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 Healing/행복한 그림편지

거울을 보는 이유-막힌 감정의 틀을 깨뜨리는 연금술사

패션 큐레이터 2009. 12. 3. 13:16

 

크리스토퍼 빌헬름 엑커스베르크(1783-1853)

'거울 앞에 선 여인' 1841년, 캔버스에 유채, 33.5 x 26 cm

허쉬슈프룽 컬렉션, 코펜하겐 국립미술관 소장

 

패션에 관한 연구를 하면서 빼놓지 않는 것이 인간의 착장행위(옷을 입는 행동)과 관련된 소품의 역사를 살펴보는 일입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큰 의미를 지니고 있는 소품이 바로 거울입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습관적으로 거울을 봅니다. 옷 매무새도 고치고, 식사 후엔 치아 사이에 뭐라도 끼었을까 살펴보게 되죠. 덴마크의 화가 엑커스베르크의 그림 속 거울 앞에 선 여인의 몸 선이 곱습니다. 엑커스베르크는 당시 목수이자 인테리어 시공업자였던 아버지에게 그림의 기초를 배웠습니다.

 

1803년 덴마크 왕립 미술학교에 입학. 역사화가로 성공하겠다는 야심을 키웠죠. 유럽 전역은 그 어떤 다른 장르보다도 역사를 소재로 그린 그림에, 우선적 가치를 두던 시절입니다. 당시는 로코코의 흥청망청한 삶을 살았던 귀족들이 무너지고 신고전주의의 혁명시대가 열렸던 때라, 화가 또한 신고전주의 풍의 그림을 익히게 되죠. 당시 거장이던 자크 루이 다비드 밑에서 그림을 배웠고, 이후 고향 덴마크로 돌아왔지만, 전쟁의 패배로 황폐해진 조국을 보며, 울분을 삼킵니다.

 

그는 덴마크 왕립예술학교의 교수가 되어, 문화부흥운동의 중심에 선 인물로 변모하게 되죠. 이후 그는 덴마크 회화의 황금시기를 개척한 화가로 추앙받게 됩니다. 점심을 먹고 거울앞에 한참 서 있다가, 이 그림이 우연히 떠올라 다시 찾아보네요. 거울은 정신분석에서 주요한 테마로 사용되는 소재입니다.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고 이의 성장을 눈으로 목격할 수 있도록 만든 인간의 도구이지요.

 

거울을 보는 일은 나 한 사람만의 꾸밈을 위함이 아닐겁니다. 매일 벌어지는 사회적 이벤트 속에, 내가 만나게 될 이들에 대한 배려이자, 소통의 시작이 되는 지점이죠. 그림 속 여인처럼 친척을 보러가기 위해 준비하는 시간. 그녀에게 한정된 사회적 삶의 확장을 돕는 매개인 거울 앞에서 그녀는 무슨 독백을 늘어놓고 있는 걸까요?

 

최근 한국사회를 버겁게 만들고 있는 주요한 정치 현안을 둘러싸고, 대통령이 직접 나와 국민과의 대화를 시도했습니다. 별 기대없이 보았던 프로그램이었고, 역시나 그 기대를 버리지 않았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거울 앞에서 서서 독백을 늘어놓는 모습이 연출되었을 뿐, 어디에도 진정성을 찾아보기란 어렵더군요. 거울을 보는 이유는, 자신 뿐만 아니라, 대통령직이라는 엄청난 영향력의 반영이 거울을 통해 국민들에게 비춰져야 할텐데요. 이렇게 일방적인 독백은 그저 지나친 '소유욕'의 확장일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마음으로 거울을 보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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