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 Travel/해를 등지고 놀다

가을, 속초여행-뭉클함을 위하여

패션 큐레이터 2010. 10. 23. 07:00

 

 

수목금.....짧은 2박 3일의 일정을 빌어

속초에 다녀왔습니다. 영화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의

여파가 큰 탓일까요? 명멸하는 시간의 풍경 속에서 꽃잎 쏟아져내리는

나무 둥치 아래서 제 모세혈관속을 흐르는 제 영혼의 수런거림을 들어야 했습니다.

해풍을 맞고 싶었고, 가을 내설악을 보고 싶다는 욕망이 스멀스멀, 잦아든 피부 위로 융기했습니다.

맨발로 뛰어가고 싶은 생각, 여행은 인간을 시간을 마치 피륙을 짜듯, 직조해냄으로써, 새로운 옷을 입어보라고

권유합니다. 남우새스런 일상의 옷을 벗고, 여행을 통해 우리가 얻고 싶은 선물이기도 하겠지요.

 

 

해외 마케팅을 하면서 외국의 이국적 정서와 풍경에는 익숙하면서도

기실, 가까운 근거리를 제외하고는 한국의 지방여행 한번 제대로 해본 적이 없는 저랍니다.

글을 쓰며 독이 몸에 퍼지는 순간부터, 내게 익숙해져버린 생의 리듬을 부숴야 한다는 위기감이

엄습하지만, 항상 매어있는 일상의 무게로부터 빠져나가기가 쉽지 않습니다.

 

가을, 내 안의 뭉클함을 찾기 위한 여행지를 찾았습니다.

바로 속초였습니다. 아버지가 오랜세월 사셨던 곳이기도 하고 할아버지의

산소가 있어 종종 들렀던 곳이지요. 하지만 시간을 갖고 구석구석을 보진 않았던 곳이기도하죠.

차를 몰고 도착한, 속초 중앙시장 길 새롭게 구획지은 길이며 디자인된 시장 풍경을 담는 시간은 즐겁습니다.

 

 

블로그의 힘을 느낀 여행이었습니다. 정작 제 자신은 미술 분야의 파워블로거이면서도

느끼지 못했던 점을 이번 여행을 통해 뼈져리게 느꼈습니다. 여행을 할 때, 항상 혼자 한 탓에 제대로

먹거리에는 신경을 쓰지 않았지만, 이번엔 가족과 함께 한 일정이라 예쁘게 먹고 여유있게 쉬다 오고 싶었습니다.

아버지가 이북분이라, 항상 냉면을 비롯, 황태요리, 가자미식혜와 같은 요리들을 좋아하세요. 저는 이번에는 감자를 성글게

갈아 파삭한 식감이 좋은 옹심이를 먹었습니다. 저는 강원도의 감자 옹심이를 먹을 때마다, 항상 독일인 친구를

함께 데려와서 사주고 싶다는 생각을 합니다. 독일이 감자를 주식으로 하는 건 잘 아실겁니다.

정찬에는 항상 곱게 간 감자요리가 빠지지 않고 등장하지요.

 

 

일단 감자 옹심이의 경우는 식감과 더불어 짙은 스프를 먹는 느낌이 나지 않을까 싶습니다.

감자요리를 워낙 좋아하는 저로서는 깊어가는 가을햇살 아래 체감되는 한기에 몸을 달래는데는 좋지 않을까 싶네요.

 

 

사진 속 닭강정도 사실은 속초 여행과 관련된 블로그들을 찾으며

얻은 정보를 이용해 중앙시장 내 매장에 가서 한 박스를 샀습니다. 역시 시장에

가니 저녁 찬거리를 사고 싶기도 했구요. 처음에 가게를 지나가, 닭튀김을 선풍기에 식히고

있는지 궁금했답니다. 이 닭강정은 식어야 더 맛이 난다는 군요. 그래서 포장 자체도 열기가 바깥으로

나가도록 윗부분이 열린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이것도 시장에서 사온 모듬전 세트. 만원을 줬습니다.

