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기행 마지막 날 갔던 유교문화박물관 입니다. 유교의 시흥과 발전, 현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유물과 그림을 통해 유교가 꿈꾸었던 이상적인 사회를 그리고 있습니다. 사실 저는 내부의 장판각을 한번 보고 싶었는데, 시간도 없고 사전에 허락을 받지 못했던 관계로 그냥 돌아서야 했습니다. 장판각은 전통기록문화재 중 목판을 전문으로 보관하는 수장시설이죠. 그날 다행히 제가 좋아하는 기획전을 하고 있더군요『초상,형상과 정신을 그리다』展은 고려부터 조선후기까지의 인물 초상화를 모아 보여줍니다. 특히 조선시대의 초상화는 터럭 한 올이라도 다르면 그 사람이 아니다라는 관념 하에 치밀하게 그려졌지요. 최근 의학자들은 초상화를 통해 해당 인물의 병과 아팠던 증상까지 가늠할수 있는 건 사실적인 회화 기법 때문입니다.
저로서는 정확하게 그려진 초상화를 보는 일이 중요합니다. 특히 옷의 묘사를 주로 보지요. 조선시대의 초상화는 대상의 외적 닮음뿐만 아니라, 정신의 표상까지 동시에 추구했다고 말합니다.즉 형상을 따라, 내면의 정신까지 묘사한다는 것입니다.
간재 전우선생을 그린 초상화를 보세요. 정말 사진같이 정확한 묘사에 허를 두르지요. 미술사학자 이태호 선생님께서 여기에 독특한 주장을 하십니다. 바로 사진기의 원리를 이용해 그린 그림이라는 것이죠. 놀랍죠? 조선시대에 카메라가 있었다니요. 충격입니다. 그런데 사진기 원리의 발명과 역사를 고려해보면 주장에 타당한 점들이 많습니다. 바로 카메라 옵스큐라를 다산 정약용이 실험하고 '칠실관화설'을 쓴 시기들이 서구적 흐름과 맞물려 있습니다. 다산 정약용은 이 카메라 옵스큐라에 해당하는 '칠실파려안'을 설치한 후 친구 이기양의 초상화를 그리지요. 칠실파려안에 대한 설명을 읽어보면 서양의 카메라 원리와 동일합니다. 집에 있는 한 방의 창을 모두 닫아 컴컴하게 한 후, 조그만 구멍을 내고 그 구멍에 렌즈를 장치한 초기 서구의 카메라 옵스큐라 구조였던 것이죠.
박물관에서 본 소장품 중에 눈에 띄는 또 다른 것은 바로 병풍이었습니다. 병풍에 들어가는 8족의 화면은 바로 자수를 통해 그려져 있습니다. 놀랍지요? 수묵채색이 아닌, 자수로 정교하게 그린 것입니다. 직물로 그린 그림인 셈이지요. 원본은 너무 오래되어 한국의 자수장이 오랜 시간 작업을 해 복원해 낸 작품입니다.
S#2 우산의 재발견
병풍에는 조선 후기 우리내 조상들의 풍속도, 일상을 아련하게 그린 모습이 담겨 있습니다. 그 중에서 눈에 띄었던 것이 오른쪽에서 세번째에 그려진 풍경인데, 바로 과거시험장의 모습입니다.
제가 생각했던 과거시험장의 모습이나, 혹은 사극을 통해 보았던 모습과 많이 다르더군요. 궁 안에서 일렬로 오와 열을 맞추어 사모관대를 하고 일괄적으로 시험을 보는 모습이 아니더라구요.
조선후기로 들어가면서 세습양반이 되기 위한 불법적 행동도 늘어나고, 무엇보다 과거를 보려는 인구가 급속도로 증가함에 따라, 시험시간이 짧아 문제에 답을 써서 제출조차도 해보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는 군요.
그래서 자수 그림 속 풍경처럼, 시험보는 이가 부르는 내용을 빨리 글로 쓰는 대필업자와 시험답안을 많은 사람을 헤치고 시험관에게 가져다주는 흔히 말하는 '힘께나 쓰는' 사람까지 돈을 주고 고용, 총 2명을 데리고 시험을 봤다네요. 그리고 큰 장우산은 컨닝(영어로 Cheating이 맞습니다)을 방지하기 위한 수단이었다고 합니다. 조선후기로 가면서 양반사회의 정치문화적 부패는 극에 달했죠. 그런 모습의 단면을 보는 것 같아 씁쓸합니다.
위의 사진은 목어입니다. 말 그대로 나무로 만든 생선이지요.
제사상에 실물 생선을 올려놓기 어려울 경우 이걸 위에 올려놓고 제사를 지냈다고 하네요.
다양한 제기들의 모습이 흥미롭습니다. 술잔이 이렇게 조형적으로 생기다니요.
이 문서도 할말이 많은 유물이더군요. 옛날이나 지금이나, 하여튼 있는 집 자식들, 아니 정치세력화된 양반들은 자녀들의 병역을 회피하기 위해 별별 짓을 다했다고 합니다. 조선시대 호적인데, 점들이 찍어 있는것은, 군대면제를 받기 위해, 필요내용들을 삭제하려 한 흔적이라고 하더라구요. 12년간 미꾸라지처럼 피해다니다 결국 고령으로 면제.....군 면제의 달인 '행불' 한나라당 안상수 선생이 떠올랐습니다.
서애 유성룡이 쓴 징비록입니다. 임진왜란 당시의 혹독한 시간을 견뎌내며, 사료로 남겨진 국보 제132호 입니다. 기록문학의 진수를 보여주죠. 임진왜란 이전의 국내외적 정세로부터 임진왜란의 실상, 전쟁 이후의 상황에 이르기까지를 기록했습니다. 징비란 <시경> '소비小毖'편에 나오는 문장, '予其懲而毖後患 내가 징계해서 후환을 경계한다'로부터 유래합니다. 즉 자신이 겪은 환란을 교훈으로 삼아 후일 닥칠지 모를 우환을 경계토록 하기 위해 쓴 글이죠. 유성룡 선생은 조정 내의 분란, 나아가 임금에 대한 백성들의 원망, 자기 반성 등 임진왜란을 둘러싼 모든 일을 있는 그대로 기록합니다. 정치세력에 대한 환멸과 도탄에 빠진 국민들을 멀리하고 자기 살길만을 챙겼던 군주와 신하들의 작태에 대해서도 배우게 되지요. 저는 현대어로 읽었었는데, 결론은 하나입니다. 항상 긴장하고 준비하는 것입니다.
퇴계이황 선생님이 쓰신 책인데, 제목은 떠오르지 않네요. 내용이 흥미롭습니다. 예전 책을 좋아하시던 이황선생이 오랜 독서로 몸이 피곤하고 눈이 아플때를 위해 이를 풀어주는 운동법을 모은 책이라고 하네요. 약간 요가기법 같은 것과 비슷해 보이기도 합니다. 박물관 하나를 잘 찾아봐도, 배울것이 참 많답니다. 저는 서양복식사에 관심을 갖고 연구를 하지만, 항상 외국의 박물관에 가면, 중세시대, 나무에 그려진 그림부터 타피스트리, 자수 등 다양한 것들을 아주 이잡듯이 자세히 보는 버릇이 있습니다. 양탄자에 그려진 그림 속에도 당시의 패션경향을 알수 있는 자료들이 그려져 있거든요. 어떠세요? 재미있는 박물관 여행이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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