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 Fashion/패션 큐레이터의 서재

직물-패션의 시원을 읽는 기호

패션 큐레이터 2010. 2. 1. 01:31

 

 

 

 

이번 달 큐레이터의 서재에는 또 수십권의 책들이 들어찹니다. 특히 빅토리아 시대의 성풍속을 알 수 있는 소설 작품들을 주로 구매해 읽고 있습니다. 패션이론이란 분과를 나름 개척하며 공부하며, 인문학과의 교류를 통해 그 폭을 넓혀가는 재미가 솔솔합니다. 옷 한벌을 분석하기 위해, 시대를 공부하고, 그 시대를 반영했던 문학과 미술, 음악과 건축을 차례 차례 되집어 가는 여행길이 즐거운 이유입니다.

 

실크나 벨벳, 면과 마, 모피나 가죽 등 다양한 직물의 역사를 살펴봅니다. 그 속에 담긴 문화적인 함의들을 공부하다 보면, 마치 우리의 신체에는 각 시대의 문화적 이정표가 각인되어 있는 것 같아, 사뭇 소롯한 느낌마저 듭니다. 옷 한벌을 고르고 구매하고 오랜동안 입다가 폐기하는 이 과정 하나하나가 결국, 우리들의 살림살이, 삶의 방식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죠.

 

텍스타일은 '직조하다'라는 뜻의 라틴어(textilis)와 프랑스어(texere)에서 유래한 것이지만, 오늘날의 직물뿐만 아니라 편직물·펠트·부직포를 비롯한 모든 피복재료를 지칭하는 광범위한 말이기도 합니다. 인류는 선사시대 이전 부터 이미 갈대와 사탕수수, 등나무와 종려나무의 줄기를 엮어 짠 형태의 텍스타일을 사용해 왔습니다. 이후 채집과 수렵경제에서 농경을 바탕으로 한 경제로 이전하면서, 동물의 털과 식물의 줄기를 이용해 실을 만드는 방적 기술이 발명된 것이죠.

 

최근 텍스타일은 섬유와 화학공업의 총아로서, 나노 기술과의 결합을 통해 지금껏 상상하지 못한 종류의 기능을 가진 직물을 생산해내려 합니다. 2007년 미국 해군은 입으면 주변의 빛을 흡수해 인체를 보이지 않게 하는 자칭 '투명인간 만들기' 프로젝트에 대한 1차 보고를 끝냈습니다. 직물을 만드는 소재도 다양해져서 이제는 양젖에서 추출한 단백질로 원단을 만들기도 하더군요.

 

지금껏 출간된 패션 책들 대부분이 디자이너나 미술과 패션의 결합과 같은 화두에 머물러 있었기에 이번 Fashioning Fabric은 그 의미가 더 큽니다. 무엇보다 직물에 관련된 책들은 대부분 머리아픈 화학식이나 구조식을 설명하는데 급급한 것들이 많아서, 실제로 실 공부, 원단 공부를 하는데는 별 도움이 안되었던게 사실입니다. 더구나 직물을 패션 디자인 과정의 중심에 놓고, 풀어간 책은 거의 없었다고 봐야지요. 그래서 이 책이 더 귀하게 느껴지나 봅니다.

 

텍스타일 디자인을 디자인 발상과 전개의 핵으로 삼고 있는 디자이너들의 작품을 중심으로, 직물과 패션의 관계를 새롭게 정립하고 있습니다. 일본의 이세이 미야케의 조각적인 주름에서 제시카 오그덴의 빈티지 원단에 이르기까지, 디자이너 별로 다양한 직물 디자인의 미학과 방식을 밝히고, 디자인 작업과 연결시켰다는 점이 인상깊구요. 직물의 창조적 사용에 대해 관심이 많은 디자이너들은 꼭 일독 해보시길 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