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제 강의는 많은 변화를 겪었습니다. 단순히 복식사와 미술을 결합한 컨텐츠를 이야기 하는 것에 질렸고, 무엇보다도 경영자로서, 전략 컨설턴트로서 살아온 경험을 녹여낸 말을 하고 싶은 욕망 때문이죠.
저는 패션연구를 주로 하지만, 패션산업을 경영의 프리즘을 통해 보는 작업을 해왔습니다. 말끝마다 럭셔리 마케팅과 경영전략을 운운하지만, 하나같이 허접한 논리가 대부분입니다, 의상학과 내의 패션 마케팅 전공 교수들이 쓴 책은 유통쪽에 포커스가 맞춰져 있어서, 반쪽자리 지식이 너무 많죠.
작년 한해 저를 정말이지 짜증나게 했던 한 권의 책이 있는데요. 바로 연세대학교 고은주 교수가 쓴 <럭셔리 브랜드 마케팅>이란 책입니다. 책 내용의 허접합을 떠나서, 기본적인 마케팅 연구 방법론 조차도 모르는 연구자의 책이였습니다.
오늘날 사랑받는 브랜드의 역사와 문화적 실천, 다양한 마케팅 전략을 다루었다는 서문을 읽고 책을 펼쳤지만, 제 눈에 걸린건 각 브랜드의 홈페이지를 번역한 수준의 글이 전부였습니다. 게다가 미셸 슈발리에가 쓴 <럭셔리브랜드 경영>을 어찌나 많이 참고 하셨던지, 답답함 까지 느껴졌습니다.
패션 관련 경영책이 없다보니, 1차 연구자료들이 많지 않은 건 이해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이건 너무 합니다. 아르마니, 티파니, 에르메스, 루이비통, 페라가모, 프라다 등 다양한 브랜드 소개서를 읽는 느낌입니다.
적어도 럭셔리 브랜드의 마케팅에 대해서 쓰려면, 럭셔리의 총체적인 역사에서 부터 각 브랜드가 어떤 문화적 환경 속에서 성장했고, 각각의 시장 전략들이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설명해야 하지 않나 싶습니다. Psychology & Marketing, Clothing & Textile Research Journal 등 유명국제학술지 초빙 편집위원장을 지냈다고 약력에 나와있는데, 이런 약력을 생각하면 차라리 책을 쓰질 않았으면, 이력에 금이 가지 않을 텐데, 아쉽더군요.
수업시간에 학생들 발표자료를 모은 건지, 아니면 본인인 쓴 것인지 도무지 이해가 안갑니다. 홈페이지를 정리한 책을 2만원이 넘는 돈을 주고 사야하는 건 낭비에 가깝습니다. 적어도 국내 사정이라도 정확하게 기술하고, 국내에 있는 해외 브랜드 매니저들과 인터뷰를 하거나, 서면작업이라도 했어야 하지 않나 싶습니다. 대한민국 대학교수님들의 단행본은 이제 기대를 버려야 하는 것인지. 분과주의의 덫도 모자라, 너무나 한정된 시각의 책들이 대부분이네요. 통찰력을 주는 책은 왜 이다지도 없는 것인지.
(개인적으로 장 노엘 캐퍼러의 책을 좋아합니다. 교과서지만, 수십번 정독을 해볼만하죠. 슈발리에의 책은 최초로 패션산업 내 브랜드 전략을 연구한 책이란 점에서 좋습니다. 차라리 해외저자들의 책을 읽으세요. 김은령씨의 '럭셔리 is'는 다양한 럭셔리 제품과 브랜드에 담긴 숨겨진 이야기들을 평이하게 풀어내고 있습니다. 잡지사 편집장들의 글쓰기 방식답게, 약간 범생이 같은 문체이긴 하지만 내용은 괜찮습니다)
통찰력을 얻기 위해서, 얼마나 역사를 깊게 알아야 하는지를 모르는 걸까요? 행여나 제 말에 시비를 걸까봐 분명히 밝힙니다만, 저는 경영학도였고 지금도 경영학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브랜드 매니저로 16년째 살아오고 있단 말이지요. 저는 개인적으로 Marketing Creative Leaders 클럽에 강의를 하면서, 많은 의상학도들이 디자이너 대신 상품기획자나 경영쪽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걸 발견합니다. 그만큼 디자이너의 삶이 어렵고 취업도 어렵고, 설령 취업해도 조건이 좋지 않기 때문이죠. 이해합니다.
문제는 의상학과 내부의 경영학이란 것이, 너무나 협소해서, 정작 거대 브랜드 회사에서 일을 할때 어떤 도움을 줄 지 의문입니다. 유통채널이나 가격정책론만 배운다고, 브랜드 매니저가 되는게 아닙니다. 브랜드 매니지먼트란, 경영의 체계 전체를 알아야만 이해 가능한 영역입니다. 단편적인 경영지식이 아니라, 서구의 소비자들이 어떻게 자라왔고, 성장해왔고, 어떤 욕구를 어떤 식으로 풀어왔는지와 같은 '물질문화 연구'가 오히려 어떻게 고색창연함(patina)를 멋(chic)의 구성요소로 자리잡게 했는지, 교묘한 마케팅 전략을 푸는데 도움이 되죠.
럭셔리 브랜드를 진정 연구하고 싶다면, 각 브랜드의 명품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장인의 공방부터 가봐야 합니다. 가죽을 무두질 하는 과정부터 세심하게 봐야죠. 물론 아무나 견학할수 있는 건 아닙니다. 하지만 복식학회 분들 툭하면 외국가서 공방도 돌아다니고, 인터뷰도 하고 그러던데, 그런 내용들은 도대체가 단행본엔 낄 여유가 없는 것일까요? 게다가 실증 데이터를 내 놓을 자신은 없으니, 해외 학자가 알음알음, 업계 종사자들에게 들어서 정리한 내용을 표로 내놓는 무성의함까지 보이는 것이죠.
요즘은 그래서 의상학과 아이들한테, 대학원에 가서 패션 마케팅을 공부하느니, 차라리 일반 경영대학원에 가서 경영학을 공부하라고 말합니다. 차리라 이게 낫다 싶어서 그렇습니다. 소비자의 1퍼센트만 잡겠다고 말하는 경영전략. 듣기에만 멋지지만, 그만큼 구찌가 큰 사람들의 마음을 얻기가 얼마나 어려울까요? 그래서 저는 오늘도 고민합니다. 1퍼센트는 만만치 않다고요. 그들의 삶, 다양한 사고, 생의 빛깔을 알아야만 답이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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