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 Fashion/패션 큐레이터의 서재

기모노-일본문화의 속살을 벗기다

패션 큐레이터 2010. 1. 13. 02:39

 

S#1 옷이 우리를 입을 때

 

새해가 되면 항상 제 자신에게 선물을 합니다. 패션의 다양한 관점을 선보이는 책과 문헌들이 폭발적으로 쏟아진 한해였기도 했죠. 제겐 좋은 조짐입니다.

 

유니폼에 관심을 가지고 있어서 관련된 <Uniforms Exposed>와 <Wearing Ideology> 이렇게 두 권의 책을 샀습니다. 유니폼이란 그것을 입는 순간, 소속 집단에 대한 자발적인 심정의 동의를 표하는 것이죠.

 

일본에서의 유니폼 문화, 이와 더불어 군복과 사무실 유니폼, 스튜어디스들의 복장, 경찰관들의 유니폼이 갖는 사회적 의미들을 잘 밝혀놓은 책입니다. 최근 한예종 <자유예술캠프>에서 강의를 시작하면서 유니폼이 갖는 사회심리학적인 의미들을 재미있게 풀어서 다음 시간에 설명하려고 밤새 이 책을 읽었습니다.

 

이외에도 세계 4대 패션 강국인 영국 패션스타일의 진화과정과 역사, 대표적인 디자이너들과 소비문화를 소개하고 있는 <London Look>과 <British Fashion Designers> <Made in Britain>등과 같은 책도 샀습니다. 앞서 나간다는 서구의 복식사 책들도 결국 각 국가의 역사에 대한 철저한 이해가 없이는 피상적인 설명을 듣고 이해하는 데서 끝날 수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복식사를 연구하기 전에, 전범으로서의 역사책들을 명확하게 읽고 진화과정들과 그 의미를 새겨놓아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죠. 마치 문화사 공부하듯, 2-3장 찟어서 요약본 형태로 만들어 놓은 역사 내용들은 익혀봐야 거의 도움이 되질 않더군요. 물질문화를 연구하기 위해, 역사 속 균열의 금 속에 알알이 배어있는 사실을 새롭게 이해하고 내가 기존에 알고 있는 내용과, 새롭게 발견된 내용 사이에, 벌어질 수 있는 정서의 갈등을 넘어, 이면의 세계까지도 함께 읽어야 합니다. 그래야 그 시대를 살아간 사람들이 입었던 옷의 속살이 보이고, 농밀한 속살의 표면 위로 비친 세상의 면모가 눈에 들어오지요. 어제 구입한 <Taisho Kimono>는 1900-1940년대의 일본 기모노들을 집중 적으로 소개하는 책입니다. 무엇보다도 일본 사회 내부에서 기모노가 차지하고 있는 사회적 위상의 문제를 설명하고 관련된 역사 문화적 배경들을  해제하고 있습니다.

 

올해들어 결심한 것들이 몇 가지 있습니다. 출판사와 계약한 책들을 하반기 전에 정리해서 내는 것이고, 연극 한편을 기획하는 것인데요. 제목은 아직 말씀드릴 수는 없고, 일본 소설이란 점만 이 곳에서 밝히겠습니다.

 

저는 항상 문학 작품 내에서 '옷의 기능' 혹은 정서를 전달하는 매개물로서, 은유의 방식으로서의 옷의 묘사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옷 한벌의 묘사를 통해 주인공의 성격이 드러나고, 내밀한 감정이 투사되는 그런 작품들을 찾고 있었죠. 이번에 기획을 준비하는 작품은 바로 기모노의 속성을 통해 인물심리를 드러내는 작품입니다.

 

두번째로 소개하는 책은 일본의 저명한 기모노 텍스타일 아티스트인 이치쿠 구보타(1917-2003)의 작품 모음집입니다. 55점의 예술작품으로서의 텍스타일 패턴과 염직기술에 대한 소개가 눈길을 끕니다.

 

작품 초기 14-17세기의 화려했던 염직기술과 채색 직물의 비밀을 캐기 위해 작업을 시작했던 작가의 면모들을 소개하고, 이후 자신만의 방법이 녹아든 장식방식으로 기모노를 만들어냅니다. 다양한 채색층 위에 먹으로 드로잉을 한 선적 느낌의 작품들은 거의 철학적인 느낌마저 부여합니다.

 

텍스타일 아트는 그저 섬유예술의 일부 정도로 해석되어 왔고, 일반인들에게는 여전히 소수자들의 공예 기술 정도로 해석되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패션계에서야 이 텍스타일 기술은 재단기술에 맞먹는 효과를 내죠. 패션 작가가 표현해야 할 정서를 담아내는 그릇에 채색을 하는 것과 비슷할테니까요.

 

이외에도 인상주의 기법으로 염직한 일본의 자연들, 가령 후지산의 풍경이나 34조각의 천을 염직해 만든 '빛의 심포니'같은 작품은 한국의 텍스타일 작가들도 꼭 유념해서 살펴봐야 할 부분인 듯 보입니다. 한장의 직물에는 그 시대의 풍경과 정신적 면모가 녹아납니다. 일본 에도시대 막부계급은 평민들이 화려한 복장을 하지 못하도록 '사치 금지령'을 내려 막았지요. 이때, 화려한 소재나 금속을 액세서리로 하지 못하는 대신 한 장의 피륙위에 그림을 그리는 방식, 화려한 채색 무늬들이 등장하게 되는 것이죠. 이런 시대의 면모를 담고 있는 텍스타일의 예술적 가능성을 배우고 싶다면 한번쯤 읽어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