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 Fashion/패션 큐레이터의 서재

악마는 프라다를, 여성은 보석을 입는다

패션 큐레이터 2010. 1. 13. 22:40

 

 

S# 악마는 프라다를 입고 여성은 보석을 입는다

 

우리가 외양(Appearance)라고 할 때, 이 개념은 단순하게 얼굴만을 포함하는 협소한 의미가 아닙니다. 몸에 새긴 문신, 얼굴의 형태, 빛깔, 피부색, 드레스의 착장 상태, 눈동자의 움직임, 제스처 모든 걸 포함하지요.

 

언제부터 사람들은 보석을 몸에 걸쳤을까요? 왜 걸쳤을까요? 어떤 목적으로 단순하게 신체장식의 확장이란 뭉뚱그린 표현 하나로 잡아내기엔, 수많은 이유들이 있을겁니다.

 

최근 쓰고 있는 패션의 심리학 책에 들어갈 내용들을 정리하면서 이런 저런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한국에는 그나마 이런 패션과 주얼리의 관계를 심리학적으로 풀어낸 책이 전무합니다. 앤티크 주얼리나, 주얼리 이야기 정도지요.

 

대한민국의 패션 관련 저자들을 보면, 항상 패션과 인간이 따로 노는 경우가 한 두번이 아닙니다. 기껐해야 맨날 판에박은 '스타일 가이드'류 들의 조언을, 그것도 검증되지 않은 사실들을 나열하고, 헐리우드 스타나 패셔니스타의 사진을, 저작권 허락도 받지않고, 대필작가를 시켜 만드는 수준이니 오죽할까요?

 

최근 한국에서 절찬리에 팔리고 있는 패션 스타일 책이 대필이란 소문이 무성하지만, 결정적인 근거, 무엇보다도 고스트 라이터가 자백하지 않는 한 이런 내용들은 그저 소문에 머물 뿐이고, 무엇이든 확증이 없이는 함부로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기에, 이 정도에서 그 내용은 그만 하겠습니다.

 

오늘은 보석 이야기나 해야겠습니다. 보석에 관련된 책들도 많질 않습니다. 무엇보다도 보석 이야기는 많아도, 그 보석을 구매해서 평생 가지고 다니며 시간과 장소에 따라, 연출하고, 그 사람의 역사와 함께 하기에, 고색창연한 개인의 뒷 이야기가 묻어나오는 책은 없지요. 그렇게 책을 쓰지 않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오늘 출판사에 들러 <Famous Jewelry Collectors>란 책을 받아왔습니다. 틈틈이 시간을 내어 번역에 착수할 예정인데요. 오는 길에 읽어보니 내용도 평이하고 읽기가 쉽습니다. 유명인사들, 사교의 꽃이라 불리웠던 여자들, 기품있는 명사들의 보석에 대한 취향과 더불어 그들의 보석 컬렉팅의 역사를 통해, 개인의 개성과 특질, 숨겨진 내면의 모습을 읽어갑니다.

 

 

세계적인 미술관련 출판사인 템즈 앤 허드슨에서 나온 책인데 좀 늦은 감은 있지만, 이렇게 한국에 번역되어(물론 제가 빨리 끝내야겠지만요) 나오게 될 것을 생각하니 기분이 좋습니다. 저 또한 공부하는 마음으로 번역에 임하려고 합니다. 왜냐하면 패션과 액세서리, 보석의 심리학에 대해서 연구하면서, 정작 그걸 하고 있는 사람들에 대해 연구하거나, 자료들을 구해 읽어보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저는 항상 보석이나 액세서리가 단순하게 그 자체의 아름다움 만으로 기억되는 것이 아니라, 착용자의 삶과 함께 빛나야 한다고 주장해왔습니다. 이 말은 보석이 꼭 명품 브랜드나 고가의 물건이어야 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자신이 스스로의 역사를 쓸 때, 마치 동반자처럼 빛나고 자신만의 이야기를 가진 보석, 그런 잇 주얼리를 꼭 가진 인생이 되자는 게 제 생각이지요.

 

 

특히 영화 배우들과 오페라 디바들의 보석 컬렉션이 눈에 들어오는데요. 과거 헐리우드의 최고의 미녀배우였던 에바 가드너의 보석 컬렉션이 눈에 들어오더군요. 그녀의 배우로서의 삶과 보석과의 관계. 과거의 시간 속, 생의 역정 속에서 한 고비 고비를 지켜온 보석의 이야기가 눈에 선연하게 읽혔습니다.

 

 

여자가 장식을 하나씩 달아가는 것은 젊음을 하나씩 잃어가기 때문이다. / 씻은 무우 같다든가 뛰는 생선 같다든가 (진부한 말이지만) 그렇게 젊은 날은 젊음 하나 만도 빛나는 장식이 아니겠는가 / 때로 거리를 걷다 보면 쇼우윈도우에 비치는 내 초라한 모습에 사뭇 놀란다. / 어디에 그 빛나는 방식들을 잃고 왔을까 이 피에로 같은 생활의 의상들은 무엇일까 / 어디에 그 빛나는 장식들을 잃고 왔을까 / 이 피에로 같은 생활의 의상들은 무엇일까 / 안개같은 피곤으로 문을 연다 / 피하듯 숨어보는 거리의 꽃집 / 젊음은 거기에도 만발하여 있고 /  꽃은 그대로가 눈부신 장식이었다. /  꽃을 더듬는 내 흰 속이 물기 없이 마른 / 한 장의 낙엽처럼 쓸쓸해져 /  돌아와 몰래 진보라 고운 자수정 반지 하나 끼워 달래어 본다.  홍윤숙의 <장식론> 전편

 

홍윤숙의 시를 읽고 났더니, 번역의지가 끓어오릅니다. 시인은 장식을 다는 것이 젊음을 하나 씩 잃어버리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일견 타당한 주장입니다. 세월이 흐르면서 얼굴에 탄력도 사라지고, 피부색도 점차 거무틔틔하게 변해가죠. 나이가 들수록 화려한 보석과 색감의 직물에 끌리는 건 유전적인 이유입니다. 피할 수 없는 운명이기도 하구요. 지금 번역하고 있는 책에서도 어떤 왕족이 '진보라 고운 자수정' 반지를 끼고 있던데요. 이 부분을 다시 읽어야겠네요. 우리가 보석을 추구하는 것은, 그것이 인간의 삶보다 유한성의 기간이 길기 때문이겠죠. 변치 않는 다고 믿는 신념의 체계가 투사된 결과일 거구요. 하지만 그 보석을 착용한 사람의 곁에서, 피부의 확장이자, 보석이 걸린 신체를 확장하며, 그의 유한한 생에 무한한 삶의 시간을 새겨넣는 거겠죠. 여자들이 보석을 하는 이유는 바로 그런 이유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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