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 Travel/해를 등지고 놀다

치유의 길, 자유의 길-올레를 걸으며

패션 큐레이터 2010. 1. 28. 23:57

 

 

지난 화요일과 수요일 양 이틀에 걸쳐 제주도에 다녀왔습니다.

한국인권재단과 함께 40대 남성 직장인의 생활인권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최종 프레젠테이션을 겸한 워크샵 시간이었습니다. 오전에 짐을 풀고 제주 올레 3코스를

걸었습니다. 화창한 날씨로 인해, 모든 사물의 표면 위로 몽실몽실 겨울햇살이

피어나는 시간, 정말 걸어보고 싶었던, 올레길에 서니 마음이 설렙니다.

 

 

억새 사이로 지나는 길, 바람에 나부끼는 생의 유연함이

빠른 보폭으로 걷는 제게 자꾸 말을 거는 듯 했습니다. 이번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가장 걱정인 것이, 40대 남성을 상대로 강의를 해야 한다는 부담감이었습니다.

 

회사를 다니고 일을 하고, 글을 쓰면서 사람들을 만납니다.

여전히 친구들은 이제 올해 차장 년차에 들어서, 치열하게 경쟁대오를

갖추고, 그렇게 살아가지요. 가정과 일의 양립, 균형감각을 갖고 생의 주변부를

되돌아 보는 일이 중요할 때가 되었지만, 이 땅의 직장문화는 그런

노력에 대해 일절 배려하거나 관심을 갖지 않습니다.

 

 

올레 길을 걷다 보면 발견하게 되는 것이

주황색과 파랑색 두 가지 빛깔의 끈으로 묶여있는

방향표시입니다. 두 가지 빛깔이 원래 가장 극명한 보색대비를

이루기도 하지만, 푸른멍울을 길 위에서 풀어내라며, 가는 길 표시엔

저렇게 청색을, 희망과 배려의 빛 주황을 돌아가는 길에

넣어 의미를 부여한 것도 멋져 보입니다.

 

 

이번 프로젝트에 참여한 강사 선생님들의 면면이

흥미롭습니다. 제와는 다른 지식의 체계와 경험을 갖고

많은 임상경험을 통해, 사람들을 만나 치유의 길을 풀어내는 분들이지요.

'몸'을 매개로 무용치료를 하시는 분도 있고, 사이코 드라마를 통해 억제된 우리 안의

분노와 감정을 살펴보고 상담하는 전문가 선생님도 계십니다. 40대 남성들의 일상을 옥죄는

거시적 구조를 사회학적으로 밝혀냄으로써, 우리의 문제가 '개인만의 것'으로 책임져야 하는 일로 남지

않도록 격려하고 '생활속의 운동'을 가르치는 분도 계시지요. 모두 다 소중한 분들입니다.

 

 

억새와 진초록 배추밭을 지나면

널부러진 바다와 만납니다. 바다를 본 게 얼마만인지.....

바다의 밀려오는 포말에, 아픈 상처을 멍울을 풀고 하나가 될 준비를 합니다.

 

인간이 거대한 자연 앞에서 편안함을 느끼는 것은

많은 이유가 있습니다. 음향학적으로 이야기 하면 바다 앞 파도 소리는

흔히 화이트 사운드(White Sound)라고 해서 사유와 집중하는데 효과적인 소리를

만들어내기 때문입니다. 모든 소리가 결합된 소리라고 하네요. 듣고만 있어도,

우리 안에서 밖으로 표출하지 못했던 그 소리들을 대신 바다가

꺼이 꺼이 울어주는 건 아닐까요?

 

 

바다를 등진 바다목장의 풍경입니다.

제주 올레길 3 코스는 해안경관과 더불어 바다목장의

지평들이 아름답게 박혀 있지요. 지금 겨울을 맞아 바닥에 미만하게

차오르는 주황빛은 바로 귤껍질 때문입니다.

 

 

해풍에 말린 귤껍질을 한약재로 사용한다고 하네요.

산책하면서 보니 말도 이 귤껍질을 사료로 먹는 것 같던데

정확한 용도는 잘 모르습니다. 진청색 바다와 주황색 귤껍질이 합쳐져

올레길 매듭표시의 빛깔을 완성하네요. 짭조름한 바다냄새에 마른 해풍에 표면이

바짝 마른 귤껍질 앞에 가서 섰습니다. 귤냄새가 차오르네요.

 

 

목장 전체가 귤껍질을 말리고 있어, 그 사이를 걸어가는 것도

일종의 풍경이 됩니다.

