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번 주 시간을 내어 광주로 내려갔습니다.
너무 지친 몸은 자발적 귀양길을 원했던지, 무작정 버스를
타고 남도의 골목골목을 걸었습니다. 염색작업하는 그라시아 선생님과
몰핀님도 함께 귀한 시간 내어, 일상의 비늘을 하나씩 떨어냈던
시간......이제 첫번째로 순천만으로 향합니다.
한국 최고의 연안습지, 순천만은 철새도래지로서
해안생물들의 살터로서, 터우리의 역할을 해왔습니다.
갯벌위로 펼쳐지는 바다를 연상시키는 갈대밭과
칠면초 군락, 무엇보다도 유장하게 곡선의 미를 완성하며 흐르는
수로는 생태적 아름다움의 극치를 만들어냅니다.
갈대밭을 걷는 많은 이들......이 보입니다.
풍경은 인간을 압도하거나 혹은 자신앞에 초라해지지 말라며
초겨울 시간의 입자위에 생의 따스한 포말을 토해해며 그 위를 스쳐지나가는 인간의 삶을 껴안습니다.
적당한 햇살과 바람의 양, 그 아래, 자신의 존재를 알리기 위해
하얗게 새운 갈대의 몸을 흔들며, 자신을 아퀴지은 거대한 조형자의 힘을 깨닫게합니다.
자연은 우리에게 가르치기 보다, 그저 있음으로서 묵묵하게 생의 채근담을
도시 공간속 경쟁의 삶으로 찌든 우리들에게 채워줄 뿐이지요.
서로의 속살을 포개며, 이곳에서 억겁의 세월을 버티며
흘러갔던 모든 것의 혼을 넋놓아 부르며, 위로하는 갈대들이 보입니다.
전망대에 올라 흑색 갯펄과 옅은 아이보리빛 갈대
그 위로 쏟아지는 주황빛 노을을 기다리는 지금. 군락을 이루며
오랜 세월을 감내하며 살아낸 저 자연의 비경앞에 섭니다. 별것 아닌일로 부산함을
떨며, 글쓰는 하찮은 재주 잃어버린게 아닌가 싶어 초조해하는 제게
널브러진 갈대밭은 서걱서걱 아픈 속살을 부비며
말을 건네내요.....잘 될거라고.
흑두루미가 오는 곳이어서인지
갈대밭 옆 평원지역에 두루미 형상의 그림을 그렸습니다.
아름다운 장관을 묘사하기엔
제가 가진 언어가 너무나도 남우새스럽다는 것.
쓸쓸하게 대롱거리는 저 갈대 사이로, 말못한 상처를 껴안고 가는
수로, 그 위를 흘러가듯 방점을 찍고 가는 작은 배 한척.
땅과 하늘이 맞닿은 접면은 이미 붉은 기운으로 가득차기 시작할 때
사람들은 카메라를 꺼내어 이 순간을 조금이나마
멈추어 보려는 듯, 렌즈를 꺼내 응고의 연고를 바릅니다.
이 아름다운 세상......두 눈속에 고이 담아 올수 있어서 행복했습니다.
생의 방점을 찍는 순간, 여전히 살아 있는 나를
만날 수 있어서요.
바람에게 전하고 싶은 말, 선혈빛으로 차오르는
노을의 빛 입자 아래 분말가루처럼 쏟아냅니다. 무뎌가는 생의
지침을 다시 금빛으로 도금하는 자연의 연금술을 경험하고 다시 계단을 내려옵니다.
정상에서 계단을 타고 내려와 다시 순천만을 걷는 시간
하늘은 정상에서 보던 선홍색 노을에서 층층히 옅은 물방울의 입자로
그린 캔버스처럼, 나즈막한 목소리로 퍼집니다.
염색 작업하는 그라시아님. 함께 여행하시면서
더 좋아하시는 모습 보여주셔서 저도 괜한 시간 뺏은게 아니겠다 싶어 행복했고요.
개와 늑대의 시간을 향해 가는 지금
잔여울에 비친 대칭의 구조로 서 있는 순천만의 풍경 속
나도 나를 비출 그 무엇이 있어야 겠다는 생각에 빠져보네요.
찍은 사진을 보니
촬영 시간대 때문인지, 마치 김준곤 화백의
목판화 속 한국의 풍경의 빛을 그대로 담아낸듯 해서 기분이 좋습니다.
저 거센 바람 속에서, 시누대는 늘 시누대의 몸짓으로
등뼈 끊어질 듯 흔들린다 갈대는 갈대의 몸짓으로 온 머리채 다 닳도록 목을 놓는다
지빠귀는 지빠귀의 몸짓으로 울음의 바퀴를 달고 쏜살같다
바람에 오래 말없이 흔들려 삶의 골병든 것들이여
그리움도 침묵의 흔들림으로 골병들때 겨울 들녘 같은 시름의 나날들,
비로소 한낮의 햇살이 이끄는 길처럼 길이 길이 눈부시리니
나, 바람 속에서 내 몸짓으로 당당히 뒤흔들리다
저 펄럭이는 갈대의 머리채처럼 온통
은빛으로 소멸해가리라
유하의 <갈대는 스스로 갈대라 말하지 않는다> 전편
글을 마무리하며 좋아하는 시인 유하의 시편을 올려봅니다.
순천만을 거닐었던 시간, 노을의 빛깔 아래 투영된 갈대의 머리채처럼 온통
순금의 형상으로 변화되는 듯한 체험. 그 행복한 생의 연금술을 만들어준 아름다운 순천만
우리내 생은 어찌도 이리 감사할 것이 많은 것인지.......
'Life & Travel > 해를 등지고 놀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그림자가 쉬어가는 곳-담양의 식영정과 명옥헌 (0) | 2009.12.03 |
---|---|
벌교에서 먹은 제철 꼬막-지친 당신을 위한 소울푸드 (0) | 2009.12.02 |
하늘색 똥을 싸는 송아지-소나무 갤러리에서 보낸 하루 (0) | 2009.07.31 |
조선시대의 이효리를 찾아서-안성 바우덕이 공연 리뷰 (0) | 2009.07.29 |
우산의 재발견-조선시대 우산은 컨닝방지 도구(?) (0) | 2009.07.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