여기에 속초에 가면 꼭 먹는다는 오징어 순대 세트를 함께 샀지요.

(사진은 제가 대 여섯 개 먹고 나서 찍은 거라 약간 부실합니다)

※ 이번 사진찍으면서 음식 블로거분들......정말 대단한 분들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어떻게 음식을 앞에두고, 타이밍을 맞춰서 사진들을 잘 찍으시는지 원......

 

워커힐 근처에 살다보니, 영화를 보거나 옷을 사러 건대입구에 종종 가거든요.

이쪽을 들르는 길에 재래시장에 가는데, 여기서 샀던 모듬전세트 값의 딱 절반이더군요.

아버지가 명태를 좋아하셔서, 명태전을 좀 더 달라고 부탁드렸더니 그것도 오케이, 워낙 길치인지라

여행할 때면 길을 잘 물어보는 편인데, 어찌나 친절하신지 물어보면서 기분이 좋았습니다.

 

친절함에 대한 평가나 척도는 개인에 따라 다를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시장에서 만난 분들의 느낌이, 저로서는 자칭 서비스마스터에게

교육을 받고 투입되는 할인점이나 백화점의 기계적인 감정노동자의 친절 서비스보다

더 따스하게 와닿더군요. 그래서 기억의 망막속에 '뭉클'함을 만든 것 같습니다.

 

 

점심을 먹고 갯배를 타러 가는 길입니다.

진청빛 하늘이 곱습니다. 코발트 블루란 색명은 오히려

어울리지 않지요. 요즘은 한국의 하늘도 예전같진 않지만 전남 강진을

비롯, 다른 지역의 청명한 하늘은 북유럽의 우울한 회색빛 하늘보다 수 천배

아름답지요. 초겨울에 접어드는 햇살의 입자는 조밀하고도 깊습니다. 신생하는 시간의

부드러운 햇살과 이제 자신의 영역을 내어주어야 하는 빛의 쟁투가, 그 속을 거니는 인간의 마음을

불안케 하지 않는 이유는, 우리가 살아가야 할 시간은 단절이 아닌 영속이라는 가르침을

풍화의 운명 속에 몸을 맡긴 인간의 뼛 속 깊이 세겨놓기 때문이 아닐까요.

하늘을 볼 때마다 제가 다시 한번 '뭉클'해지는 이유입니다.

 

 

200원을 주고 나는 갯배. 땟목 형태로 되어 있어

자원봉사로 줄을 끌 수도 있습니다. 아바이 마을로 들어가는 길입니다.

속초 중앙동과 청호동 아바이 마을 사이 폭 50여m의 청초호 수로를 건너다니는

원시적 나룻배인 '갯배'를 타고 표면을 건너는 시간, 다리 위로 바닷새의 울음이 들립니다

 

 

이곳에서 붉은 기운이 도는 순대국밥과 아작하게 씹히는

가자미 식혜를 시켜 아버지와 함께 먹었습니다. 오래 전 이곳에 왔을때는

바다를 막는 방파제가 없어 널브러진 모래사장과 햇살이 좋았는데요. 이제 그 풍경도

사라지나 봅니다. 바다를 포위한 방파제를 보니, 마치 그 속에 갖힌 바다가 태양아래 졸아들어

염전으로 변할 것 같은 공포마저 느낍니다. 예전 서해 오이도에서 본 가을 염전은 말라 더 이상 증발될 수

없는 백발의 소금밭은, 노쇠란 감정을 익혀가는 제겐 두려움과 아픔의 감성을 입혔거든요.

바다를 찍는 저와 그 옆 아버지의 모습이 긴 그림자로 남아 모래 위에 그려집니다.

