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1 루이비통은 꼴불견(?)
신문을 보니, 일본에서 루이비통같은 명품을 걸치고 다니면 꼴불견 취급을 당한다는 내용이 나왔다. 더이상 과시적 소비효과가 힘을 발하지 못한 채, '지니고 다니면 꼴불견' 대접을 받는단다. 작년 한해만 일본 내에서 루이비통 매출은 19퍼센트가 줄었다. 소비경색 국면을 드러내는 지표가 아닐 수 없다.
오히려 H&M이나 '자라'같은 패스트 패션에 눈을 돌리고 있다는 내용이다. 한 마디로 '간지'보다 '실속'을 선택하는 소비자 행동의 한 단면이다. 베르사체 브랜드도 일본 내 모든 매장을 철수했고, 마쓰자카야 백화점 내 구찌 매장도 철수했다.
보석과 시계 부문의 명품 브랜드인 카르티에 조차도 2사분기 매출에서 25퍼센트나 줄어든 걸 보면, 쉽게 꺽일 기세는 아닐 듯 하다. 해외 브랜드에 관심이 있다고 표명한 여성의 숫자가 작년 대비 48퍼센트가 줄었다고 하니, 명품 브랜드의 마케팅 담당자들은 속이 꽤나 탈 것 같다.
왜 이런 일이 생겨나고 있을까? 명품 브랜드들의 매출은 유독 한국과 중국 시장에서 확장 일로에 있다. 여기에 비하면 비교적 오랜동안 명품 브랜드를 선호해왔던 일본시장은 침체기를 맞고 있다. 상품기획자라면 이런 기사의 행간을 읽어야 한다. 한국의 명품시장이 일본시장을 닮아갈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소비자 행동의 이면을 알아야 대비할 수 있다. 한국사회는 작년 초 불어닥친 전 세계적인 금융위기로 인해, 소비생활의 경색화를 겪고 있다. 이런 사회적 분위기에서 무리해서 구매하는 명품을 걸치는 풍조가 전혀 멋지지도 쉬크하지도 않은 상황이 되어버린 것. 사회에 진입해서 본격적으로 명품 구매를 시작하는 20대 후반의 여성 고객 층에서 부터 30대 중반까지 더 이상 명품이 주는 글래머의 힘을 신뢰하지 않는다. 왜 그렇게 되었을까?
S#2 맥도널드 햄버거가 되어버린 명품
저널리스트 데이너 토마스는 <럭셔리-그 유혹과 사치의 비밀>에서 오늘날의 명품은 맥도널드 햄버거처럼 대량으로 찍혀나오는 상품에 불과하다고 비판한다. 맞는 말이다. 툭하면 한정 판매, 리미티드란 표딱지를 붙여놔도, 실상은 내가 가진 핸드백을 다른 인간이 들고 있는 걸 보게 될 높은 확률적 사회를 살고 있는 셈이다.
유럽에서 궁정과 소수의 귀족들을 위해 장인들이 생산했던 루이비통이나 구찌와 같은 명품들이, 대량생산화된 결과다. 한국사회 내 명품 열망은 상대적으로 높지만, 소비경색 국면은 패스트 패션에 눈을 돌리게 하고 있다. 유통의 힘이 제조업의 브랜딩 파워를 꺽는 시대. 일반 제조 부문에서는 이런 트랜드가 자리를 잡았다. 집안에서 쇼핑을 즐기는 Staycation(방콕족)이 시대의 흐름이 되어 간다니, 브랜드 업체들은 이런 흐름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고민을 해야 할 듯 하다. 툭하면 가격세일이나 판에 박은 VIP 프로그램 대신, 다른 시선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물론 루이비통이나 겔랑, 카르티에 브랜드 등 역사적 관점에서 보면 초기 브랜드를 설계했던 장인들의 손길이나 취급방법 등은 나무랄 때 없다. 단 대중화 되면서 옛날의 고색창연함을 더 이상 인위적으로 만들어내기 어렵다는 점만 빼놓고선.
S#3 패션에 대한 생각을 바꾸면 행복해진다
난 개인적으로 Forever21이나 스웨덴의 H&M이 대안인양 하는 말에도 동의하지 않는다. 패스트 패션만큼 지구 환경을 좀 먹는 것도 없다. 1개월 마다 바이칼 호수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물이 줄어든다. 화려한 웨딩 드레스 한 벌을 걸칠 때마다 1800그루의 나무가 베어진다. 어디에도 환경을 생각하는 논리는 없다. 패션계가 말하는 에코 쉬크란 표현이 얼마나 위선적이고 거짓말 투성인지 알수 있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패션에 대한 철학을 다시 세우는 것이다. 대를 물려입는 옷, 세컨드 핸드, 중고의류시장의 확산 등, 소비를 줄이면서도 스토리가 살아있는 옷에 주목해야 할 때가 올 것이다. 이미 오고 있다. 우리가 명품에 대해 함묵적인 동의를 해온 건, 옷이 가진 역사성과 장인의식도 한 몫을 했다.
쉬크(Chic)는 우리가 인위적으로 자신을 치장하기 위해 서구가 오랜동안 쌓아온 고색창연함을 돈으로 사들인 결과다. 명품 브랜드의 기술력과 장인의식, 역사성에 대해 안다고 말은 하지만, 제대로 알고 있는 이를 만나보긴 어렵다. 복식사와 패션 이론을 공부하고 가르치면서 몸으로 얻은 결론이다. 함부로 아는 척 하지말것. 정작 브랜드 매니저 조차도 명품의 고색창연함이 지금 얼마나 많이 퇴색되어 있는지, 상품시장의 논리 앞에 철저하게 벌거벗겨졌는지 알아야 한다. 한편에선 이야기가 담긴 옷을 만들자, 스토리텔링이 들어간 상품을 만들자고 거들먹거린다. 이야기는 제조업체가 만드는 것이 아니라, 입고 쓰고 착용하는 우리가 만들어간다.
옷은 어떤 의미를 부여하느냐가 더 중요하다. 옷을 통해 세대 간의 대화가 가능하고, 내 가족의 역사가 배어있는 옷은 박물관에 컬렉션 할 수 있다. 이것이 진정한 옷에 배인 이야기의 힘이다. 이야기를 만들수 있는 착용자가 되자. 윤리적인 우리가 되고, 세대를 통해 한벌의 옷을 남길 수 있는 인생을 살아가는 우리가 되자. 그게 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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