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 Travel/해를 등지고 놀다

벌교에서 먹은 제철 꼬막-지친 당신을 위한 소울푸드

패션 큐레이터 2009. 12. 2. 00:47

 

 

1박 2일 저의 호남문화유산답사기는 보성의 대한다원에서 시작합니다. 글을 올리는 시점에서 자꾸 시간의 연대기가 다른 이유는, 서울에 올라와 소회를 정리하며 글을 올리다보니, 먼저 올리고 싶은 부분, 혹은 저도 모르게 글이 끌려가는 소재를 골라 쓰다 보니 그렇게 된 것이죠.

 

오전시간, 여행을 떠난 첫날 초겨울의 날씨는 매우 따스했습니다.  삼나무 향이 폐부 속 깊이 파고드는 다원길을 걸으며 보낸 오전, 차를 타고 점심을 먹으러 간 곳은 바로 벌교입니다.

 

벌교에서 유명한 것이 짱뚱어와 꼬막인데요. 어린시절 부산에서 살다가 광주로 잠시 전학을 가서 보낸 시간, 유독 식탁에 올라온 꼬막이란 요리가 되게 신기했습니다.

 

왠 조개가 이리많나. 부산에 살땐 재첩국을 그리도 먹었고 이곳에 와선 이 꼬막이란 걸 먹나부다 했죠. 서울로 다시 와선 이 꼬막을 언제 먹어봤나 싶을 정도로 오랜만에 맛보는 미각이었습니다.

 

벌교역에 내리면 역전 앞에 즐비하게 늘어선 식당들의 주 메뉴는 역시 짱뚱어와 꼬막정식. 게다가 겨울에는 이 꼬막이 제철이니 선도나 싱싱함으로 볼땐, 꼬막정식이 좋겠다 싶어 식당으로 들어갔습니다.

 

벌교역 앞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찾아간 곳은 역전식당이란 곳입니다. 함께 여행다닌 몰핀님이 인터넷에서 찾아보니 유명한 곳이라고 해서 기대를 하며 들어갔죠. 그런데 왠걸. 처음엔 좋은 아침 등과 같은 방송 프로그램에 소개되었다고 해서, 의심도 갔습니다.

 

그도 그럴것이 툭하면 맛집입네 뭐네 해서, 방송에 소개된 것처럼 포장된 곳들이 너무 많다보니, 정작 가보면 음식맛이 따라가지 못하는 경우를 하도 경험해서 그렇겠지요.

 

꼭 어디나 대표음식들이 경합하는 곳에는 '원조'경쟁이 있는 법이잖아요. 마치 제 대학시절 장충동 앞엔 수없이 많은 '족발'의 원조 마케팅을 벌이는 가게가 있었듯 말입니다. 남도여행을 하며 특히 음식점을 가보면 전통 한옥을 개조한 집들이 많더군요. 다소 빛바랜 허름함을 갖고 있어도, 따스한 온기가 가득합니다. 

 

 

자리를 잡고 꼬막정식 3인분(각 12000원)을 시켰습니다. 여수 갓김치와 도라지 무침, 꼬막을 넣은 부침개, 이외에도 꼬막을 넣어 소큼하게 끓여낸 된장국과 토란이 밑반찬으로 나옵니다. 이번 여행하면서 한가지 궁금한 것이, 회사 앞이나 시내 어디를 가서 정식을 먹어도 토란이 밑반찬으로 잘 안나오던데, 호남지역에선 제가 갔던 식당은 어디든 빠지지 않고 토란이 나오네요. 호남분들이 토란을 유독 좋아하시는 건가 해서 궁금했습니다.

 

이어서 통꼬막과 양념꼬막 무침꼬막이 연달아 나옵니다. 어린시절 주로 먹던 건 양념꼬막이었는데, 그때가 떠올랐습니다. 저야 참기름과 매콤달콤한 양념으로 머무린 꼬막무침이 좋아 자꾸 손이가는데, 함께한 분들이 원래 꼬막은 싱싱한 통꼬막을 제대로 먹어봐야 한다며 손으로 일일이 꼬막속살을 벌려 제 앞에 놓아주셨어요.

