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 Fashion/패션 큐레이터의 서재

Vogue를 알면 패션이 보인다(?)

패션 큐레이터 2010. 2. 8. 01:04

 

 S#1 패션의 역사는 보그와 함께 시작된다

 

어제부터 줄곧 VOGUE지에 대한 글들을 쓰고 있다. 그만큼 패션 매거진이 시장에서 실제로 찬밥 대우를 받는 것과는 달리, 복식사가로서 보그란 잡지가 가지고 있는 영향력이 너무나도 큰 까닭이다.

 

어떤 점에서 보면 보그는 패션의 클래식이자 바이블이라고 자평해도 될만큼 여전히 두터운 독자층을 가지고 있다. 전 세계 이탈리아와 영국 미국판 보그를 비롯 28개국 이 보그를 발행한다. 발행부수와 판매 정도를 넘어, 패션의 흐름을 지적하고 옷이 만들어내는 환상의 기술을 담아내는 그릇으로서 보그는 그 역할을 충분히 했다고 자평한다.

 

이번 달 내 서재에 입고된 패션 관련 책 중 단연코 눈에 띄는 건 VOGUE와 관련된 사진작가들과 스타일링 작업을 모은 선집류들이다. 바로 In Vogue가 그런 류 중에서 태두를 차지할 듯 하다. 말 그대로 패션계에서 가장 영향력있는 매거진의 역사를 삽화와 다양한 사진컷을 통해 보여준다.

 

서점에 가서 사진관련 코너에 가면 유독 찾아보기 힘든 것이 패션사진관련 서적이다. 그만큼 패션은 유독 상업사진의 총아면서도, 그렇기에 폄하되는 이중의 상처를 겪어야 했다. 이번 인 보그는 에드워드 스타이켄에서 토니 프리셀, 어윈 블루멘펠트, 어빙 펜, 리차드 아베든, 데이빗 베일리, 헬무트 뉴튼, 애니 라이보비츠, 마리오 테스티노, 스티븐 클라인, 브루스 웨버, 허브 리프등 세계적인 사진작가와 보그의 협업 작업을 모았다.

 

1909년 뉴욕의 벤처사업가였던 콘데 나스트는 다 쓰러져가는 협회지를 인수하여 가장 화려한 패션 매거진으로 변모시켰다. 20세기의 패션은 바로 이 보그의 역사와 동일한 획을 긋는다. 커피 테이블 북으로 구매하여 서재에 꽂아두고 계속 보고 있는 이 책은 단순하게 눈이 행복해지는 그런 책이 아니다.

 

패션 매거진을 비롯한 패션 저널리즘 그룹의 역사와 발전 영향력에 대해 논평한 부분들이 눈에 띈다. 19세기 후반의 사회적 성격을 띠는 잡지에서 시작하여 근대 패션 사진과 새로운 시지각의 문법을 만들어낸 서지의 성격을 띠기 까지, 보그가 현대패션의 역사에 미친 영향은 지대하다.

 

이 책은 잡지의 형성에서 부터 런웨이 준비, 편집회의, 보그의 다양한 페이지 구성에 이르기까지, 철저하게 일인칭 시점으로 연구하여 만들어낸 패션 스토리가 가득하다. 에디터와 사진작가와의 인터뷰, 저명한 패션 라이터들의 글 속에 담긴 뒷 이야기들을 읽는 즐거움이 클 것이다. 보그에 글을 기고한 이들의 면면을 살펴보는 것도 색다른 즐거움을 준다. 트루만 카포트에서 소설가 앨더스 헉슬리, 배우 리차드 버튼, 영화감독 페데리코 펠리니와 배우 마스트로얀니 등 예술과 패션, 사진과 미디어의 결합을 이처럼 화려하게 보여주는 책도 드물다.

 

 

패션 매거진 초기 아르누보 풍의 표지와 패션 일러스트레이션의 세계도 볼만하다.

 

 

패션 사진의 매력은 무엇보다도 이야기의 창출에 있다. 한 여성의 환상을 기초로 만들어지는 패션사진은 철저하게 사진 속 세계에 몰입하도록 만들수 있는 이야기를 필요로 한다. 그런 점에서 노먼 파킨슨이나 헬무트 뉴튼의 패션 사진컷을 살펴보는 것도 충분한 매력이 있을 듯 싶다.

 

 

보그의 역사는 곧 근대음악과 예술과의 공고한 결합이기도 했다. 이번 작업중인 책에서 서술하고 있는 부분이지만 그런 이유로 보그는 단순하게 패션잡지로 보기엔 무리가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1920년대 재즈 시대의 배후엔 보그가 적극적으로 홍보하고 밀어부친 유행의 속성이 담겨 있다.

 

 

 

최근 사진집과 일러스트레이션 북등 다양한 종류의 자료들을 선집해 모으고 있다. 2015년 개원을 목표로 패션 아카이브를 만들어보는 게 꿈이다. 툭하면 문화입국이 어떻고 디자인이 경쟁력입네 어쩌내 하면서 가장 부족한 부분이 바로 자료부분의 특화된 디자인 도서관 하나가 없다는 점이다. 물론 각종 협회차원의 디자인 도서관이나 패션 도서관은 있지만 그 자료가 한정되어 있고, 한 마디로 발품 팔아가며 모은 자료들이 아니기에, 디자이너들에게 의외로 도움이 안된다는 논평을 많이 들었다. 이들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서 정말 필요한 것은 생생한 도록들과 과거의 풍성한 이야기들을 짜맞추어 하나의 거대한 생의 이야기를 풀어낼 수 있는 시선이다. 물론 여기엔 책을 고르고 자료를 편집하는 이의 시선도 필요할 듯 하다.

 

한예종 자유예술캠프의 강의를 마지막 한주 남겨두고, 내가 세상에 할수 있는 최고의 공헌이 뭘까 생각해 보고 있다. 좋은 자료들을 공유하고 나누는 것인데, 여전히 갈길은 멀지만, 정말 최선을 다해서 뛰고 싶다. 패션 아카이브의 꿈을 이루고 싶다. 오늘날 김달진 미술 연구소의 근간을 이룬것도 발품을 팔아가며 자료를 모았던 김달진 선생님의 노력이었듯, 김홍기 패션 연구소가 이루어질까? 결국 모든 건 나를 돕고자 하는 이들의 총체적인 질에 달려있다고 본다. 힘을 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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