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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룡_밤의 계단_종이에 유성볼펜, 색연필_125×95cm_2003~5
최근 인터넷엔 '루저의 난'이라 불리는 유행이 등장했습니다.
KBS의 <미녀들의 수다>란 토크쇼에서 한 여학생이 "180cm이하의 키를 가진
남자들은 모두 루저(사회적 실패자)"라고 말한 것이 화근인 된 사건이었죠. 이도 모자라
함께 출연했던 항공운항과에 재학중인 한 여학생은 '키 작은 남자들은 오만정이 떨어진다"는 극단적
표현을 서슴지 않아 많은 이들의 공분을 자초했습니다. 부랴부랴 방송국은 사과문을 발표하고
제작진을 전원교체하는 강수를 두었지만, 이번 '루저의 난'은 도무지 평정될 조짐이
보이질 않습니다. 많은 이들이 패러디를 통해 자신의 내면을 토해내고 있다는
점이 바로 그것이죠. 인터넷 세계로 흘러들어간 '루저의 난'은 바로
우리 사회의 가장 취약한 심연의 상처를 건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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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룡_평원-저녁바람_종이에 혼합재료_175×125cm_2005
인간이 인간을 배제하는 사회. 그 배제의 기준이 신체가 되고
신체가 경쟁력 지수의 총화가 되는 사회. 겉으론 화려하고 우아하며 튼튼한
허벅지와 동안의 미를 위하여 핑크빛 볼터치를 하고, 노년의 지혜를 자랑하듯 머리엔
백분을 뿌리고 다니는 시대. 18세기 유럽의 로코코 시대의 특징입니다. 되돌아보면 지금 우리시대와
많이 닮아있죠. 현대는 어떤 일면에서 그 예전 귀족사회의 정점이었던 로코코와 닮아있습니다.
역사를 통해 볼때, 로코코는 시민들의 각성을 통해 '구체제의 모순'을 깨뜨린 프랑스 혁명
이란 사건을 낳았듯, 지금 우리사회는 루키즘(외모지상주의)를 통해 우리가 얼마나
많은 내면의 상처를 받았는지, 보여주려는 첫단추를 채우고 있습니다.
신로코코 사회가 된 현대를 다시 한번 바라볼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 셈이지요.
그림 속 평원에 낮과 어둠이 공존하듯, 화려한 성공의 배후에 있는 어둠을 바라볼 기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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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룡_가을_종이에 혼합재료_125×110cm_2006
중견화가 김성룡의 작품은 사회적으로 루저(패배자)가 된 화가 자신
나아가 사회 속 다양한 실패자들의 모습을 은유적으로 그려내고 있습니다.
자본축적과 화려한 신체를 가진 것만이 성공의 요소처럼, 우상의 제단에 재물로 바쳐지는
사회에서, 화가들만한 루저가 어디에 있을까요? 졸업과 동시에 비정규직이 되는 예술가에게 노출되는
사회적 풍경은 너무나도 잔혹합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그림을 포기하지 않는 것.
그것은 바로 '실패'란 작품완성을 위해 반드시 경험해내야 하는 필수요소이기 때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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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룡_저녁의 연주_종이에 혼합재료_175×125cm_2006
극작가 사무엘 베케트는 “누군가 예술가가 된다는 것은 다른 누구도
감히 실패할 수 없는 식으로 실패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고 말했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서양미술사의 거장들 상당수가, 현대미술사의 많은 유명화가들이 이런 실패를
당대에 경험하고 묻혀버린 이들입니다. '다른 누구도 감히 실패할 수 없는 식'이란 표현이 너무 와닿습니다.
진정한 차별화된 실패를 위해 내 온몸을 던지는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6년동안 산사를
찾아 헤매며 정신적 방황에 빠졌고, 극도의 신경쇠약과 환각에 시달리던 화가는 자신의 색과
조형언어를 찾기 위해, '다른 누구도 실패할 수 없는 식'의 실패를 자진해서 선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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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룡_숲으로 보다_종이에 유성볼펜, 아크릴채색_125×100cm_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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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 베케트가 말하는 실패는 세속적인 성공의 건너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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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있는 단어가 아닙니다. 그것은 자신을 끊임없이 해체하고 부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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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속적으로 힘을 내어 자신의 날개짓을 유지하는 실천적 깨달음을 지칭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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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한 형태이자 방식이기 때문입니다. 이 과정에서 속이 까맣게 타들어가기고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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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딜수 없힌 힘든 내면의 뒤틀림까지 경험하기도 합니다.
오랜세월 유성볼펜으로 그림을 그렸던 화가에겐
이런 조형적 실험은 독특한 실패를 부르는 방식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건 이런 실패를 부르는 실험들을 통해
세상은 변화해 왔다는 사실이지요. 변화를 꿈꾸지 않는 자들이야 말로 권력을
만들고 안정을 꾀하며 실패를 향해 자진해 나아가는 이들을 조롱하고, 비웃습니다. 그도
모자라 체계적으로 배제하기 위한 사회적 시스템과 기술을 교묘하게 만들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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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룡_정령_종이에 혼합재료_125×115cm_2007
그림을 자세히 보면 유성볼펜으로 선을 반복적으로 그어
그려낸 그림이라, 갖은 형태의 선들이 꿈틀거리며 마치 춤을 추는 것
같습니다. 선들의 움직임 속엔, 안주하기 위해 정지하는 점의 형태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실패자의 삶은 정지보단, 움직임, 끊임없는 유동성 속에서 새롭게 완성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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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룡_소년_종이에 혼합재료_125×95cm_2007
안주와 도전, 생의 경계 위에서 나뭇잎으로 얼굴을 가리고
여전히 아픈 눈물을 흘리면서도, 세상을 향해 나를 던질 각오가 되어 있는
소년의 눈물은 소중합니다. 삶이 소중한 이유는 경영학 교과서에서 배우는 수많은
기업성공사례의 배후에는, 남과 다른 방식으로 도전하고 실패했던 자들의 기록이 지워져 있죠.
하지만 성공의 배후를 자세히 보면, 실패했던 자들의 기억이 마치 벽돌처럼 한장씩
쌓여 오늘의 성공을 만들었다는 점 잊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저도 키가 180이 못됩니다. 루저죠. 하지만 블로그를 통해
기존의 블북이 추구했던 취미지향적 글의 범주를 넘어, 미술과 패션의 결합
이란 독특한 연금술을 만들어 낼수 있었습니다. 오늘도 각 분야에서 다양한 실험을
하며 세상을 향해 출사표를 던지는 키 180 이하의 루저들에게 생의 깊은
감사의 인사를 올립니다. 진정 '루저의 난'이 벌어지는 사회를
만들었으면 합니다. 당신이야 말로 안주하지 않고
실패를 받아들이며 싸워나가는 위너임을
승리자임을 잊지마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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