 

 

올레길 순례에 함께 하셨던 표현예술치료사

이정명 선생님께서 함께 길을 걷는 이들에게 자신에게

말을 거는 사물을 하나씩 들고오라고 하셔서, 저는 바짝 마른

귤껍질을 들어 카메라 가방안에 넣어왔습니다.

 

 

제가 귤껍질을 집어든 이유는

마치 그 껍질이 인간의 표피를 상징하는 듯

했고, 무엇보다도 인간의 피부를 감싸는 한 벌의 옷이

연상되었기 때문입니다. 옷이 인간에게 제 2의 피부이듯, 인간의

삶 속에서 옷은 응어리진 마음을 대변해주는 일종의 기호입니다. 

 

 

옛날 사람들은 죽음을 준비하며 수의를 짜고,

볕과 바람이 좋은 날을 택해, 수의를 말리곤 했습니다. 일종의

의식이지만, 죽음이란 제의를 소망하고 그 날까지 최선을 다해 살려는 인간의

오롯한 마음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즐비하게 늘어진 귤껍질에선

짙은 상처의 향기가 났습니다. 마른 해풍에 아픈 것들

모두 날리고 나서도, 여전히 향기가 남습니다.

 

 

향기가 베인 삶.

표피가 벗겨져 영원한 생의 계단위를

걸어가게 될 때에도, 누군가에게 짙은 향기로 남을 수 있는

생은 행복할 것입니다......

 

 

올레길을 걸으면서 함께 한 분들의 표정을 담았었는데요.

인권재단에서 일하는 노미선님과 여성사회교육원장님이신 김희은

선생님입니다. 길을 걷는 가운데 마음들이 편해져서 일까, 사진 속에 담은 분들의

표정도 하나같이 밝습니다.

 

 

 바다를 따라 걸으며..... 문득 생각에 빠집니다.

우리가 거대한 자연 앞에서 편안함을 느끼는 이유는 자연의

거대함이 오늘날 빚어지기까지 '그 속에서 역사했던 힘'을 생각해 보게 되고

오늘날 우리에게 닥친 소소한 일상의 걱정을, 자연을 빚고 조형한 힘의 광대함 앞에서

그저 내려놓으라고, 그러면 낫게 되리라고 말하는 것은 아닐까 싶습니다.

 

 

바닷바람에 풍화된 바위 틈새로

사람들이 작은 돌을 집어다 하나씩 채워넣었더군요.

 

 

 강태공 아저씨의 모습도 그저 멋져 보이기만 하고요.

 

 

바람에 몸을 맡긴 억새의 혼은

끊임없는 풍화 속에 자신의 몸을 내어 주지만

그 혼의 무게만큼은 결코 가볍지 않을 거란걸. 오늘도 길 위에서

나를 둘러싼 자연을 통해 배우게 됩니다.

 

 

오렌지빛 노을이 익어가는 시간......

표선해수욕장의 백색 모래사장엔 미만한 청색물이 들었습니다.

 

 

멀리 보이는 등대가 약간 외롭다는 생각

쓸쓸해 보일 때쯤

  

 

올레길을 걷는 우리들의 행장도 마무리에 들어갑니다.

 

 

바다와 하늘이 하나가 되어 통음하는 시간

길 위에서 만나고 인사한 모든 것들이 고맙습니다.

내 안에 있는 작은 답답함과 상처들을 이제 물 속으로 깊이

수장할 시간. 옛날 바닷가 마을의 지도자들은 하나같이 자신의 시신을

수장시켜 바다에 바치고, 그 혼의 힘으로 인간의 마을을 지키길 염원했다지요.

 

 

길 위에서 만난 모든 것들이......

정말 고마왔던 하루였습니다. 지금보다 나은 하루

일상, 일주일, 한달, 일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대지위에

접지할 때 내 발에 느껴졌던 생의 운동성이, 자꾸 지치고 포기하려는

저를 잡아 이끌어주길 바라고 또 바래봅니다.

 

힘을 내겠습니다.......

그렇게 또 길 위에서 걸어야지요.

길은 걸음으로써, 길이 되는 것이라고 하지요.

누군가에겐, 탐욕의 길이고, 누군가에겐 권력을 향한 욕망의

길이었을 것이고, 또 누군가에겐 상처준 이들에게 사죄하지 않고 그저

뻔뻔스레 걸어가고 싶어한 길일겁니다. 나는 그 길 위에서

무엇을 털어넣고 내려놓아야 하는지를

고민해야 겠습니다.

 

함께 해주신 모든 이들에게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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