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 Fashion/샤넬-미술관에 가다

패션, 향기를 입다-수묵으로 그린 쉬크한 직물의 세계

패션 큐레이터 2009. 12. 10. 01:37

 

 

오늘 인사동에 나갔습니다.

수요일은 많은 오프닝 행사가 있는 날입니다만

며칠 전 미술 데이타베이스 사이트에 올라온 전시내용을 확인하며

꼭 보고 싶은 전시가 생겨 부랴부랴 차비를 하고 나갔지요.

 

정준미 작가는 이번 전시를 통해 알게 되었습니다.

오프닝 전이라 작가분과 만나뵙고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복식이 주제가 되는 전시는 안 빠지고 보려고 노력하는 편이라

이번 전시도 리서치 하다가 꼭 봐야지 하는 마음으로 다가간 전시였습니다.

정준미 작가는 천을 재단해 옷을 만들고 연밥과 꽃과 나비, 잠자리를 재현해 천 위에 바로

그립니다. 직물로 만든 캔버스 위에 한편의 수묵의 향을 채워넣는 것이죠.

 

세계적인 패션 디자이너 이세이 미야케는 자신의 의상철학에 대해

'나의 모든 상상력은 한 장의 직물에서 시작된다. 내게 있어 한장의 천은 화가의

캔버스와 같다"고 말합니다. 에도시대 여인들의 고소데가 아름다운 건, 화가들이 직접 피륙위에

화려한 그림을 그리고 이를 가지고 기모노를 만들었기 때문이지요.

 

 

작품 앞에서 정준미 작가의 사진을 찍었습니다.

옷도 멋지게 만드시고, 동양화도 그 위에 화려하게 수놓은 작가답게

얼굴도 아주 고우시더군요.  

 

 

작가에게 있어 옷은 프레임이자 화가의 캔버스입니다.

평면작업을 하며 답답함을 느꼈다는 작가는 3차원의 신체 위에 덧입히는

작업을 통해 새로운 탈출구를 찾았고, 이후 이런 작업을 계속 해오고 있는데요. 옷은

신체의 확장으로서 제 2의 피부라고 불립니다. 한 사람이 입고 있는 옷에는 그/그녀의 라이프스타일

정치적 소신, 경제적 부의 수준, 기호와 취향으로 대변되는 자신만의 차별화 코드가 담겨있죠.

작가는 천의 주름을 잡아 박음질 해서 마치 격자무늬 속에 갖혀 있는 인간의

모습을 담습니다. 그렇게 옷을 통해 인간을 의인화 하는 것이죠.

 

 

작가가 원했던 것처럼

그녀의 옷에선 연꽃향이 나는 것 같습니다.

마네킨에 입혀진 옷도 있고, 벽에 걸린 것도 있습니다.

다양한 천들을 배열하고 그 위에 수묵으로 그린 연꽃과 나비의 형상이

모여 관계의 망 속에 촘촘하게 태어나는 인간의 모습을 그렸다고 볼수 있는데요.

전문 패션 디자이너들 처럼 재단상의 화려한 기술은 부리지 않았지만 그만큼 늘어지고

퍼지는 직물의 물성을 솔직담백하게 담아낸 탓에, 또 다른 면모의

쉬크함이 느껴집니다.

 

 

원래 의상학도 공부를 했다가 후에 미술공부를 시작한

작가의 이력은 패션과 미술의 자연스런 연금술, 결합으로 이어집니다.

 

 

빠른 속도와 즉흥적인 감각이 필요한 수묵화 작업이

직물위에서 이루어져, 직물이란 화석에 올올이 덧박히는 과정을 통해

관습적인 동양화의 틀을 벗어버리고, 새로운 패션의 형틀 속에 정신성을 녹여냅니다.  

 

 

직물을 좋아하는 만큼, 직물을 다루는 테크닉들을 더욱 익히고

그 위에 패션의 기호들을 동양화에서 배운 방식으로 재해석 한다면 더욱

풍성한 작품들을 만들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인간의 상을 껴안은 옷의 속살위로

짙은 수묵의 향으로 그려낸 우리 내 정신의 형상이

옷 안에서 춤을 추는 군요. 정준미 작가님. 오늘 처음 뵈었지만

앞으로 관심을 갖고 볼 생각입니다. 전시 준비하느라 고생하셨네요. 좋은 작업 기대할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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