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 Travel/해를 등지고 놀다

조선시대의 이효리를 찾아서-안성 바우덕이 공연 리뷰

패션 큐레이터 2009. 7. 29. 09:00

 

지난 주일 안성에 다녀왔습니다.

많은 화가와 조각가 분들이 그곳에 스튜디오를 갖고

작업하시기에, 최근작을 찾아보거나, 안부를 여쭙기 위해 안성에 가야 합니다.

특히 안성은 자연풍광이 좋고, 물이 좋아 환경미술을 테마로 작업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이번에도 소나무 갤러리에 들러서 관장님께

인사도 나누고 이제까지 간과해왔던 안성의 면면을

드라이브와 산책을 번갈아하며 살폈지요.

 

비록 하루 동안의 짧은 여정이지만

워낙 시간을 꽉 채워 돌아다닌터라, 쓸 이야기거리가

많습니다. 오늘부터 올릴 안성 이야기는 역전구성을 택하여 마지막에

본 안성의 자랑, 남사당 바우덕이 공연부터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안성 바우덕이 공연을 보러간 시간은

저녁 노을지며 온통 따스한 오렌지빛 기운을 땅에

투영하는 때였지요. 사실 자리를 잘 골라 앉았어야 했는데

역광이 드는 자리에 앉는 바람에 공연 사진을 찍었지만 대부분 어둡습니다.

물론 제가 사진기술이 워낙 초보인지라 부족한 부분도 많았고요.

 

남사당놀이 여섯마당을 실제로 본 건 그날이 처음이었습니다.

풍물과 버나(접시돌리기),살판(땅재주),어름(줄타기), 덧뵈기,꼭두각시 놀음

등으로 구성된 남사당 놀이는 이 땅의 전통 연희로서 각각의 놀이판마다 해학과 익살

사회비판적 내용을 담습니다. 이번 줄타기 공연에도 줄을 타는 어름산이가

높이 3미터 줄 위에서 부채를 들고 공연하면서 줄 아래서 계속

거짓양반과 주고 받는 수다 내용이 어찌나 재미있던지요.

 

 

줄 타기를 어름이라 부른 것은

얼음위를 조심스레 걷듯, 어렵다는 뜻에서

유래되었다고 합니다. 줄을 탄다는 것은 어떤 면에서 보면

우리 내 삶의 모습과 닮았습니다. 서양의 아크로바트나 서커스에 비해

그 화려함과 기교는 덜 할지 모르나, 처음으로 남사당 공연을 실황으로 보면서

참 흥겹다, 혹은 정겨운 따스함을 느낀 것은, 단순히 전통성에 기반한 공연이라는 식의

진부한 인식보다는, 공연 자체가 철저한 스토리텔링으로 이루어져 있고,

그 이야기의 내용이 지금 한국에서 살아가는 모든 이들의 보편적

정서에 호소하는 힘이 있기 때문일겁니다.

 

 

오늘 본 공연은 안성의 남사당패가 시연을 했습니다.

특히 안성의 남사당패를 가리켜 바우덕이라고 불렀는데요.

그것은 조선 후기 바우덕이란 안성 남사당패의 꼭두쇠가 여성 최초로

꼭두쇠에 올랐고 천민 신분이었지만, 당시 최고의 기예로 정삼품의 벼슬에 오르는 등

탁월한 능력을 보여주었기 때문입니다. 민중 개념이 없던 그 시절에 이미

대중연예계의 스타로 군림했던 바우덕은 지금의 관점에서 보면

일종의 팬클럽까지 만들어 각종 공연때마다 관람객이

인산인해를 이루었을 정도라고 하네요.

 

가난한 소작농의 딸로 태어난 김암덕(바우덕)은

공연을 통해 당상관의 위치까지 올라, 기예집단에겐 일종의

역할모델로서 자리잡습니다.

 

 

그렇다 보니 각 마을바다 '바우덕이가 왔다'라는 표현은

지금으로 치면 '원더걸스가 우리 동네에 떴다'라는 말과 그리 다르지

않았다고 하지요. 특히 전국 어디에서건 공연이 가능한 최초의 전국구 공연단체가

되면서 그 인기를 가늠할 수 없었다고 합니다. 바우덕이란 개인이 일종의

아이콘이 되고, 연희의 중심이 되는 것. 우리나라 연예의 시작이라고 보는 것이죠.

 

 

위의 사진은 허궁잽이라 해서

가랑이 사이로 줄을 타며 줄의 탄력을 이용하여

높이 뛰기를 하는 모습입니다. 이렇게 15가지의 줄타기 묘기를 통해

각종 부역과 공사에 동원된 당시 국민들의 마음을 위로하고 사회제도를 비판합니다.

 

 

 저녁 노을을 뒤로 한채

한 가닥 줄 위에서 부채를 든 채

하늘로 비상하는 모습이 황홀하기 까지 하더군요.

예전 텔레비전에서 언뜻 공연을 볼 땐 이런 느낌을 갖질 못했는데

역시 직접 보는 것의 차이가 이렇게 큰 줄 다시 한번 느껴봅니다. 구경꾼을 모으는

악기소리엔 우리내 정한과 슬픔, 해학이 버무려져, 여전히 신음받으며 사는

우리의 모습을 아련하게 담아내기에, 지금 우리의 모습과도 연결됩니다.

 

 

지난 주 너무나 바쁜 일정 속에

몸과 마음이 지쳐있었는데, 하루동안의 짧은 여행에

많은 정신적 충전을 하고 온 것이 잘 되었다 싶습니다. 방전 상태에선

글도 더 이상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사람들을 만나도 힘이

되지 않더라구요. 전략적인 게으름과 쉼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그런 가운데 만난 공연이아

더욱 기억에 남을 것 같습니다.

 

올해 남은 시간, 열심히 저술하고 강의도 하고

방송활동도 하고, 다시 힘을 내어 가야지요. 한 손에 바람부채 펴들어
흔들리는 버선발 가누고 동아밧줄 출렁출렁 외줄 타는 시간

그 시간이 제게 거룩한 이유는 깨금발을 하고 외줄을

타는 우리들의 삶이 녹아 있기에 그럴겁니다.

 

힘들고 버겁지만, 어릿어릿 과정 속에서

눈물도 흘리지만, 언젠가는 허궁잽이처럼 휙 날아올라

저 하늘아래 아쟁의 목아지를 길게 뽑은 진양조 소리처럼 우리의 삶을

진득하게 안아낼 수 있기를, 그런 사람이 되길 바래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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