 

 

대학시절 부터 줄곧 빼놓지 않고 하는 작업 중에 하나가, 책을 읽으면서 문학 작품 속에 묘사된 옷과 먹거리, 집에 대한 묘사를 꼭 밑줄을 긋고 타이핑을 해놓는 일입니다. 소설가 최명희 선생님의 <혼불>을 읽으면서 한복의 제작은 물론이요, 관련된 관혼상제와 상복의 묘사에 흠씬 빨려들곤 했었죠. 다니자치 준이치로의 <세설>을 읽으면서는 기모노의 묘사를 상세히 적어놓는 재미로 텍스트를 읽었죠. 조정래의 <태백산맥>을 이야기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이 책을 읽다보면 꼬막에 대한 묘사가 정말 많이 나오거든요.

 

"꼬막은 찬바람이 일면서 쫄깃거리는 제맛이 나기 때문에 천상 뻘일은 겨울이 제철이었다. 꼬막은 뻘밭이 깊을수록 알이 굵었다. 뻘밭이 깊으면 그만큼 깊이 빠지는 걸 알면서도 들어가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건 용기도 아니었고 무모함은 더구나 아니었다. 그것은 오로지 생계였다. 꼬막을 잡아야만 하루 목숨을 잇는 것이었다.

 

그래서 여인네들은 살을 찢는 겨울 바닷바람에 바지를 허벅지까지 걷어 올려 맨살을 드러낸 채 뻘밭으로 들어서는 것이다. 소금물을 머금은 뻘의 차가움을 얼음물의 차가움에 비할 수 있을 것인가. 그리고 끈적끈적하고 찐득찐득한 뻘은 장딴지만이 아니라 허벅지까지 빠지게 해서는, 그대로 물고 늘어졌다.

 

뿐만 아니라 뻘 속에는 여러 종류의 조개들이 박혀 있어서 그 껍질들이 예고없이 다리를 긁어댔다. 한차례 뻘일을 하고 나면 조개껍질에 긁힌 상처가 일삼아 바늘로 긁어놓은 것처럼 온 다리를 실핏줄로 감고 있었다. 앞이 휜 널빤지 위에 왼쪽다리를 무릎꿇어 몸을 실리고, 왼손으로 단지오 흰 널빤지끝을 함께 잡고, 오른발로 뻘을 밀며 오른손으로 꼬막을 더듬어 찾는 겨울바람 속의 여인네 모습은 그대로 극한에 달한 빈궁의 표본이었고, 모진 목숨의 상징이었으며, 끈질긴 생명력의 표상이었다." - 소설 <태백산맥>4권 중 PP72~73 -

 

 

소설가 조정래는 이 꼬막의 맛을 가리켜 "간간하고 얼큰하고 쫄깃쫄깃하고 배릿하다"라고 표현했죠. 꼬막을 넣어 한소끔 끓여낸 된장국은 얼큰하면서도 시원한 끝맛이 혀끝에 감돌고, 통꼬막은 배릿한 느낌이 듭니다. 무침꼬막은 큰 그릇에 주로 밥과 비벼먹는데, 그릇을 달라고 하면 이미 그 안에 김과 참기름이 들어간 상태인지라 바로 비비면 된답니다.

  

 

부챗살처럼 퍼지는 쫄깃한 통꼬막의 향이 입에 아직도 기억으로 저장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겨울이 오면 또 한번쯤 가고 싶네요. 올 겨울, 싱싱한 꼬막 푸침하게 먹었으니, 그 기운으로 모진목숨, 끈질기고 아름답게 살아가고 싶네요. 오랜 슬럼프에서 이제 겨우 벗어나나 싶은 요즘. 제겐 큰 영혼의 음식이 되어주네요.

 

**

개인적으로 이 역전식당은 다시 한번 가고 싶네요. 인터넷으로 찾아봐도 추천수가 높고, 현지인들이 더 좋아하는 곳이라니 저로선 좋은 기회를 잡은 셈이었네요.

 

 

 

419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