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 Fashion/패션 필로소피아

미술로 보는 '레이디 가가'-옷을 위해 노래하는 패셔니스타

패션 큐레이터 2009. 12. 13. 19:46

 

 

 

S#1 레이디 가가-네오 바로크 시대의 패션 아이콘

 

인터넷 공간이 한 명의 여자가수로 인해 뜨겁습니다. 그녀의 이름은 바로 '레이디 가가'입니다. 미국의 싱어 송 라이터로서 브리트니 스피어스와 퍼기의 음반 가사를 썼습니다. 2008년 앨범을 발표하면서 두드러지는 패션 스타일로 찬반 논쟁을 불러 일으키고 있죠. 수상식장에 노루머리 가발을 쓰고 나타나 이목을 끌었고,  최근엔 바바라 월터스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이 레즈비언 기질이 있다고 폭탄선언을 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음악에 대한 열정과 실력은 그녀를 둘러싼 스캔들의 깊이와 달리, 꽤 육중합니다. 비욘세의 뮤직비디오에 피처링으로 등장해 신선한 매력을 발휘합니다.  그녀는 새로운 패션 아이콘으로 등장합니다. 망사옷에서 부터 키티 브랜드, 비누거품을 소품으로 단 투명 드레스에 이르기까지, 무대에 입고 나온 모든 드레스가 유명세를 탔습니다. 쉽지 않은 일인데, 참 대단하다 싶어요.특이한 행보로 인해 많은 국내 팬을 거느리고 있는 그녀.

  

S#2 가가의 패션철학-옷은 은유다

 

레이디 가가는 한 잡지와의 인터뷰에서 '나는 '의상을 위해 음악을 만든다. 곡을 다 쓴 후 어떤 비디오를 만들지 결정하는 게 아니라 곡을 쓰면서 비주얼 요소를 생각한다. 무대 위에서 부르는 노래와 사람에게 보이는 비주얼은 하나의 완성된 세트이며, 의상을 위해 음악을 만든다는 말은 모든 것을 위해 음악을 만든다는 일종의 나만의 은유인 셈이다'라고 주장합니다.

 

상당히 의미심장한 말입니다. 옷이 우리의 삶을 담보하고 지탱하는 은유가 되듯, 옷의 결과 디자인, 색감과 조형이 그녀의 음악을 지배한다는 뜻으로 받아들여도 되겠지요.

 

그녀는 지아니 베르사체의 강렬한 색채를 좋아한다고 했습니다. 패션 디자이너 베르사체는 항상 시대의 관습적 인식과 싸우는 것이 디자이너의 책무라고 말했죠. 그래서일까 그는 항상 남성/여성 사이에 굳게 닫힌 인식차를 매번 줄이려고 노력했습니다. 남성들에게 매년 런웨이에서 스커트를 입고 걷도록 시켰죠.

 

레이디 가가의 음악도 그렇습니다. 팝 아트를 비난하는 행위를 통해, '정신적 고고함'을 자랑하려는 '아니꼬운 지식'을 남발하는 자들의 행태라고 몰아붙이죠.

 

오늘은 그녀에게 영감을 얻은 작가의 조형작품을 소개합니다. 박성철의 『STYLE-LADY 加加 / 스타일-레이디 가가』展은 고전 여인들의 미적 욕구를 상징하는 얹은머리(가체머리)를 통해 현대인의 욕망과 허상에 대해 새롭게 조명합니다. 가수 레이디 가가의 헤어스타일을 연상시키는 듯한, 얹은 머리는 한국 전통패션 속에 담긴 '글래머'를 현대의 시각으로 풍자하는 작품입니다.

 

본연의 미가 사라진 세계, 남성의 욕망에 따라 가슴을 부풀리고, 머리를 부풀린 미인도 연작들이 눈길을 끕니다. 과장되고 거북한 형태의 가체와 경쾌한 색의 조화 속에서 우리가 발견하는 것은 바로 '신 바로크 시대'의 정신입니다. 작품 속 가체를 한번 살펴볼까요? 가체란 원래 다래라 불렀던 일종의 가발입니다.

