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 Healing/내 영혼의 갤러리

개썰매를 타는 새끼호랑이들

패션 큐레이터 2010. 1. 28. 17:38

 

 

오원영_The first travel_혼합재료_155×600×155cm_2010

 

2008년 벽두에 떠난 시베리아 여행길.

수천킬로미터에 달하는 시베리아 땅. 기차를 타고 관통하는

그 묵언의 시간, 즐비하게 늘어진 전나무 숲에선 평상시라면 감지하지

못할 섬세한 소리가 내 안에서 울려퍼졌습니다. 싸늘한 달빛이 투영된 드넓은 설원.

10시 반이면 취침소등이 되지만, 4칸짜리 조그마한 2등석 칸은 달빛으로 인해 환했습니다.

 

 

오원영_The first travel_혼합재료_155×600×155cm_2010

 

오원영의 작품 속 호랑이 가죽을 뒤집어 쓴 아이들의 모습은

마치 바이칼 호수에서 1박 2일간의 눈썰매 체험을 할 때의 면면과 닮았습니다.

지치지 않고 달리는 개썰매의 속도감은 꽤 빨라서, 두툼한 장갑을

두개나 꼈던 손이 30분 남짓 달리고 나면 한기가 들어

떼었다 붙였다 하며 온도를 조절해야 했죠.

 

 

오원영_Mimicry series_혼합재료_가변크기_2010

 

작가는 늦게 얻은 세살박이 아들

형상화하여 생의 출발선에 선 인간의 모습을

형상화 하고 싶었다고 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작업노트에서

철학자 니체의 표현을 빌어 아이들을 모델로 삼은 이유에 대해 밝히고 있습니다.

 

'아이는 순결이요 망각이며, 새 출발이며, 유희이며,

스스로 돌아가는 바퀴의 최초의 운동이자 신성한 긍정이다."

아이들을 모델로 삼는 다는 것은, 언제나 윤회하는 삶의 첫출발을

기억하고자 하는 인간의 노력일지도 모릅니다.

   

 

사실 조각가 오원영의 작품을 알게 된 건,

우연히 읽게 된 신문기사 때문이었습니다. 청계천 살곶이

공원에 있는 '동심의 여행'이란 작가의 작품에, 누군가가 사계절에 맞는

옷을 입혀놓고 간다는 기사 내용이었지요.

 

 

옷을 입히기 전, 원래 조각작품의 모습입니다.

빨간색 고깔모자에서 누빔 코트에 이르기까지, 아직까지

인형에 옷을 입힌 사람의 정체는 밝혀지지 않았습니다만, 추운겨울

동상에 입힌 따스한 털 코트가 어찌나 이쁜지, 보는 이의 마음 또한 훈훈합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세상의 따스함을 만들기 위해 노력 하는 이들이 있어 행복한 세상이지요. 

 

 

 

오원영_Mimicry series_혼합재료_가변크기_2010

 

작품에선 아이들이 하나같이 맹수의 옷을 입고

그 세계속으로 개썰매를 타고 질주하듯, 들어가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 세계에 들어가, 어린시절 순수의 형상을 잃고

경쟁으로 점철된 세상의 논리를 배우겠지요.

 

 

 

오원영_Mimicry_혼합재료_110×50×40cm_2010

 

아이들은 맹수의 옷을 입고

맹수의 본질인 야성과 공격성을 배우게 될 겁니다.

이것은 또한 사회적 의상으로서, 우리가 걸치게 되는 직업을

비롯한 사회의 다양한 룰들의 집합이 되기도 핮요.

  

 

어렸을 때를 회상하며

우리는 흔히 그때와 지금의 모습이

너무나도 판연하게 다르다고 느낍니다. 프로이트는

유년의 기억을 '굴곡되고 왜곡된 형상'의 이야기라고 구분합니다.

 

 

 내 어린시절

유년의 기억 속, 내가 기억하고 있는

나의 모습은 과연 정확한 걸까요? 작가는 우리들에게

우리가 애써 파편조각을 일일이 맞춰 모자이크 그림처럼 만들어내려

하는 유년의 기억이 꼭 맞는 건 아니다라고 말하는 것 같습니다.

 

 

 

오원영_Mimicry_혼합재료_75×55×45cm_2010

 

오늘 전시장에서 본 작품 속 아이들에게

맹수 대신 환하게 웃을 수 있는 '꽃무늬 프린트' 털 스웨터나

한벌 만들어 입혀주고 싶더군요. 세월이 갈수록 검게 타들어가는 잃어버린

유년의 기억만 가득한 어른아이들에게, 차가운 겨울 기운 막아줄

따스한 옷 한 벌이 필요한 이유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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