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 Travel/나의 행복한 레쥬메

봉일천 고등학교 특강-10년후의 스타일을 생각하라

패션 큐레이터 2009. 12. 3. 00:59

 

 

지난달 23일 파주의 봉일천 고등학교에서 특강을 했습니다.

수능이 막 끝나고 아직 점수가 나오지 않아 아이들은 하나같이 긴장하며

내심 진로와 생의 경로에 대해 고민들이 많았던 거 같습니다.

 

다른 건 몰라도 강의 하나만큼은 즐겁게 하는 편인데

꼭 아직 고등학생이라 주위가 산만한 것이 아니고, 지금 아이들이

접하고 있는 내면의 상황들이 좋은 연사를 불러 특강을 한다손 치더라도 그리

귀에 쏙쏙 들어올 것 같지 않더라구요.

 

그래서 이날은 기존의 복식사 강의 대신

제 삶의 이야기들을 들려주었습니다. 전공과 학위가

그 사람의 삶의 경로에 영향을 미치긴 하지만 이젠 더 이상 예전과 같이

강력한 구속력을 드러내지 못한다라고 말해주었습니다.

 

 

이 아이들의 세대부터는 저를 포함한

이전 세대의 웃기지도 않는 '지적 분과주의'의 산물들은

깨어져야 합니다. 이미 그렇게 되고 있죠. 사실 요즘의 출판계를 보면

대학교수가 글을 쓰거나 단행본을 내는 일은 아주 희귀합니다. 글을 잘 쓰는

일부의 교수를 제외하곤 더 이상 지식을 독점하며 '전문가'인척 하는 시대가 아닌 것이죠.

 

선진화가 된다는 것은 의료와 법률 체계에 대한

사람들의 근접성이 좋아진다는 뜻이고, 이는 다시 말하면

예전같이 '사'자로 끝나는 직업만이 최고는 아닐거라고, 적어도 저는

그렇게 지금까지 경험하고 살았습니다.

 

정말로 중요한 것은 삶을 경영하는 기술을 배우는 것이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일단 찾으면, 그걸 리서치하고 내용을 정리하고

하나의 논리로 스스로 만들어가는 방법, 그 기술을 익힌다면, 사실 분과주의가

보지 못하면서 간과해온 많은 것들을 오히려 보게 될 것이라고

제가 쓴 책 <샤넬 미술관에 가다>도 그런 노력의

산물이라고 말해줬습니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그저 '비전을 가져라'류의 말보다

복식 큐레이터로서, 미술크리틱을 하는 사람으로서 하고 싶은 말은

오히려 "10년후에 본인이 어떤 스타일의 옷을 입고 활보하고 다닐 것인가?"를

연상해보라고 했습니다. 옷을 통해 나를 말하게 될테니, 그 옷의 종류와

스타일과 디자인을 생각해보라고 했죠.

 

국/공립 미술관과 대학. 기업에서만 주로 강의하다가

우연한 기회에 생소한 이름의 고등학교에서 특강을 하는 일은

처음엔 허락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특강비용까지 적어서

저로서는 처음엔 거절을 할까도 했습니다. 하지만 뒤집어 생각해보면, 저 아이들이

제 이야기를 얼마나 경청했는지, 그걸 실천할지는 모르지만, 제 삶에 대해

적어도 자신있게 말했던 부분만큼은 '긍정의 끄덕임'을 보여주는걸

시선을 확인하며 알수 있었습니다. 아이들에겐 그저 선한

작지만 행복한 롤 모델이 될수 있다면 좋겠네요.

 

수능 후, 긴장이 풀린 아이들을 위해

좋은 특강을 마련하느라 수고한 선생님에게도 감사드리고요

 그날 만났던 아이들 모두, 행복한 생의 옷을 입은 모습을 꼭 보고 싶네요.

학생들과 같이 교복을 입고 계시던 교장 선생님도 인상 깊었습니다.

아이들 모두 화이팅 하셨으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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