누구보다 잘 하고 싶었고, 잘 나가고 싶었고, 아버지를 넘고 싶었던

한 아이는 점점 햇살의 길이에 따라 변모하는 그림자의

운명을 닮아갑니다. 제 아버지도 그랬겠지요.

 

그렇게 또.....뭉클함을 배웁니다.

 

 

숙소로 돌아와 창을 엽니다.

울산바위가 한 눈에 보이는 꽤 멋진 방입니다.

금강의 일부가 되기 위해, 뱃길을 타고 북으로 흘러가는

울산바위. 바다가 산으로 융기되는 바람에 저 먼 울산에서 올라왔다는

바위는 강원땅의 외톨이 영봉이 되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짙은 해풍을 맡으며

자신의 풍모를 담을 묘자리를 찾던 바위에게선, 바람이 여린 속살을 헤집고 지날 때마다

파도소리가 난답니다. 순정품의 비와 바람, 파도가 바위를 긁고 때려 생채기를 낸 탓인지, 바위에

엉킨 시간의 포말은 '풍경이 구성되는 힘의 방식'을 인간에게 가르칩니다. 인간이 인간의

숲 안에서 풍경이 되기 위해서 감내해야할 뒤엉킴과 아픔의 시간을 말이지요.

다시 한번 뭉클함을 배웁니다......그래서 고맙습니다.

 

 

발코니에서 울산바위가 너무 잘 보인다고 아버지는 환하게 웃으셨습니다.

얼마만에 '아빠의 웃음'을 보았는지요. 팔순의 나이, 눈가에 패인 노역의 금에 더욱 환한

웃음의 꽃이 피었으면 좋겠습니다. 환하게 웃을때가 아름답습니다. 웃음은 가볍게 하늘을 채우지만

그 가벼움의 내면은 결코 가볍지 않습니다. 인간의 운명을 아름답게 채색하지요.

 

 

다음날, 낮가을의 정서로 가득한 설악산을 찾았습니다.

 

 

내설악에 곱게 들었다는 단풍구경객으로

케이블카는 탈 여유조차 얻기가 쉽지 않습니다. 보통 대기시간이

3-4시간이 기본이더군요. 바람을 친구로 삼아 설악산 금강초롱을 찾고 싶었습니다.

늦가을, 해갈이 필요한 계곡 곳곳, 애잔하게 솟아오른 물푸레나무 아래

몸을 웅크리고 숨어있는 제 자신을 보게 될까 두려웠습니다.

 

 

초록을 넘어 갈맷빛을 자랑하던 산색은 이제 온통 붉고 노란 물이

들 것입니다. 지금까지 대지를 향해 예배하던 나무들은 자신의 마지막 에너지를

소진하고 앙상한 겨울 숲을 이루겠지요.

 

 

신흥사 올라가는 길, 부처상을 자세히보니

옷 주름이 단아하게 접혀있네요. 가을 바람에 삼투된 탓인지

부처의 옷도 나부끼는 것 같습니다.

 

 

설악을 바라보는 부처상 뒤에서

설악의 산새를 그려봅니다. 이제 저 연두빛

숲에도 흰 눈이 내리겠지요. 눈 덮인 설악에 발을 묻고

서 있을 나목들은 얼마나 외로울까요? 살을 에는 칼바람에도 미동조차

하지 않으며 긴 시간을 버텨내겠죠. 살아가는 것이 버거울 수록, 여행을 하는

습관을 들여야겠습니다. 항상 옷에 관한 글을 써 온터라, 여행을 새로운 정신의 옷을

입는 일에 비유해왔습니다만, 짧은 시간의 여행이 주는 결코 짧지 않은 파장은 제 몸의 구석구석

새로 수혈받은 피처럼, 돌아다니지 않을까요? 주어진 모든 것들, 이 소중한 것들을

생각하며 다시 한번 뭉클해 집니다. 용서해야 할 것들과 다시 고려해야 할

것들을 정리하는 시간......이 깊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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