 

박성철_Style-加加_구리, 알루미늄, 합성수지_124×92×20cm_2009

 

마치 로코코 시대의 퐁당주를 연상시키는 이 가체는 원래 중국에서 유래한 것입니다. 조선 후기 영/정조 때는 규수들 사이에서 이 가체가 너무 남발되어 국가는 가체 금지령을 내리기까지 하죠. 마치 중세후기의 '복식금지령'과 닮았습니다. 어느 시대나 고습스런 소재나 스타일, 액세서리에 대해 지배계급은 자신들만이 드레스를 통해 차별화 하기 위해 복식 금지령과 같은 웃기지도 않은 법령을 내리곤 했죠. 그래봐야 효과도 별로 없었지만 말입니다.

 

 

 

박성철_Style-加加_구리, 알루미늄, 합성수지_112×112×15cm_2009

 

박성철의 스타일 가가는 제목 그대로 무국적 스타일이 난무하는 시대

모든 것을 더하고(加) 더해(加),자신의 스타일을 만들어가는 시대의 정신을 담아냅니다.

작가는 강렬한 밝은 색과 옷의 실루엣, 부풀어 오를대로 올라, 터져버릴 것 같은 올림머리를 통해

수많은 스타일리스트들이 존재하지만, 정작 개인의 스타일은 존재하지 않는

몰 개성적인 사회의 현실을 풍자합니다.

 

 

 

박성철_Style-加加_구리, 알루미늄, 합성수지_172×67×10cm_2009

 

당장 블로그스피어를 한번 살펴보세요. 패션에 관한 글들을 보면

그 어디에도 패션의 정신성을 묻는 글들이 있었던가요? 항상 메인에 뜨는 글들은

'엣지있게 스카프 매는 법' '내 남자친구 간지남으로 만드는 시크릿' '소개팅을 위한 패션 센스' 등

의 제목을 가진 글들이 대부분입니다. 물론 이런 글들이 유효하지 않다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스타일에 대한 정보는 넘쳐나지만, 그렇게 덧붙이고 덧붙이는

가운데 늘어나는 건, 개인의 고유한 정체성을 패션을 통해 드러내는

법이 아닌, 그저 상업주의의 마각이었다는 점이죠.

 

 

박성철_Style-加加_구리, 알루미늄, 합성수지_103×93×20cm_2009

 

 부풀린 가체는 그 무게가 상당해서 시선에 보이는 아름다움과 달리

부풀어진 가체 머리는 얇은 선과 평면으로 재현된 인물의 몸과 얼굴을 상대적으로 무겁고,

강하게 짓누릅니다. 이는 아름다움의 욕구를 채우기 위한 방법의 한계를 두지 않으려는 인간의 어그러진

모습과 욕망을 반영하는 것이죠. 어느 시대나 미인의 기준은 있었고 그 기준에 따라가려는

여인들의 노력은 필사적이었으니까요. 이런 노력이 가장 정점에 도달한 사회.

그것이 바로 제가 주장하는 '네오 바로크적 사회'입니다.

 

 

 

박성철_Style-加加_구리, 알루미늄, 합성수지_93×67×15cm_2009

박성철_Style-加加_알루미늄, 합성수지_70×32×10cm_2009

 

물질적 풍요의 이면에, 정신적 공허를

패션과 스타일이란 상업주의의 산물로 채우는 사회.

물론 어느 사회나 이런 상업주의에 희생되어 왔지만, 그 강도가 사상

가장 강하게 사람들을 휘몰아 치는 사회. 레이디 가가의 패션과 박성철의 가체 사이엔

미의 기준에 대해, 찬반을 나누지 않으면서도, 우리가 견지해야 할 균형점이

무엇인지를 물어본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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