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 Fashion/패션 큐레이터의 서재

철학자들은 왜 패션을 멀리할까

패션 큐레이터 2010. 1. 18. 02:38

 

 S#1 당신의 스타일은 무엇입니까

 

이번 달 내 서재엔 꽤 여러 권의 책이 들어왔다. 마이애미 대학에서 영문학을 가르치는 샤리 벤스톡이 편찬한 <On Fashion>은 유독 눈에 들어온다. 1994년에 나온 책이다. 16년이 흘렀지만 실제 내용을 보면, 패션 이론의 정수라 불릴 만한 에세이들이 가득 담겨 있다.

 

헐리우드 스타 사진을 얼머무린 싸구려 '스타일 가이드' 보다 난 이런 책이 좋다. 스타일이란 개념은 결국 내가 만들어낸 '역사'란 생각이 들면서 이런 경향은 더욱 강해졌다. 자칭 스타일리스트라 불리는 자들이 말하는 조언이 매번 엇비슷하고, 그 밥에 그 나물인 내용이 대부분인 이유도 한 몫 하지 싶다.

 

바비 인형을 통해 여성의 미학적인 상품화를 생각하고, 60년대 패션의 아이콘이었던 트위기를 성찰하면서 패션의 독재적 속성에 대해 반성하는 글도 눈에 띈다. 세계적인 라캉주의 정신분석학자인 엘렌 식수의 '패션 디자이너 소니아 리키엘'에 대한 글은 읽고 또 읽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느낀 점은 왜 우리는 영문학자나 철학자와 같은 사람들이 패션을 연구하지 않는가의 문제였다. 이건 서구도 그리 다르지 않았다. 1980년대 후반부터 박물관에서 패션 전시가 이루어지면서 '진지한' 연구의 대상이 되었다.

 

우리에게도 필요할 때가 되지 않았나 싶다. 세상은 소비주의를 조율하는 하나의 정신성과 규칙, 힘을 필요로 한다. 패션 코너에 가보면 그 밥에 그 나물인 의상학 전공서적과 '스타일 가이드'책이 놓여있다. 프로젝트 런웨이를 이끈 팀 건에서 부터 최근 대필논란이 되고 있는 이혜영의 패션 바이블에 이르기까지, 솔직히 그들이 말하는 '스타일'은 외국 스타일 책에서 배껴낸 몇 가지 조언과 헐리우드 스타일의 옷입기 방식이 대부분이다. 서구에서도 패션은 유독 인문학과 철학자들의 대상이 아니었다. 패션은 항상 영구적이기 보다 금새 지나가버려, 실체를 파악하기 힘든 대상 정도로 치부했기 때문이다.

 

인문학적 대상으로서의 패션이 필요한 이유다. 의식주 중에 왜 옷이 첫번째를 장식할까를 말하지 못하는 사회. 결국 각자의 스타일이 자신의 삶이 반영된 산물임을 당당하게 말하지 못한다면, 그/그녀의 스타일은 기껐해야 명품 브랜드에 포섭된 양식일 뿐이다.

 

스타일이 정치적 개념이니 어쩌니,  자신을 되돌아보는 것이 '시그너처 스타일'을 찾는 방식이라고 말해봐야 뭐하나 싶다. 그저 지금 독자들의 수준은 '헐리우드 스타 누구의 옷 입기' 정도가 전부라고 보면 다인 세상에서. 하지만 뭐든 세상이 대세라고 말할 때는 이미 그 철학은 정점에서 내려올 날만 기다리고 있는 법. 출판업계가 경쟁적으로 매달리는 '스타일 가이드' 또한 그런 종류 중의 하나일 뿐. 1990년대 중반에 나온 책에서, 여전히 우리가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정신적 결핍과 '스타일의 진정성'을 발견하고선 기가 죽는다. 서구는 이미 이런 생각의 궤적들을 다 경험했구나. 우리가 걸어가야 할 길이 멀구나란 생각.

 

옷을 정말 잘 입는다는 건, '내 자신에 대한 정확한 이해'에서 출발하는 것임을 나는 확신한다. 이때 이해란 단순하게 신체를 이해하는 것 이외에도, 많은 요소들이 들어간다. 옷을 마치 언어처럼 사용하기 위해, 어떻게 입어야 하는지 결국은 우리 각자의 몫일 뿐이다. 오드리 햅번도 옷을 잘 입는 배우였지만, 결국 그녀도 자신의 자서전에서 밝혔듯, 연기를 위해 옷을 고르는 과정에 신중했다고 말하지 않았나 말이다. 옷이 중심이 되는 삶이 아니라, 연기가 중심이기에, 자신의 스타일을 만들었던 거다. 스타일은 결국 삶의 확장을 위한 전략일 뿐이다. 패션의 기원을 <On Fashion>한 권의 책을 통해 배운다. 패션이 가야할 길, 여전히 먼 길을 가는 외로움을 달랠 친구로선 꽤 괜찮은 책인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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