강의와는 완전히 내용이 다릅니다. 6주 과정인 만큼, 깊이있게 기호학과 심리학, 사회학적인 관점을 이용해 옷에 대한 생각을 풀고, 패션의 문화란 거대한 화두를 함께 생각해 보는데 이의가 있습니다. 

 

오늘은 중앙대 인문관에서 강의를 했는데요. 학생들에게 커뮤니티를 만들어서 의견교류도 하고 좋은 패션 전시가 있으면 함께 보러가자고 이야기 하고 왔어요. 딱 제가 제일 잘하는 분야의 일이기도 하죠. 첫 시간 강의에서는 워밍업 겸 우리가 종종 혼동하는 패션용어들을 함께 정의도 하고 옷의 여러가지 얼굴을 살펴보았습니다. Style, Trend, Mode, Look, Fashion, Vogue. 엇비슷한 개념같지만, 언어가 가진 미세한 의미의 결이 존재하고 엄연히 지칭 대상과 포괄하는 수준이 다르지요.

 

이외에도 유행개념의 시작과 패션 개념의 시작을 구분하고, 1800년대 후반 프랑스의 아케이드 프로젝트를 통해 소비문화가 어떻게 만들어지고 전파되었는지도 살펴봤습니다. 발터 벤야민이란 발군의 철학자이자 문예비평가를 알게 된 건 항상 행운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전 대학에서 영상이론과 미학을 공부하면서 그가 쓴 '기계복제 시대의 예술'이란 논문을 여러번 읽었었는데요. 그가 패션이론을 위해서도 꽤 원용할 만한 생각의 거리를 많이 생산한 사람이란 걸 저도 근래에 들어와서 책을 읽으면서 알게 된 셈이지요.

 

 

학생들이 열공모드라서 저도 긴장하고 있습니다. 강의 준비를 일주일 내내 해서 가고 있어요. 이번 기회에 저도 원고 정리도 하고 공부도 다시 하고 좋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작년 한해, 너무 긴장을 풀고 살았어요. 연구도 제대로 못하고, 책읽기도 그렁그렁하게 넘어가기 일쑤였거든요. 이번 강의가 끝날 때 쯤이면 멋진 책 원고들이 나오게 될 것 같습니다. 어차피 패션 이론 분야는 한국에서 생소한 분과이고 패션 큐레이터는 어찌되었든 대한민국 1호인 제가 만들어가야 하는 일종의 영역이니까요. 말로만 나서지 않기 위해 관련 전문가들과 교류하면서 자신만의 영토화를 꿈꾸고 있습니다.

  

패션은 공부를 하면 할수록 끝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다른 분과도 마찬가지죠. 이래서 저는 학자가 되는게 싫었습니다. 항상 현장에서 실천과 이론을 매개하는 디렉터가 되는게 좋았고, 지금은 아무 관련없는 사업을 하면서 살아가지만, 블로그 덕에 프로츄어로서 살아갈 수 있는 기회를 얻은 걸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위의 사진은 옷이 갖는 다양한 함의중에, 옷이 비언어적 커뮤니케이션의 매개로서 어떻게 정치적 신념을 표시할 수 있는가를 설명하는 것입니다. 복식사가인 엘리자베스 루스의 <코르셋에서 펑크까지>란 책을 보면 영국의 4개 정당에 동조를 표시하는 사람들의 옷차림을 설문을 통해, 타진해보고 그린 삽화가 등장합니다. 정말 재미있는 내용이어서 학생들이 즐겁게 봤습니다.

 

 

유니폼의 심리학에 대해서 설명하면서 세일러문 흉내내는 모습이에요. 강의를 한다는 건 많이 알아서 가르치는 것이 아닙니다. 가르치기 위해서 알고 있는 것과 반발자욱 들어가서 알아야 할 것을 조율하고 정리하는 것이지요. 사람과 나누기 위해 지식의 칸에 쌓인 먼지도 떨고, 다른 이들의 생각이 덧붙여지면서 커가는 것입니다. 가르치면서 함께 성장하고, 떡을 같이 나누는 것이죠.

 

오늘은 역사적 관점에서 이상적 신체미의 진화를 살펴봤습니다. 강의 중 우연히 클래식에 관한 이야기를 하게 되었습니다. 클래식 하면 '고전'이란 개념으로 알고 있는데요. 원래 클래식은 그리스 시대의 7계층 중 최상층을 의마하는 말이었습니다. 클라시쿠스란 함대의 편성기준이었죠. 클래시쿠스 계층이라 함은 국가의 위기상황에 함선을 사서 국가에 헌납할 수 있는 정도의 재산을 가진 계층이란 뜻이었습니다. 국가 위기상황에서 사회적 책무,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는 사람. 그래서 고전을 읽는다는 건 세상의 상처를 살펴보고 자신의 것을 내어놓는 사람이어야 한다구요. 패션이론을 통해 세상의 관점을 통섭하는 것이 이런 '고전'을 읽는 것과 같은 힘을 발휘해주길 바랍니다.

 

일상이라는 황홀한 예배를 시작하는 첫 번째 단추 끼우기. 그것이 옷을 입는 일일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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